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레지스탕스 활동을 이끈 미뉘 출판사(Les Éditions de Minuit)에서 나온 이 시는 2차대전 저항시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잠깐 출판사 이야기를 하자면 미뉘는 사뮈엘 베케트의 모든 작품을 출판한 곳이기도 합니다. <고도를 기다리며> 등등. 어쨌든 나치와 그 부역자들을 파리 한복판의 그레뱅 박물관에 전시된 밀랍 인형으로 비유하여 저들의 만행을 통렬히 비판한, 사람도 아닌 사람 언저리의 것들이라 비꼰 시이죠.

동시에 전란 시기 프랑스가 겪어야만 했던 여러 비극들을 상세하면서도 진부하지 않게, 예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얻을 수 있도록 고대로부터 전해져 오는 무훈시나 시가, 연애담 등의 형식에서 차용하여 여러 시법과 비유를 자유자재로 풀어낸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시는 아우슈비츠를 묘사한 최초의 작품들 중 하나인데 아라공이 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건 그와 친분이 있던 사람들을 포함한 여성 100여 명이 아우슈비츠에 끌려갔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맑스주의 철학자이며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인해 총살당한 조르주 폴리체르(1903-1942)의 아내인 마이(Mai)가 있지요. 그녀 또한 남편이 죽은 이듬해에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당합니다.

프랑수아 르 콜레르(François le Colère, 분노하는 프랑수아) 라는 필명 아래 쓰인 이 시는 그동안의 고통과 아픔을 넘어선 세련된 분노를 담아낸 작품입니다. 6주만에 패배한 단장의 아픔(Le Crève-coeur)을 고통스럽게 거쳐 조국에 대한 애정을 그의 영원한 연인인 엘자의 눈(Les yeux d'Elsa)에서 찾은 뒤, 다시 부당하게 억압당하고 착취받는 현실에 대한 분노를 담아 쓴 작품인 것이죠.

한때의 초현실주의 선두주자는 전통 운율로 다시 돌아가서 고대의 서정을 현대의 비극적인 현실과 융합한 뒤, 유서 깊은 운율이야말로 민중시의 핵심이자 민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건임을 역설합니다. 그리고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며 죽어간 동료들과 수많은 투사들, 평범한 사람들을 무훈시에 나오는 영웅에 비유하여 살아남은 자의 슬픔(브레히트)을 간직하는 동시에 영원히 기리고자 하는 시도인 것입니다.

이러한 개인과 역사,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결합을 익숙하고 친숙한 형식에 성공적으로 풀어내어 아라공은 레지스탕스 시인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전후에도 그 명성을 유지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번역 저본은 Le Musée Grévin (Le Temps des Cerises, 2011)이며 각주와 해설은 일역본 또한 참조했습니다. 한국에는 의외로 80년대 김남주 시인이 이 시의 1부를 일어 중역으로 옮겨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에 실은 바 있습니다.

ps. 이 시에 딸린 부록으로 전후 저자가 직접 쓴 <검은 물고기(Les Poissons Noirs)>란 글이 좋은 해설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