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1985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정소성의 <아테네 가는 배>


(표지 기깔나게 뽑힌 듯)









우리나라 역대 문학상 수상작 목록을 보면 일반 독자에게 작품은 물론이고 작가 이름조차 생소하게 느껴질 만한 작품이 더러 보게 되는데, 이 작품도 그 중 하나임. 그래서 위의 짤처럼 역대급 라인업 명단에서 짤리는 안습한 상황의 주인공 취급을 당하기도 함. 하지만 작가 생전에 출간된 <정소성 문학전집>의 서문을 보면 이 작품에 대한 상당히 재미있는 일화가 들어 있음.


이에 따르면 당시 제17회 동인문학상 심사는 이미 최종심까지 완료가 되던 상황이었음. 그래서 K라는 작가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내정해 놓고 있었는데,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선우휘가 집에 와 보니 이 작품이 실린 <문학사상> 3월호가 눈에 들어왔던 거임. 별 생각 없이 이 작품을 읽어본 선우휘는 다음 날 심사위를 찾아가 이렇게 제안하기에 이름.







"심사, 재심합시다."


이렇게 최종심을 다시 치르게 되고 <아테네 가는 배>는 극적으로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는 거임







참고로 당시 심사평으로 보아 원래 내정되어 있었던 수상작은 강석경의 <숲속의 방>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 이 작품은 이듬해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으니 결과적으로 윈윈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 듯..?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은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임. 박사과정을 프랑스에서 취득했던 작가의 이력 덕분에 유럽의 풍경이나 인물에 대한 풍부한 묘사 능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음. 주인공 화자는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있는 사학도인데, 학위를 얻고 귀국하기 전에 그때껏 가보지 못했던 그리스를 여행하기로 함.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그리스로 배를 타려던 곳에서, 평소 괴짜로 취급받던 또 다른 유학생인 주하를 만나게 된 거임. 주하는 자신의 그리스 방문에 화자가 동행하기를 요청하고, 이 과정에서 화자는 주하와 동행하는 가지각색의 인물들의 면모를 접하게 됨.


이 작품의 장점은 이러한 군상을 통해 동양과 서양, 동유럽과 서유럽, 가깝게는 그리스와 터키와 그 밖의 각종 나라와 민족이 교차하는 지점을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다는 거임. 그리스라는 소설의 무대는 현실적으로는 이 동구권과 서구권이 만나는 장소라는 점에서, 관념적으로는 신화와 전설이 펼쳐졌던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곳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주인공들의 국적인 한국의 분단 시대의 아픔이 집결하는 장소가 되고, 나아가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국제적인 관점 속에서 이해하게 만들어버림. 이 점에서 이 작품은 확실히 비범한 작품인 것이 사실이고, 당시로서는 세련되게 느껴졌을 것이라고 생각됨.


다만 약간 아쉬운 것은 구성과 문장이 약간 덜 다듬어져 있다고 느껴진다는 점이었음. 소설의 중간중간에 끼어 있는 유럽 역사나 지리에 대한 현학적인 설명들은 이야기 속에서 어쩔 때는 잘 녹아 있지만 어떤 경우는 불필요해 보이기도 함.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병주의 문체에서 평균 내지는 평균보다 조금 아래 수준의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음. 일곱 명이나 되는 주인공 일행의 군상 역시 너무 현란하다는 기분을 주는 것이 사실이었음. 심사평에서 선우휘는 이러한 일종의 문체의 현학성이나 구성의 번잡함에 대해 처음엔 불만이었으나 작품을 다 읽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고 말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흠으로 남는 면이 있지 않나 싶음.


하지만 어쨌든 완벽하진 않더라도 독특한 스케일이라는 장점을 가진 작품임에는 분명함. 한국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읽어봐도 좋을 것 같음.






"서울을 아느냐, 서울을?"

"서울? 알지. 벤베누티가 깨진 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