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민음으로 읽은 분들은 해설만 한 번 도서관에서 읽어보셔도 재밌을듯
레몽 라디게 연인이던 장 콕토가 쓴 도르젤 백작 무도회 머릿말도 아주 흥미로움
그 머릿말의 몇 가지 부분만 공유하겠음
그는 세 권의 책을 남겼다. 미발표 시 한 권, 미래를 약속하는 걸작 《육체의 악마(Le Diable au Corps)》, 그리고 약속을 실현한 《도르젤 백작의 무도회(Le Bal du Comte d'Orgel)》.
사람들은 그 나이에 쓸 수 없는 작품을 발표한 12살 소년에게 놀란다. 어제 죽은 사람은 이미 영원하다. 날짜가 없는 책, 나이가 없는 지은이, 《무도회》를 쓴 소설가는 이런 인물이다.
그는 고열로 괴로워했던 호텔 방에서 이 《무도회》의 교정쇄를 봤다. 여기에는 어떤 수정도 없었다.
죽음은 그를 이루는 추억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콩트 세 편, 《육체의 악마》의 긴 부록으로 봐야 할 《일 드 프랑스》와 《일 다무르》, 역사의 광경 《샤를 도를레앙》 이것도 최초의 소설에 대한 거짓 자전과 마찬가지로 공상적인 것이다.*
추기(推記) — 레몽 라디게는 자연에 등을 돌렸다거나 신동이라는 말을 싫어했지만 그의 시는 14살부터 17살까지, 《육체의 악마》는 16살부터 18살까지, 《도르젤 백작의 무도회》는 18살부터 20살까지 쓴 것임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그는 15살 때 19살이라고 말했다).**
1921년부터 그는 《무도회》를 위해 소재를 모았다. 1923년 9월 끝무렵, 시골에서 이 작품을 완성하자 그는 소재를 적은 카드를 찢었다. 《샤를 도를레앙》 카드를 넣은 상자 속에서 한 장의 카드를 발견했다. 귀중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그대로 쓴다.

도르젤 백작 무도회

심리가 로마네스크인 소설.
상상력의 유일한 노력이 거기에 집중된다. 즉 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감정 분석에 집중한다.
더구나 순결하지 않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난잡한 연애소설. 주요 부분은 옷을 서투르게 입은 것이 필요하듯이 문장이 서투르다.
'사교계적' 측면.
어떤 감정의 전개에 필요한 분위기. 그러나 이것은 사교계 묘사는 아니다. 프루스트와의 차이.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

내 머리말의 두 가지를 분명히 해주는 다음의 기록은 레몽 라디게의 카드 속에서 찾은 것이다.

장 콕토
육체의 악마에 대하여.
모두 내 책 속에서 고백을 보려고 했다. 착각이다! 청년이나 여자에게서 자주 볼 수 있듯 짓지도 않은 죄를 마치 자신이 저지른 것처럼 허영심에서 나온 거짓 고백, 그 메커니즘은 승려들이 잘 알고 있다. 이 작품에서 모든 거짓인 것은 소설임을 뚜렷하게 보이기 위함이고, 주인공의 심리를 그리기 위함이다. 이 허세는 그의 성격 가운데 한 부분이다.
**** **
“이렇게 조숙한 지성을 가진 소년이 몇 년 뒤에는 놀랄 만큼 어리석어진다!”
어느 집이든 신동 하나쯤은 있다. 신동이라는 말은 가족이 만들어낸 것이다. 경이로운 어른이 있듯 신동도 존재한다. 그것이 같은 사람일 경우는 드물다.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랭보의 작품이지 그가 그것을 쓴 해는 아니다. 위대한 시인은 모두 17살에 시를 썼다. 그것을 잊게 만든 것이 더 위대한 사람들이다.
폴 발레리는 얼마 전 “당신은 왜 쓰는가?”라는 설문조사에 이렇게 대답했다. “약해서.”
나는 그와 반대로, 쓰지 않는 것이 약해서라고 믿고 있다. 랭보는 자신을 의심하고, 후세의 영예를 얻으려는 마음으로 시 쓰는 것을 그만둔 걸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중에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다려서 좋은 작품을 보여줄 용기가 없는 겁쟁이들이 이것을 핑계 삼으면 곤란하다. 좀더 깊은 의미로 말해, 사람은 더 좋은 것을 쓸 일이 없다면 더 나쁜 것을 쓸 일도 없기 때문이다.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