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은 사실 오늘날 문학을 읽는 독자들에게 있어, 낭만주의보다 더 친숙한 존재다.
물론 '나는 모더니즘 안 읽는데?' 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그건 그냥 아무 것도 모르니까 하는 말이다. 현대 문학을 읽는다면, 간접적으로나마 모더니즘을 읽는 것과도 같다.
왜 모더니즘 이후, 오늘날까지를 '포스트-모더니즘 (모더니즘 이후)'라고 부르겠는가?
시작된지 10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현대 문학과 예술에서 '모더니즘' 자체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서다.
물론 모더니즘 작가들의 작품 자체를 직접 읽는 건 아무래도 좀 드물 거다.
모더니스트의 범위가 아무리 넓다고 한들, 사람들이 흔히 '모더니스트'로 아는 이들은 '어렵다'는 거짓된 소문으로 점철된 이들이니까.
모더니스트들 중에서도 '인지도'로만 따지면, 사실 1티어 작가들이 있다.
제임스 조이스나 마르셀 프루스트, T.S. 엘리엇이나 버지니아 울프 같은 작가들은 사실 독서를 처음 접하거나, 일반인조차 쉽게 들어봤을 이름들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소개할 작가는 '모더니즘 2티어'에 속하는 작가다.
물론 이건 굉장히 애매모호한 표현이다. 1티어급 인지도는 아니지만, '모더니즘'을 조금이라도 접한다면 쉽게 이름만은 접할 작가,
다르게 말하자면 대충 모더니스트 중에서 1.5 티어급 인지도를 자랑하는 작가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최근 <문학동네> 에서 이 작가의 대표작이 번역되었으므로 속 편하게 소개한다.
바로 <주나 반스>-!!!
주나 반스를 일컫는 유명한 별명으론 이런 말이 있다.
"가장 유명한 무명 (작가)'
이런 모순적인 설명만 봐도 알겠지만, 책 한 권 안 읽어본 사람이 이름을 들어보진 않았겠지만, 모더니즘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법한 1.5티어급 작가다.
주나 반스는 1892년 미국, 뉴욕 주 허드슨 강 근처의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 미국인이니까 당연하겠지.
작가 주나 반스의 재능은 어쩌면 가족 내력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친 할머니 자델 반스는 유명한 여성참정권 운동가였으면서도 작가이자 예술가였고, 또 당시엔 꽤 유명했던 예술 살롱을 운영하던 예술가였다.
거기에 그녀의 아버지는 일단은 작곡가였다. 무명에 쫄딱 망했지만.
이런 집안만 보면, 분명 예술가로 자라나는대 도움이 될 거 같겠지만, 불행하게도 주나 반스는 수많은 기괴한 모더니스트 인간 군상들 중에서도
가장 기괴하고 잘못된 가정에서 자라나야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부다처제'를 주장하던 이였고, 주나 반스는 어머니 외에도 또 다른 양어머니가 있는 집안에서 자라나야했다.
2명의 아내로부터, 무명 작곡가 아버지는 꽤나 많은 자식을 낳는다. 문제는 주나 반스는 동생들이 여럿 생겼을 때는 그나마 큰 둘째였다.
자연스럽게, 그녀는 제대로 된 공교육도 받지 못한 채, 동생들을 돌보는 어린 시절을 보내야했다.
할머니는 뭘 했냐고? 응, 아빠랑 한패야~
물론 주나 반스의 유년 시절은 그녀가 정확히 이거다, 이거다 라고 밝히지 않았으므로 여러 추정이나 카더라도 뒤섞여있다.
그녀가 16살 무렵에 집 근처에 살던 지인이나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추측도 있지만, 일단 주나 반스 본인은 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말한 바는 없다.
이런 '추측'만 봐도 알겠지만, 주나의 어린 삶은 시궁창 그 자체였다.
심지어 18살이 되기도 전에, 자신의 둘째 어머니, 그러니까 아버지의 두번째 아내의 52살 먹은 동생과 집안의 강요로 결혼식까지 올린다.
실제로 같이 산 것은 2달도 채 안 된다고 하지만, 정말로 바르게 자라난 게 기적적인 기괴하고도 막장 그 자체인 집안이었다.
무명 작곡가 아빠의 삽질 덕분에 끝내 거의 파산에 직면했을 때, 어느 정도 성년에 가까워진 주나는 자신의 친어머니, 친남동생들과 함께 아빠와 결별한 채 도시 뉴욕으로 온다.
잠깐 공교육을 받기도 하지만, 곧 생계를 위해 일자리에 뛰어들어야했다.
이에 주나 반스는 뉴욕의 한 신문사를 찾아간다.
"요, 나는 그림도 잘 그려, 글도 잘 써
날 안 고용하면 너는 머저리~"
학교에 제대로 못 간거지, 주나 반스는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으므로 그대로 신문사에 기자로 고용된다.
위의 짤이 그녀가 그린 삽화 중 하나다.
다행히 일은 잘 풀렸다.
주나는 그 시점을 기준으로 굉장히 실험적인 기사들을 써내렸다.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오늘날 신문 기사에 가까운 글들은 꽤 인기를 끌었는지, 그녀가 쓴 인터뷰나 신문 칼럼은 곧 뉴욕의 모든 신문에 실리게 된다.
이렇게 신문기자로 활동하던 무렵, 그녀의 삶에도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등장한다.
뉴욕 그린위치 부근의 아파트로 주나 반스는 이사를 끝내 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 그린위치는 일명 뉴욕-다다로 불리는 보헤미안적 예술가들의 소굴이었다.
짤은 주나 반스와 친했던 뉴욕-다다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최근 재발굴된 프라이탁-로링호븐 남작부인의 연기 모습이다.
주나 반스는 이러한 이들과 교류하며 서서히 예술가로서 희곡이나 시 등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삶 이야기만 하면 재미없으니까 이제 대충대충 훑는다
20년대 그녀는 파리로 여행을 가며, 기자로서 여러 작가들과도 인터뷰를 한다.
대표적으로 그녀가 얼굴도 그렸던 제임스 조이스가 있다.
이런저런 교류도 하고, 연애 문제도 겪으면서
소설이나 시 등으로 모더니스트들 사이에서 주목도 받던 그녀는 어느 덧 오늘날 그녀의 대표작을 쓸 준비를 마친다.
사실 그녀의 연애사가 그녀의 작품관에서도 중요하다.
주나 반스는 양성애자였고, 파리 체류 시절, 델마 우드나 엘자 폰 프라이탁-로링호븐 등과 사랑에 빠지며 일종의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결국엔 반스가 차인 결과에 가까웠지만, 이걸 토대로 그녀의 대표작 <나이트우드>가 완성되지만, 좀 있다 이야기하고
이러한 시련이 주나 반스로 하여금 발굴가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엘자 폰 프라이탁-로링호븐은 오늘날에야 미국의 다다이스트 시인으로 서서히 재발굴되고 있는데, 그녀의 작품집을 모아둔 것이 그녀의 친구였던 주나 반스였다.
이러한 파리 체류 시기, 그녀의 첫 장편 <라이더>를 비롯하여 <여인들의 연감> 등도 출간하였는데,
<라이더>의 경우, 생각보다 잘 팔렸다고 한다.
계속 글을 쓰던 주나 반스의 30년대에서 중요한 이는 페기 구겐하임이었다.
구겐하임 미술관과 관련된 구겐하임 가문의 부자 맞다. 페기 구겐하임은 여러 모더니스트들을 후원하였는데, 주나 반스도 이 후원을 받으며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다.
이러한 후원 속에서, 주나 반스는 그녀의 3번째 장편이자 오늘날 대표작 <나이트우드>를 발표한다.
이 시기 이미 페이버 앤 페이버 출판사를 먹어버린 T.S. 엘리엇의 관심으로 인하여 높이 평가받으며 출간된다. 물론 엘리엇 등의 조언으로 편집본이었지만.
상업적으론 그다지 안 팔렸지만, 많은 모더니즘 걸작들이 그러하듯, 평론가들과 다른 작가들은 높게 평가하였고, 오늘날까지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퀴어 소설의 대표작으로도 뽑힌다.
오늘날은 편집된 형식의 출간본과 반스 본인이 원하던 형태의 출간본, 모두 볼 수 있다.
그 후 주나 반스는 알콜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술을 마시던 걸 중단하고, 그녀의 자전적이고 비극적이고 기괴하던 가정사를 담은 희곡 <안티폰>을 집필하는데 집중하며 끝내 완성하고 발표한다.
그리고 40년대 무렵, 그녀는 다시 뉴욕 그린위치로 돌아오게 된다.
이런저런 세상사에 지쳤던 까닭일까?
그대로 주나 반스는 은둔자가 되어버린다.
이후로 딱히 그녀는 무언가 대외적으로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녀를 찾아오는 이들도 거부하고, 그녀를 재평가하는 이들이 찾아와도 욕설을 내뱉으며 거부한다.
물론 글 쓰는 걸 멈추진 않았다. 주로 시를 쓰며 남은 기나긴 생을 은둔자로서 보내는데, 오늘날까지도 그녀의 시 유고들은 정리되고 있다.
<봄의 제전>
- 주나 반스
인간은 자신의 주제의 육신을 몰아낼 수 없다,
자아내는 실 위의 누에가
다시 생각하기 위해 수의를 잣는 것처럼.
"주나....아직 살아있지?"
그녀가 은둔하는 집 맞은편엔, 그녀의 동료였던 EE 커밍스가 살았다.
그리고 커밍스가 회고하기를, 주기적으로 주나 반스가 무사한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창밖에서 '살아있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물론 커밍스의 염려는 친구로선 좋은 우정이지만, 사실 쓸모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주나 반스는 커밍스가 죽은 이후로도 20년을 더 살았다.
"꺼져"
주나 반스는 은둔자로서, 1982년까지, 거의 마지막까지 살아있던 모더니스트로서, 90살의 은둔자로서 계속 살아갔다.
그 사이 세상은 끝없이 변하였고, 그녀의 대표작 <나이트우드>가 어느 새 레즈비언 소설로서도 재평가받는 등의 일이 있었고
수많은 이들이 그녀를 구심점으로 삼거나, 재평가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주나 반스는 욕설로서 그들을 반겨주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서점에도 고소를 했을 만큼, 주나 반스는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은둔자로서 살아가는데 집중했다.
물론 그녀의 노력은 사실 의미 없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당장, 퍼킹김치랭귀지로도 우리는 그녀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글을 읽을 때는 불을 끄고, 이불을 덮어쓴 채 히키코모리처럼 읽자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 위대한 피츠제럴드 (1), (2)
- 토끼공듀의 삶
아 이게 그사람이구나 듀나가 자기닉 따왔다던
이사람 소설읽어볼까말까 존나 고민했는데 모더니즘이라하니 존나어려울것같다 그래도 읽어보고싶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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