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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기아스의 초반부는 솔직히 별로 끌리지 않았는데, 중후반의 내용이 꽤 먹을만한 케이스였음.


초반부에서 눈여겨볼 점은, 63페이지(462c)에서 소크라테스가 폴로스한테 한방 먹는 장면임. 너무 짜릿해서 기억에 남음.


그 다음으로는 혼을 위한 기술(정치술=입법술+사법술)과 몸을 위한 기술(체육술+의술)을 설명하는 부분이 플라톤의 몸과 혼 이론에 조금 더 깊은 이해를 가지게 했음.


"따라서 우리는 좋은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걸을 때도 걷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에 걷네. 반대로 서 있을 때도 우리는 같은 것, 즉 좋은 것을 위해서 서 있는 것이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좋다고 생각해서,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고 내쫓기도 하고 재물을 빼앗기도 하는 것이지?"
"따라서 그런 행위를 하는 자들은 좋은 것을 위해서 그런 모든 행위를 하네."
"그렇다면 무엇인가를 위해서 어떤 행위를 할 때 우리는 바로 그 어떤 행위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의 목적이 되는 그걸 원한다는 데 동의한 거지?"
"따라서 우리가 누군가를 살해하거나 나라 밖으로 내쫓거나 재물을 빼앗는 것도 무조건 그렇게 하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그게 이로우면 그렇게 하기 원하지만, 해로우면 하지 않기를 원하네. 자네 말대로 우리는 좋은 것들을 원하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들을 원하지 않으며, 나쁜 것들을 원하지도 않으니까."
<< 내가 보기에 소크라테스는 ~에게 좋은 것인지, 즉 주어를 생략하여 전자는 '나'에게 좋은 것, 후자는 '공동체'에게 좋은 것을 혼동하여 사용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인간이라는 존재를 너무 순진하고 고상하게 바라보는 것 같음. 내가 보기에 나를 포함한 거의 모든 인간들의 수많은 행동들에는 전혀 깊은 생각도 목적도 담겨있지 않음. 고양이랑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임.


고르기아스의 초반 100페이지 까지는 그다지 흥미가는 내용이 보이지 않는데, 예를 들어 불의를 저지르는 것과 불의를 당하는 것을 비교하는 것?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그 비교는 그다지 실질적인 의미가 있지 않음. 적어도 둘 다 나쁘기 때문임. 

그럼에도 굳이 파고들어 보자면, 폴로스가 불의를 당하는 것이 더 나쁜 반면, 볼의를 저지를 쪽이 더 부끄럽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 훌륭한 것과 좋은 것이 같지 않으며 나쁜 것과 부끄러운 것이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폴로스를 교정하려는 시도를 위주로 접근해보고 싶음.


우선 소크라테스는 몸, 색깔, 모양, 소리, 시가, 법, 관행들을 훌륭한 것이라고 부를 때를 주목하는데,
"... 훌륭한 몸들을 예로 들면, 그것들이 훌륭하다고 말할 때, 자네는 각각의 몸이 어디에 쓸모 있는가에 따른 사용의 측면에서 훌륭하다고 말거나, 아니면 그것들이 보는 사람에게 보는 기쁨을 줄 경우에 어떤 즐거움의 측면에서 훌륭하다고 말하지 않나? 몸의 훌륭함에 관해서 자네는 이 두 측면 외에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나?"
이를 통해 훌륭한 것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어떤 즐거움 때문이거나 이로움 때문이거나, 아니면 둘 다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림.
@ 예를 들어, 노래 부르는 사람에 대해 훌륭한 목소리라고 한다면, 음색이 좋거나(이것이 즐거움과 연결) 가창력의 기교가 좋다거나(이것이 사용의 측면) 에 대입 가능하다고 생각함. 더 딱딱하게 말하자면, 하나는 '성능적 관점', 다른 하나는 '미학적 관점'이라고 생각됨. 일상적 용어로는 엔지니어와 디자이너의 관점? 훌륭한 건축물이라고 한다면, 역학적으로 우수한 건축물일 수도 있고, 미관이 이쁜 건축물일 수도 있고, 둘 다일수도 있다는 거겠지. 직관적으로는 그럴듯한 얘기로 느껴짐.


"그렇다면 부끄러움은 이와 반대인 것, 즉 고통과 나쁨에 의해 규정되지?"
훌륭함을 이로움과 즐거움의 관점으로 접근한 것은 이해 가능하지만, 부끄러움을 고통과 나쁨으로 규정한 예시는 언급해주지 않음.
이건 주석118을 참고하여 kalon과 aischron 번역어의 뉘앙스를 파악해야 하겠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훌륭함이라고 했으면, 그 반대는 '좆같은'이 어울린다고 생각함.
좆같은 몸은 성능적으로 약골이거나, 미관적으로 흉하거나이고, 좆같은 목소리는 음치박치이거나 걍 음색이 더럽거나이고, 좆같은 건축물은 갑자기 천장내려앉는 수준이거나 걍 흉물이거나 이런느낌? 
그런데 내가 멋대로 부여한 미학적 관점은 소크라테스의 즐거움, 고통에 대한 의도의 정확한 해석이 될 수는 없고 오히려 교정된 해석이라고 볼 수 있음.
이 부분을 더 깊게 파고들 수도 있지만, 일단 내용의 흐름을 따라가 본다면,


1. 불의를 당하는 게 더 나쁘고, 불의를 저지르는 것은 더 부끄럽다 (폴로스의 초기 주장) 
@ 여기서 전자는 상황의 좆같음이 될 것이고, 후자는 행동의 좆같음이 될 것임. 수동과 능동의 관계이므로 주체성의 유무가 들어있기 때문에 둘을 비교하는 것이 합리적인가부터 의문임. 예를 들어 선행을 베푸는 것이 정의로운가? 선행 베풂을 당하는 것이 정의로운가? 라고 물어보게 된다면, 후자는 질문 자체가 어색하게 들림. 앞서 논의함 훌륭함의 예시들은 행동보다는 상황(상태)에 관한 것들이기 때문에, '불의를 당함'이 aischron하다는 것은 결이 들어맞지만, '불의를 행함'이 aischron하다는 것은 결이 다르지 않을까?
@ 다르게 바라보면, aischron을 '추함'으로 접근해볼 수도 있음. 불의를 행하는 것은 추한 짓인게 맞지만, 불의를 당하는 것은 추한 상황? 추한 짓? 둘 다 안 어울림. 내가 추측하기로는 소크라테스가 이런 교묘한 말장난을 통해 논쟁을 유리하게 가져간 것으로 보임. 이 부분에 대해 더 깊게 파고들려면 원전의 단어들과 문법들에 정통해야 할텐데, 나는 아예 모르기 때문에 이 이상 파고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움.


2. 일단 더 부끄럽다는 것은 고통과 나쁨의 총합이 더 크다는 것이다.
@ 아까도 언급했지만, kalon의 예시는 들었지만 그 반대인 aischron의 예시는 들지 않았음. 그래서 나는 '좆같음'으로 접근했지만, 나쁨을 '성능적 관점', 고통을 '미학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후자는 조금 이상하게 느껴짐. 우선 aischron이 '추하다'라는 의미라면, 그것은 거시적으로 미학적 관점밖에 포함되지 않게 되며, 책대로 '부끄러운'으로 접근한다면 그것 역시 훌륭함이 이로움과 즐거움으로 이루어졌으며, 반대인 부끄러움은 나쁨과 고통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때, 예를 들어 '부끄러운 목소리'는 그 목소리가 나쁘(해롭)거나 고통스럽게 들림 또는 둘 다를 포함한다고 해야 하는데, 이 두 의미를 포함하는 게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는 거시적으로 확장보다는 축소된 표현에 가까움. 애초에 이치에 맞지 않다고 느껴짐. 오히려 '좆같은 목소리'가 두 의미를 포함해주면서 직관적임. 그러나 "불의를 저지르는 것은 좆같은 짓이다", "불의를 당하는 것은 좆같은 상황이다." 에서 전자는 표현이 살짝 어색함. 한편 '부끄러움'이나 '추함'으로 접근한다면 후자가 매우 어색함. 아무튼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건 소크라테스가 아닌 내 이론이지만, 미학적 판단이 판단자의 감정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는 점임. 


3. 불의를 저지르는 것은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 더 부끄럽다.


4. 고통의 측면에서 불의를 저지르는 것은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 덜 고통스럽다.


5. 나쁨의 측면에서 불의를 저지르는 것은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 훨씬 나쁘다.
@ 여기서 느껴지는 미묘한 말장난은, 불의를 저지르는 것은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 나쁜 짓임(애초에 불의를 당하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상태이므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함)과 동시에, 불의를 당하는 것은 불의를 저지르는 것보다 나쁜 상황(주체의 관점에서)이라는 점임. 즉 불의를 저지르는 것은 나쁜 행위이며, 불의를 당하는 것은 나쁜 상황인데, 고통과 나쁨의 총량으로 저울질하려는 방식에 문제가 있어보임. 내 식으로 폴로스를 반박하자면, 전자는 선택 가능한 계획범죄이며, 후자는 불가피한 사실상 자연재해라는 관점에서 전자가 더 불경하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 꽤 합리적인 접근으로 보이는데, 실제로는 이런 식으로 얘기한 적이 없으니까 문제임.


6. 2번~5번에 의해 1번은 틀렸다.


미친 다음 문장부터 소크라테스는 수동과 능동에 관한 얘기를 하기 시작함. 독서의 매력적인 점들 하나가 이건데, 흐름을 읽어 나가다가 생각의 흐름과 글쓴이가 내용의 흐름이 교접했을 , 반가움과 희열이 느껴짐. 야너두? 하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음.


그런데 내용을 더 읽어보니 내가 지적한 부분과 관련된 수동과 능동이 아니라 불의를 저지른 쪽이 대가를 치르는 것에 대한 수동과 능동이었음...
요지는 흉악범죄자가 올바르게, 정당하게, 정의로운 근거에 의해 목뎅겅 심판을 받더라도 그것은 훌륭한 것을 행한 것임과 동시에 훌륭한 것을 겪은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는 거임.
더 나아가 해당 흉악범죄자는 혼이 더 훌륭한 자가 되는 이로움을 얻는다고 함. 마치 (올바른) 재판과 심판이 혼을 정화시켜준다는 느낌임.
소크라테스의 이런 방식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우선 인간을 존엄하고 고상하게 바라본다는 점에서, 그리고 어찌됐든 이런 합리화를 통해 낭만적인 도덕체계를 세웠다는 점에서 리스펙트 할만함. 

"... 훌륭하고 좋은 것은 추구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무시하면서 매 맞을 만한 불의를 저질렀으면 매질하라고, 구속당할 만한 불의를 저질렀으면 구속하라고 자신을 내맡겨야 하며, 벌금을 물어야 할 만한 일이라면 물고, 추방당할 일이라면 추방당하고, 사형당할 일이라면 사형당해야 하네. ..."


이후 개빡친 칼리클레스가 소크라테스한테 막말 퍼붓는데, 소크라테스도 가만히 안 있어서 재밌음. 이미 키배털린 고르기아스랑 폴로스는 아예 부관참시 해버리고, 칼리클레스한테는 사실상 "근데 너 존나 멍청해서 결국 내말 반박도 못하잖아?" 거림. 이제 소크라테스의 겸손은 기만으로밖에 보이지 않음.

"... 알다시피 우리의 논의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네. 누구라도 조금이나마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 진지하게 대해야 할 문제가 무엇이겠나? ..."
이 문장(500c)은 이 책에서, 그리고 플라톤의 대화편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장이라고 느껴짐. 내가 이런 철학서들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고, 굳이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계속 읽어나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함. 플라톤은 우리가 철학에 몰두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 대화편들을 통해 수도없이 강조함. 문제는 실질적으로 보면 이 책 내용의 70% 이상이 사실상 이것과 긴밀한 연관이 있지는 않은 것들에 대해 논의함.


"그렇다면 당연히 도구든 몸이든 혼이든, 나아가서 살아있는 것은 무엇이듯 그것들 각각의 덕이 가장 훌륭하게 함께하게 되는 것은 아무렇게나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각각에 부여되는 짜임새와 올바르과 기술에 의해서 그렇게 되네. 그렇지?"
"그리고 당연히, 절제 있는 자는 신들에 대해서나 인간들에 대해서나 적합한 것을 행할 걸세. 적합하지 않은 것을 행한다면 절제 있는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닐 테니까."
"나아가서, 인간들에 대해 적합한 것을 행하면 정의로운 것을 행하는 것이고, 신들에 대해 적합한 것을 행하면 경건한 것을 행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정의로운 것과 경건한 것을 행하는 자는 정의롭고 경건할 수밖에 없네."
"더 나아가 절제 있는 자는 또한 용감할 수밖에 없네. 절제 있는 자의 행위는 적합하지 않은 것을 추구하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든 사람이든 즐거운 것이든 고통스러운 것이든 피해야 하거나 추구해야 할 것들은 피하거나 추구하고, 남아서 버텨야 하는 곳에서는 남아서 버티는 것이니까. 따라서 칼리클레스, 절제 있는 자는, 우리가 자세히 언급했듯이, 정의롭고 용감하며 경건하기 때문에 그는 완벽하게 좋은 사람일 수밖에 없으며, 좋은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훌륭하게 잘 행하며, 잘 행하는 사람은 복되고 행복한 자이지만, 나쁜 행위를 하는 몹쓸 사람은 비참한 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네. 그리고 이 사람은 절제 있는 사람과는 반대 상태에 있는 자로서 자네가 칭찬했던 무절제한 자이겠지."
"... 참된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되고 삶에 애착을 가져서도 안 되기 때문이네. 그것에 관해서는 신께 맡기고 정해진 운명은 아무도 벗어날 수 없다는 여인들의 말을 확실히 믿으면서, 그 다음 것을 살펴봐야 하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하면 가능한 한 최선의 삶을 살 수 있는가 하는 문제 말일세. ..."

<< 내가 플라톤 책을 읽는 이유가 플라톤 미덕에 대해 더 깊게 알고 싶어서이기 때문에, 이런 미덕과 관련된 문장들을 중요하게 생각함. 게다가 여기 나오는 내용들은 그 미덕들이 상상 이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줌.


칼리클레스와 소크라테스의 대화 중에는 나중에 변론에서 부당?하게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를 받게 될 미래를 연상시키는 듯한 내용이 여러 번 나옴. 이건 플라톤이 의도적으로 노린 내용이라고 확신함. 사실상 고르기아스는 변론-크리톤-파이돈 3부작의 에필로그처럼 보일 정도임.

"내가 믿건대, 나는 참된 정치술을 시도하며 정치를 하는 몇몇 아테네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네. 나 혼자뿐이라고 말하지 않으려고 몇몇이라고 했지만, 요즘 사람들 중에는 내가 유일하다고 믿네. ..."
<< 걍 자뻑이 하늘을 뚫고 무지의 지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오만이 방자함. 이게 겸손한척 하는 소크라테스의 실체와 기만, 답정너 그자체임. 

"... 이 주장만 확고하게 남았네.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 불의를 저지르는 것을 더 조심해야 하며, 사람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훌륭해 보이는 데 주의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실제로 훌륭한 상태에 있도록 하는 데 무엇보다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누구든지 어떤 점에서 나빠진다면 응징을 받아야 하고 응징을 받고 대가를 치름으로써 정의로워지는 것이 정의로운 상태에 있는 것 다음으로 두 번째로 좋은 것이며, 모든 아첨은 자신에 대한 것이든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것이든 몇몇 사람들에 대한 것이든 많은 사람들에 대한 것이든 피해야 하며, 연설술은 언제나 정의로운 것을 위해 사용해야 하고, 다른 모든 행위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주장 말이네."
<< 플라톤이 친절하게 내용을 전부 정리해줌. 투박해 보여도 끊임없이 덕을 추구하는 플라톤의 도덕철학은 낭만적이고 충분히 매력적임.

"... 자네가 덕을 단련함으로써 실제로 훌륭하고 좋은 상태에 있다면 끔찍한 일을 조금도 당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고 나서, 우리가 함께 이렇게 덕을 단련한 후에, 그때 비로소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나랏일에 나서거나, 아니면 우리가 의미 있게 여기는 일을 하기로 결정해야 할 것이네. 그때는 우리가 지금보다 결정을 더 잘 내릴 수 있는 상태에 있을 테니까. ...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드러난 이 주장을 인도자로 이용하세. 살아서나 죽어서나 정의는 물론이고 다른 덕을 모두 단련하는 것, 이것이 가장 좋은 삶의 방식임을 우리에게 지시해 주장을 말일세. 그리하여 이 주장을 따르세.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하세. ..."
<<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결론도 일단 친절하게 정리해 주셨음. 사실상 마지막 두 페이지만 읽으면 대화편 고르기아스의 액기스를 대부분 쪽쪽 빨아먹은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