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c~d
-내 말은 용기란 일종의 보전이란 뜻일세. 법에 의한 교육을 통해 두려워할 것들이 무엇무엇이며 또 어떠한 것들인지, 이와 관련해서 생기게 된 소신(판단)의 보전일세 그리고 이를 언제나 보전한다고 함은 고통에 처하여서도 즐거움에 처하여서도 그리고 욕망에 처하여서도 공포에 처하여서도 이를 버리지 않고 끝끝내 보전하여 지님을 의미하네 자네가 원한다면 이에 유사한 것으로 생각되는 비유를 자네에게 해 주겠네만-
사주덕의 시작이다.
이전 대화편에서 한 번씩 골고루 논의했던 내용들이다. 여기서 절제에 관한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430e
-절제가 더 협화음 및 화성과 유사하다네. 절제란 어쩌면 일종의 질서요. 어떤 쾌락과 욕망의 억제일 걸세.-
절제란 영혼이 지녀야 할 덕목 중에서 충돌을 예방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작용을 한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말속에는 가운데를 지향하는 두루뭉술함이 엿보이지만, 이건 사실상 가장 중요한 것으로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게 도와주는 절제이다. 플라톤 대화편을 읽으면서 페라스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척도(metron), 측정이 가능한 나눔. 끊어지는 것. 어디서 끊으면 좋은지 영혼의 삼분설(이성적인 부분・격정적인 부분・욕구적인 부분)에서 우리가 그 범위를 알 수 있을까? 발끝부터 무릎까지는 무엇이고, 배꼽부터 목 언저리는 무엇이리라~ 이런 식으로 세밀한 '끊음'은 있을 수 없다. 그라데이션을 생각해 보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붉은색이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파란색으로 바뀌던가? 우리 영혼은 칼로 잘라낼 수 없다. 그 이유가 바로 절제다. 대화편을 이어서 읽어보면
-'저 자신을 이긴다'는 표현을 써서 말하듯이 말일세. 어떤 식으로 그러는지는 나도 모르겠네만, 또한 절제의 발자국처럼 그런 유의 다른 표현들로도 말하지. 아니 그런가? 그런데 '저 자신을 이긴다'는 표현은 우습지 않은가? 저 자신을 이기는 자가 또한 저 자신에게 지는 자일 것이 분명하고 또 저 자신에게 지는 자가 또한 저 자신을 이기는 자 이기 때문일세. 이 모든 경우에 실은 동일한 사람이 지칭되고 있으니 말일세. 그렇지만 내가 보이게 이 표현은 이런 걸 말하려는 것인 것 같으이. 즉 혼과 관련해서 인간 자신 안에는 한결 나은 것과 한결 못한 것이 있어서, 성향상 한결 나은 부분이 한결 못한 부분을 제압할 경우, 이를 가리켜 저 자신을 이긴다로 말하는데, 이는 어쨌거나 칭찬하는 것일세. 반면에 나쁜 양육이나 교제의 결과로 한결 못한 다수의 부분에 의하여 한결 나은 작은 부분이 제압될 경우, 이를 꾸짖어 나무라되, 이와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을 일컬어 저 자신에게 진 무절제한 자라고 하네.-
이와 같이 절제는 영혼 속에서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방식으로 욕망이 표출되는 상황을 예방하는 통제력이자 영혼의 다양한 부분들의 일치와 조화를 통해서 '나뉘지 않는' 하나의 혼이 되어주도록 한다. 이를 지혜라고 말하는데 그건 나중에 할 일이고. 우선
혼에 빗댄 이상 국가의 세 가지 계층 또한 마찬가지다. 세 가지 계층은 분명 겉으로는 분별할 수 있. 제도적으로 분명하게 구분된 것은 맞다. 433a에서 '제 일을 하는 것'이 올바른 상태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그 셋은 하나의 '국가'로서 끊임없이 유기적으로 이어져야(절제) 이상적인 국가로 유지(용기)될 수 있는 것임을 <국가>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다. 어느 한 계층이 다른 계층과 동떨어져 있게 된다면, 예컨대 수호자 계층이 칼로 자르듯 나뉘어있다면? 군국주의라는 말을 어디서 들어보지 않았던가.
만약 누군가 영혼의 성향이 이성적인 부분인 지혜의 추구보다 욕구적인 관심사에 초점을 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교육하는 것이다. 이상 국가의 확고한 분리 시스템 안에서도 어떤 판단과 행동이 실질적으로 행복한 삶을 이루어낼 수 있는지 판단 가능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모두가 잘 살기 위해 나부터 내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 근면하고 절제하고 지혜를 추구하는 삶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요하게 가르친 덕목인듯함. 그리고 이성, 기개, 욕구 세 가지 혼의 면모는 훗날 칸트가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이렇게 세 편의 저서에서 세분화한 것 같은데 이런거 보면 근현대 철학을 보기 전에 플라톤을 읽는 것에서 서양 철학 이해가 시작되는게 맞는거 같음
그나저나 이 다음권 시작 때 청중들이 4권에서 나온 내용으로 시비를 걸며 시작하지 않았으면 567 건너뛰고 8권으로 넘어갔을 거라는 의견을 들은 적이 있긴 함 ㅋㅋ
피융신들 존내 깨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