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민음사 읽었고 1부 > 2부 > 1부 순으로 읽음
이 책은 서술 방식이 굉장히 독특하다.
1부는 지하생활자의 철학적 독백이고, 2부는 그가 젊은 시절에 겪은 사건을 보여준다.
보통 소설은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있고, 등장인물 간의 갈등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1부는 이런게 전혀 없고, 지하생활자의 철학적 주장만이 존재한다.
작가는 합리주의와 과학 결정론을 비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이러한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이렇게 쓴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의 화자는 지하생활자다. 수십 년 동안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 인간이다. 1984에서 가상의 디스토피아 세상을 만들어 사회주의를 비판했다면 이 책에서는 디스토피아 같은 인간이 등장한다. 디스토피아를 인간으로 표현하면 화자의 모습일 것 같다.
1부에서 화자는 앞뒤가 안 맞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이 책을 완전히 읽은 후에 나는 작가가 왜 이런 사람을 통해 자기 주장을 전개했는지 궁금했다.
내가 생각한 작가의 의도(화자가 횡설수설하는 지하생활자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작가의 궁극적인 목표는 합리주의를 비판하는 것이다. 과학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합리적인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2+2=4 처럼 옳은 소리만 할 것이다. 옳은 소리를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득이며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현실 세계에서 인간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도 하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화자는 인간의 이러한 비합리성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비합리성의 결정체인 것이다. 화자는 아픈데 치료를 받기 싫어하고,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당한 뒤 복수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것에 쾌락을 느끼고, 심지어 치통 속에서도 쾌락을 느낀다. 모든 사람은 화자처럼 비합리적이지는 않지만 조금씩은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 화자의 광적인 비합리성을 보여주면서 인간은 결국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싶어 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1부 화자의 핵심 주장은 인간은 수학도표처럼 짜여진(합리적인) 대로 행동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설령 그게 이득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누구나 더 나은 삶을 희망한다. 하지만 변할 수 있는 시간과 믿음이 남아 있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포기할 때 쾌감을 느낀다. 나 또한 새해에 세운 목표 중 절반 정도만 아직까지 실천하고 있다. 그중에 헬스도 있었다. 꾸준히 헬스하는 게 목표였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집에서 쉬는게 편해서 요근래 안 가고 있다. 화자는 인간의 이런 나약함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합리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임을 보여준다. 나의 이러한 나태함도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본성을 거슬러 합리성을 추구하는 주체적인 인생을 살아봐야 겠다.
2부에서는 합리적이지 않은 인간의 전형이 등장한다. 화자는 옷도 거지같이 입고, 타인에게 비호감스럽게 말한다. 이러한 모습은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명백히 손해를 자초하는 비합리적 선택이다. 하지만 화자에게 세속적인 기준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인간이 '피아노 건반'처럼 정해진 대로만 움직이는 기계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고, 이러한 행동은 화자에게는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인 것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잃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유도 중요하지만 사회성을 길러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능력을 기르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