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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영문학 전공자에게서 아일랜드 문학에는 유머의 계보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예시가 점점 뒤로 갈수록 유머라고 하기에는 힘든 무언가에 가까워졌다. 명실공허하게 이 계보의 선조격인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서 유머를 보지 못할 사람은 없을 테지만 아일랜드인을 이렇게 굶어죽일 거라면 차라리 서로 돈도 벌고 화목해지게 그만큼의 아일랜드 아기를 식용으로 판매하자고 제안하는 <겸손한 제안>에서는 슬슬 웃음이 가신다. 로렌스 스턴의 괴팍하기 짝이 없는 <트리스트럼 섄디>에는 웃기다기보다 벙쩌게 되는 순간이 많은데, 예를 들어 요릭의 죽음을 한탄하며 "가엾은 요릭!" 하는 대사가 나온 뒤 마치 1분 묵념의 시간처럼 까맣게 칠해진 페이지가 바로 뒤에 나온다. 오스카 와일드의 재담이나 버나드 쇼의 희곡은 좀 직관적으로 웃기다고 할 만한 요소가 많아 아일랜드 유머의 명목을 지키지만 조이스로 가면 슬슬 얘기가 다르다. <율리시스>는 블룸 부부의 어처구니 없이 이어지는 망상이 유머인 글이며, 경야 하룻밤 동안 이어지는 <피네간의 경야>는 작정하고 만든 농담집 수준이라고 하는데 사실 전자를 읽으며 그렇게 유머러스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서 후자는 아예 읽지 않고 있다. 그리고 베케트. 베케트의 유머 감각에 대한 하나의 예시로 <해피 데이즈>를 들자면, 마치 볼테르의 <캉디드>에 나올 것처럼 매사에 긍정적인 여성이 하반신이 모래에 박힌 채 있다. 당연히 끔찍한 상황이지만 여자는 자신이 현실적으로 제약이 강한 상태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며 사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다. 2막이 시작되자 여자는 머리만 빼놓고 전부 모래에 매몰되어 있다. (연극을 보면 시작과 함께 자기 머리 주위의 모래를 보며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이 일품이다) 하-하-하.1)


그럼에도 이 유머인지 아닌지 모를 엉뚱하게 날카로운 감각이 아일랜드 문학 저류에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세 번째 경찰관>도 그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상술한 작가들 중 가장 유머러스하게 다가오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애초에 다른 유머를 구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루이스 캐럴이나 로알드 달 같은 넌센스 말이다. <세 번째>에는 시작부터 끝까지 파타피지크스러운 가짜 과학이 가득한데, 초장부터 '밤은 어두운 공기가 모여서 생기는 것이다'라는 헛소리를 자신의 연구로 제시하는 형이상학자 드 셀비를 인용하며, 이 드 셀비가 밤의 공기를 씻어내기 위해 도시 규모의 물을 끌어다가 연기로 내보내 구설수에 오른 일이나 그런 드 셀비를 평생의 학문적 업으로 삼아 그의 연구를 총합한 책을 내고자 하는 화자나 어처구니 없기로 짝이 없다. 경찰관은 자신이 받는 모든 신고를 자전거 도난으로 해석하며, 자전거를 계속 타고 다니는 사람에게서 원자가 조금씩 아래로 떨어지며 자전거의 원자와 자신의 원자가 뒤섞여 자전거-인간과 인간-자전거로 서서히 변해 가는 자전거 형이상학을 제시하고, 화자는 또 그걸 좋다고 받아들여 한 숙녀분의 자전거와 놀아난다. 삶에서 무언가를 해서 득을 보는 일과 하지 않아서 득을 보는 일을 견주어 보았을 때 그 비율이 1:7이라 모든 말을 아니오라고 대답하기로 한 노인과, 완벽하기 짝이 없는 상자를 만든 후 그 상자에 들어가기에 적합할 만큼 완벽한 것은 결국 그보다 약간 더 작은 완벽하기 짝이 없는 상자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 이를 몇십 번씩 반복해 만들어 넣고 있는 경찰관 등. 나열을 계속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내가 이 넌센스를 보면서 가장 강하게 든 생각이 있어 이를 공유하고자 한다. <세 번째>와 매우 비슷한 느낌을 내는 게임이 하나 있고, 그 이름은 <디스코 엘리시움>이다. 이 공통점을 하나하나 나열하고 있으면 흡사 링컨과 케네디의 죽음 사이의 유사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처럼 한심해 보일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화자는 기억을 잃고 주변을 떠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데, 그의 안에서는 내면의 목소리가 연극적으로 그에게 말을 걸어오며,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면 발견할수록 그 이상함이 어처구니 없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처음에는 농담으로만 생각한 기이한 형이상학이 점차 실체를 갖게 되며, 전체적으로 괴상한 방식으로 우스꽝스럽다. <디스코>에는 기묘한 방식으로 동작하는 현상과 기관이 가득한데, 제작자가 명시적으로 밝힌 참고자료 <이중도시>보다는 동일한 저자의 <바스라그 연대기>가 더, 스트루가츠키의 <노변의 피크닉>보다는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가 더, 그리고 그 둘보다 <세 번째>가 더 <디스코>와 유사하게 느껴진다. 화자가 다른 일을 생각하다가 주석의 형태로 드 셀비의 가짜 과학을 늘어놓기 시작할 때면 <디스코> 속 백과사전이 말을 걸어올 때와 다르지 않고, 화자의 마음 속의 목소리 조는 <디스코> 속 다른 수많은 인격처럼 어쩔 때는 이상하게 합리적으로, 어쩔 때는 허황된 연기로, 전체적으로 과장적인 방식으로 그에게 지금 이 순간과 화자가 실제로 겪은 일들을 늘어놓는다.2)


그리고 사실 더 중요한 점은, 화자가 <디스코>처럼 너저분하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쓰레기 봉투를 들고 빈 병을 줍고 다니며 호텔에 진 빚을 갚고 다니느라 후줄근한 차림으로 돌아다니며 외국인 상인에게 장사비를 걷고 있는 주인공을 보며 멋지다는 말의 멋조차 발견하기 쉽지 않다. 한쪽 다리에 의족을 찬 절뚝거리는 주인공이 드 셀비의 넌센스 이론을 계속 주석으로 중얼거리며 살인의 대가로 얻은 금고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원하는 그 어떤 것이든 만들어지는 "영원" 속에서 마치 좋은 꾀를 내기라도 했다는 양 자신을 잡아 가두고 있는 두 경찰을 제압할 수 있는 무기라도 만들어줄 수 있냐고 부탁해 그 전에 만들어낸 여러 귀중품과 함께 가방에 두둑히 챙겨 나가려는 모습도 참 형편 없기는 짝이 없다. 이런 하찮은 주인공이 매력을 사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실제로 그런 창작물이 많지도 않다. 그러나 <세 번째>는 <디스코>처럼 이를 훌륭히 해낸다. 사실 아직도 이게 웃기다고 말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렇다. 다만 여기에서 <세 번째>의 비틀린 유머 감각이 나온다. 이것은 웃긴 이야기지만, 사실 웃겨서는 안 되는 세상 이야기이기도 한데 - 화자는 죽었고, 그는 지금 지옥을 떠돌아다니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순간 없이 오직 그 살인의 대가만을 찾아 돌아다니며, 이 지옥을 관장하는 경찰이 이를 되찾아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플랜 오브라이언이 도덕극을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이곳이 지옥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금고를 찾기 위해 손을 밀어넣은 순간 공범이 설치해둔 폭탄이 터졌고, 그는 그 순간 이 세상 위에 마치 겹쳐져 있듯 거의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진 지옥의 시야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사실 이 점에서 <세 번째>의 지옥은 기독교보다는 불교의 지옥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물리적 위치가 바뀜이 없이, 그저 인식의 수준이 어느 정도느냐에 따라 상위 세계와 하위 세계가 공존하는, 죄인의 마음 속에서는 현생이야말로 지옥이라고 하듯. 십 년이 넘게 반복되는 지옥 속에서 그의 마음은 전혀 변하지 않았으며, 조는 이미 그에게 뉘우치라는 말을 하기를 포기한듯 헛소리만을 내뱉고 있다. 이 엉터리 같이 기계적인 관료제의 지옥에서 똑같은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가장 단순한 수준에서 말해 <세 번째>와 <디스코>가 비꼬는 대상은 둘 다 현대 관료제이고, 가장 어처구니 없는 방식으로 이어지는 내적 정합성이 두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그는 이 지옥을 탈출하려면 어떤 의미에서 그 정합성으로부터 발을 빼야만 하며, <디스코>의 주인공이 경찰 노릇을 때려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위해 헌신하듯 <세 번째>의 화자 역시 금고를 찾겠다는 욕심만 버린다면 자기 발로 경찰서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 하지만 당신은 계속해서 이곳을 들쑤시고 다니고, 세상은 화자와 그 안의 목소리가 엉터리에 엉망진창인 방식 그대로 엉터리에 엉망진창이며, 당신이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세상은 더 엉터리 같은 방식으로 진지해질 것인데 이 농담은 당신이 죽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잠깐, 당신은 이미 죽었잖아! 하-하-하. End of story.


*


1) 베케트의 문학 밖 유머 감각은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 일례로 베케트는 친구와 길을 걸으며 참 날씨가 좋은 날이라고 했는데, 친구가 그 말을 받아 이런 날일 때면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베케트는 잠시 침묵하다가 '흠그정돈가' 라고 되받았다. End of story.


2) 혹자는 게임에서 비교했을 때 이 목소리의 역할이 <디스코> 속 12개의 인격보다는 <스탠리 패러블>의 화자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테다. 그러나 <스탠리>의 화자는 대체로 스탠리를 인도하고 유도하며 다투지만 조는 대체로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아무렇게나 무의미한 말을 늘어놓고, 대체로 <세 번째> 속 다른 모든 것들처럼 허황찬란하게 말한다. <디스코>를 한다면 무슨 의미인지 아마 이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