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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는 오래 전 민음사 김욱동 번역으로 읽었었고

번역논쟁 있을 때 김석희 번역으로 다시 읽었더랬다. 김석희 번역은 가독성이 뛰어난데 특별히 아름답지는 않다. 

김영하 번역은 안 읽어봐서 모르겠다. 그래서 한국독자인 내가 피츠제럴드가 글에 담으려 했던 세밀한 미학을 

흡수하진 못하겠으나 큰 물살은 느끼건데 그것은 결국


한 가난한 남자가 부잣집 여자에게 품었던 환상을 끝까지 추구하여 그 환상이 실현되고 이내 부서지고 망가진 후에도

그 폐허에 남아 버티다가 총에 맞에 풀장 위에 떠다니는 것. 그걸 바보같다고 비웃을 순 있겠지만 바보라야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일인 것도 사실이다. 연애를 경험하면 알게 되듯(뿐만 아니라 우리가 욕망했던 모든 걸 맞닥뜨려보면 깨닫게 되듯) 

환상은 오래 살아남지 못하고 그럼에도 우리의 욕망은 여전히 살아남아 꿈틀거려 또 다른 환상을 소유하겠다고 침흘리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지려 했던 무엇, 가졌는데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 그 무엇을 계속 사랑하겠다며 고집피우고 그 장소를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환상따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사랑할 수 있다고 점잖게 훈계하는 자가 있다면 한 번 해보시라지. 사랑했던 그 자리에서 버티는 자의 실체는 말 그대로 버티는 자의 모습이다. 즉 한때 사랑했던 여자 곁에서 계속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유부남 또는 유부녀의 모습. 개츠비가 총에 맞지 않았다면 그거겠지. 그는 총에 맞음으로서 그 평범하지만 어려운 노력을 좀 더 압축적으로 훨씬 더 극적으로 보여주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그 노력을 참지 못하고 새로운 환상을 갖기 위해 쓰레기 골짜기로 모여든다. 자신의 옛 사랑은 쓰레기로 내던져버린 채. 


그래서 엄숙하게 개츠비를 평가하려던 건 아니었고 원래 말하려고 했던 것은 비교적 최근 번역된 [밤은 부드러워라] 역시 그와 비슷한 내용이되 이번에는 총에 맞지 않은 모습으로 버틴다는 것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옮겼던 정영목 씨가 옮겼는데 가독성이 아주 뛰어나지는 않다. 내가 번역의 질을 논할 수준도 아니거니와 문장 하나하나가 시적인 아이디어를 압축하는 경우가 많아 온전하게 흡수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냥 빠르게 읽으려면 또 그렇게 읽을 수 있다. 딕과 니콜과 로즈마리. 한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 딕은 총에 맞지 않는 대신 시간에 얻어맞는 개츠비이고 니콜은 그 시간의 흐름에서 점점 변해가는 데이지다. 로즈마리는 시간이 닥치기 전을 간직한 사랑이다. 쓸수록 왜곡하는 느낌인데 다 읽어본 바로는 위대한 개츠비보다 감동적이었다. 다만 그 감동이라는 게 압축되고 극화되었다기보다는 이들의 시간을 함께 통과하면서 느끼는 회한에 더 가까운 기분이라... 그런데 그게 더 사실적인 감동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