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으로 고통받은 이 나라에서 나는 쓴다
뒤늦게 온 고야의 악몽을 닮은 나라로다
천상의 만나를 개들 따위가 가질 가망 따위는 없다
또 하얀 백골들이 콩을 기르는 나라로다

여기저기 거인이 활보하던 나라로다
저 앞에 채찍질 소리가 가축들을 뒤쫓는다
재앙의 나날에 무자비한 하늘 아래에서
들짐승과 날짐승이 치열히도 다투는 나라로다

꼭두각시들의 발 아래 숨막혀가는 나라로다
가슴 깊숙히까지 수레바퀴 자국에 짓밟히는 나라로다
공포의 왕* 이름 아래 갈기갈기 찢어진 나라로다
늑대인간들의 먹잇감으로 떨어진 두려움의 나라로다

쓰레기와 갈증 침묵과 굶주림 속으로
사람들이 내몰리는 나라에서 나는 쓴다
어머니가 자식과 영영 생이별하며
라발이 왕세자인 헤롯 왕의 치하로다

피로 얼룩진 이 나라에서 나는 쓴다
고통과 상처만이 남은 나라일 뿐이로다
우박에 여기저기 휩쓸린 저잣거리와 같다
죽음이 뼛조각을 갖고 노는 폐허와 같다

매일 밤마다 경찰이 집집마다 들이닥치는
지금 이 순간 이 나라에서 나는 쓴다
형리들이 부서진 팔다리에 부목을 꽂고서
배신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수많은 죽음을 견뎌온 이 나라에서 나는 쓴다
새빨간 상처를 온 세상에 드러내는 나라로다
사냥개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 물어뜯고
하수인들이 뿔피리를 불며 쟁탈전을 벌이는도다

도살자들이 가죽을 벗기는 이 나라에서 나는 쓴다
힘줄과 내장과 뼈가 드러나는 모습을 본다
밀밭이 화염에 휩싸이고 새들이 달아나며
횃불처럼 숲이 불타는 모습을 나는 본다

이 깊고 끔찍한 밤에 나는 쓴다
이국의 병사들이 숨쉬는 소리를 듣는다
터널 속 열차가 저 멀리 숨막히는 소리가 들린다
저기서 빠져 나올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닫힌 들판 한가운데서 나는 쓴다
두 적수 중 하나는 갑옷과 군마로 무장하고
나머지 하나는 잔혹히 칼에 베여 다쳤도다
오직 그에게 남은 건 용기와 정의뿐이다

더 이상 예언자가 아닌 채 구덩이 속에서 나는 쓴다
온갖 짐승들 사이로 민중은 내몰아졌고
결코 그 패배를 잊지 않을 것이다
마땅한 저들의 몫인 살점을 곰에게 맡기어라

배우들이 제 길도 잠자리도 거처도 잃은
이 비극적인 극장에서 나는 쓴다
저 무지렁이들에게 왕위 찬탈자들이
거창한 말만 늘어놓는 텅 빈 무대에서 나는 쓴다

웅얼거리는 커다란 도형수가 된 채 나는 쓴다
해질녘 지하 감옥에서 벽을 치고 울려대며
담벼락에 주먹으로 새겨긴 메세지를 나는 쓴다
간수들에게 기묘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어찌하여 내가 꽃에 대해 말하기를 바라며
내가 쓴 모든 글에 슬픔이 없기를 바라는가
옛적부터 본 무지개에 내게는 오직 삼색(三色)만 남았고
내가 사랑했던 모든 곡조를 네가 없애버렸지 않은가

어찌하여 이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깨어있는 꿈과 저주받은 괴물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실낙원 속에서 기억을 되찾으면서
저 선율에 내 시구를 다시 맡길 수 있단 말인가

기계적인 것들에 대한 말로 나는 말한다
눈 내리는 것보다 더 기계적인 말들로
신문에서나 나올 법한 무가치한 말들로
그리고 사람들의 언어로 나는 입을 연다

길가에 모르는 새 동전이 떨어져 나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는 뒤를 돌아본다
우리의 침묵 속 무의식적인 불행한 메아리에
우연히 던져진 말 아직 떠나지 않은 말이 있다

프랑스어 단어들은 두 가지 뜻의 희망을 품고 있다
비가 내린 걸 잊지 못하는 초원과도 같이
그중에 가장 간단한 말들이 무엇보다 전지전능하다
가장 확고한 화음으로 오랫동안 울려퍼진다

내가 새들이나 동물의 탈바꿈에 대해 말하거나
토끼풀잎 속으로 사라져가는 8월에 대해 말하거나
바람이나 장미에 대해서 말하거나
내 음악은 끊어진 채 흐느낌으로 변해간다

내 백성이 사슬에 묶인 채라면 들판은 시들어간다
그들의 눈동자 속에서 또다른 시가 타오른다
슐레지엔의 소금 광산과도 같이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지옥의 냄새를 풍긴다

모두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을
운율에 맞춰 표현하기란 어리석은 일이라지만
그렇다고 독일 감옥을 프랑스 시로 말하는 것이
저들의 범죄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란 말인가

이제 나는 말하고자 한다 증오의 북소리가
울려 퍼져 그 교훈을 되새기려 하기 위함이다
폴란드 국경에는 그 이름이 쉿쉿거리고
끔찍한 노래를 속삭이는 감옥이 존재한다

아우슈비츠 아우슈비츠 오 피투성이 이름이여
여기서는 살아도 잔불 속에서 서서히 죽어간다
고통스러운 처형이라고 세간은 말한다
저기서 우리 가슴의 한 조각이 천천히 죽어간다

극한의 굶주림에서 극한의 무력감에서
그리스도도 이 끔찍한 길을 본 적이 없다
끝없이 가슴이 찢어지는 비참한 세상 속에서
인간의 영혼이 갈라지는 이런 이별을 알지 못했다

여기 고통의 올림픽 경기가 시작된다
공포가 언제나 죽음을 이기는 곳이다
여기 프랑스에서 온 선수들이 있다
우리 나라에서 온 백 명의 여성들이다

여기 후광이 깃든 백 개의 쇳빛 꽃무늬 장식이
피로 물든 이 불행한 나라에 관을 씌운다
여기 증오를 애정케 하도록 배울
잔혹한 학교의 백 가지 가르침이 있다

수많은 아들을 형제를 남편을 부르는
사랑스러운 말들을 여기 다 적을 수 없기에
가장 괴로운 이 순간 그대에게 인사를 전한다
부르나니 마리 클로드여 성모 마리아여

한밤중에 가장 먼저 떠난 그녀는
자유의 여신**처럼 첫 외침을 질렀도다
다다랐도다 마리 루이즈 플뢰리여
무덤 너머 빛나는 성모 마리아여

아아 이 끔찍한 파종이
기나긴 이 여름을 피로 물들인다
너무도 길도다 들어라
다니엘***도 마이****도 죽었도다

아 저들은 한 가닥씩
아름다운 프랑스를 풀어헤치는가
우리 비참한 들판을
더욱 어둡게 만들 뿐이로다

그 어떤 의미도 감동도 저 말에는 없다
마이여 다니엘이여 어찌 이를 믿겠는가
마음도 노래도 비통케 하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맺어야만 하는가

인사를 전한다 백의 얼굴을 지닌 프랑스의 마리여
인질들을 죽인 살인자들을 용서할 수 없는 영광을
영원히 품은 채로 사랑하는 이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던 그대들에게도 인사를 전한다

그대들 중에 사람들이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그대들에게 가해진 악행과 그대들에 대한 기억이
전설로만 남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이미 이 끔찍한 짐 아래 짓눌린 자들이 있다

상실의 심연에 이르렀다고 그들은 믿었다
하늘 아래 또다른 잔인한 일을 그들은 두려워했다
그대의 귀환은 그들에게 하나의 탄생과도 같다
어찌해야 빼앗긴 마음을 돌려받을 것인가

허나 오직 고통 속에서만 사랑이 피어나기 마련이다
이 얼마나 어두운 연애담인가 그대 품속에서 말하라
밤새도록 그들은 깨어 있었고 낮에는 그 꿈을 꾼다
그대가 미소 지을 때 오든 것이 다시 시작되리라

그대가 돌아올 때 보고야 마리라
그대가 바라던 수많은 꽃이 필 것이다
미래의 색을 띤 꽃이 필 것이다
그대가 돌아올 때 꽃이 필 것이다

부드러운 빛이 머무는 곳에 그대가 머무리라
상처받은 그대 손에 아이들이 입맞춰 줄 것이다
그대 지친 발 아래 모든 것이 이끼가 될 것이다
그대 쉼터에 그대 가슴 속에 노래가 들려오리라

밤이 태어날 때 정원 속에서 숨을 쉬리라
여름날 초원처럼 깊은 녹음이 우거질 것이다
조그만 창 위로 곧 제비가 날아들 것이다
마치 마리*****에게 인사를 전하는 것 같도다

인사를 전한다 유령으로부터 벗어난 나의 프랑스여
오 평화에 다다른 세찬 물결에서 구해진 배로다
노래하는 나라로다 오를레앙 보정시 방돔******
울려라 울려라 새들의 삼종기도 소리들아

인사를 전한다 비둘기의 눈을 가진 나의 프랑스여
다시는 결코 이 고통이 없을 것이다 내 사랑아
나의 프랑스여 옛되고 새로운 고통이여
영웅호걸로 가득한 땅이여 참새들이 지저귀는 하늘이여

인사를 전한다 잔잔한 바람이 부는 나의 프랑스여
변함없는 나의 프랑스여 그 지리(地理)가
바닷바람 속 손바닥처럼 펼쳐진 땅이여
먼 바다에서 새들이 돌아와 그 몸을 맡기는도다

인사를 전한다 철새들이 날아온 나의 프랑스여
릴에서 롱스보까지 브레스트에서 몽 스니까지*******
처음으로 버림당한 조국을 겪고 나서
그 경험에 대한 대가를 치르었도다

비둘기이자 동시에 독수리와도 같은 조국이여
대담하면서도 노랫소리에도 익숙한 조국이여
인사를 전한다 오곡이 자라나는 나의 프랑스여
다양성의 태양 아래서 익어가는도다

인사를 전한다 사람들이 사는 나의 프랑스여
경탄스런 모습을 보여 준 과업의 나날********에
먼 곳에서도 사람들이 와 인사를 전한다
파리여 세 해 동안 헛되이 총격받은 내 심장이여*********

몰아치던 폭풍우는 이제 그친다고 전하리라
무지개빛 목도리를 두른 그대는 끝내 행복하고 강하리라
하프의 침묵이 소리없이 떨고 있는 자유여
홍수 저 너머 나의 프랑스여, 안녕! (完)

* 페탱을 지칭한다.

**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 다니엘 카사노바. 치과의사로 프랑스 여성 운동의 지도자였다. 아우슈비츠에서 수감되었으나 여성 수인들의 저항 운동을 조직하였으며 1943년 5월 10일 사망하였다.

****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조르주 폴리체르의 부인.

***** 프랑스의 의인화. 마리안(Marianne).

****** 해당 세 도시는 루아르 강변에 있는 도시들로, 프랑스의 특색을 가장 잘 간직한 도시들로 꼽힌다. 16세기에 소개된 대표적인 순수시의 시행으로 유명한 구절이기도 하다.

******* 각각 프랑스의 북쪽, 남쪽, 서쪽, 동쪽에 있는 지역들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동서남북 정도.

******** 항독 레지스탕스.

********* 이 시는 1943년에 쓰여졌으므로 1940년 이래 독일군에 점령당한 3년간의 파리를 뜻한다.

ps. 여러분은 번역 같은 거 하지 마십쇼... 후기는 나중에 올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