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왜 쩌는지 생각해보았다.
1. 상징적인 언어가 연상 작용의 흔들림을 극대화했다. 나보코프 글을 읽을 때 지각이 흔들리는 것처럼, 조이스는 그러한 효과를 단순히 어휘의 본 뜻 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뜻까지 활용하여 황홀하게 만들어냈다. 역본의 주석이 풍부해서 다행이다.
2. 쉼표를 이용하여 시선이 사로잡힌 부분에 먼저 주의를 이동시키는 기법이 도입됐다. 예를 들어 ‘나는 치킨을 먹었다.’ 라는 문장을, ‘치킨, 나는 그것을 먹었다.’ 라며 부자연스러운 순서로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작가가 이 기법을 사용하지만 조이스의 글은 유독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듯 보인다. 그것은 아마 의식의 흐름을 더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생각하기에 앞서 그보다 먼저 어떤 디테일에 주의가 사로잡힌다. 의식의 운동에서는 생각하는 것보다 보는 것이 먼저고, 또한 생각 자체는 어딘가에 주의가 이유 없이 사로잡힘으로써 일어난다. 생각이 해석의 운동이라면 그것은 보이는 대상과, 반대로 전혀 보이지 않는 뜬금없는 대상과의 관계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무의식적인 작용일 것이다. 조이스의 글은 이 과정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분리시켜 드러냈다.
다만 원문이 그러한 형태인지, 아니면 번역가의 역량과 문체에 따른 변화인지는 모르겠다. 둘 중 어느 쪽이든 그러한 특징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쉼표로 동작들을 길게 연결시켜서 시간의 순차적인 흐름을 그대로 상상할 수 있도록 써 놓기도 했다.
3.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감각 흐름으로는 말이 되는 문장 기법이 사용됐다. 예를 들어 나는 치킨을 먹었다. 치킨의 깃털이 나를 집어삼켰다. 이런 종류의 문장은 미시마 초기 단편에도 많이 보인다. 조이스는 이걸 이용해서 논리를 버리고 연상을 통제했다.
4. 이 정도면 만연체다. 만연체는 주의를 직접적으로 이동시키는 동사보다 그 수식어가 더 중요해질 때 주로 사용된다. 수식어가 과하면 자연스럽게 의미 간에 종속 관계가 생긴다(종속절). 쉼표 많고, 수식어도 많은 율리시스의 문체는 의식이 실제로 경험되는 방식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하려 했다는 그 의도에 아주 잘 들어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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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여기까지 써 놓은 방법들은 다른 작가들도 다 쓰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내 분석은 ㅈ도 의미가 없었다는 말이 된다. 조이스의 글은 도대체 왜 이렇게 쩌는 걸까. 시인으로서도 재능충이라 그런 건가? 조이스가 이러한 방법들을 과장되게 밀어붙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아예 내가 알지 못하는 방법들이 있는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조이스가 외계인인 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독갤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영장류 goat라는 글을 본 적 있는데, 아마도 조이스는 외계인 goat인가 보다.
놀라운 건 이제 겨우 1부 밖에 안 읽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쩔 것인지 예상이 안 된다. 3부부터 꽤 난해하다는데 기대가 된다.
그리고 이건 딴 얘기인데 스티븐이 귀엽다. 전작에서 이어지는 주인공인데 그때도 귀엽다고 생각했지만 율리시스에서는 더 귀여운 것 같다.
이제 똥글 안 쓰고 성실하게 감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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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어디 껄로 읽음?
어문학사 김종건 - dc App
조이스 작품이나 다른 사전지식 많이 요구된다는데 어떰?
아직 1부라 그런 거 없음 글고 율리시스 전에 읽으면 좋다는 거 이미 다 읽어서 ㄱㅊ - dc App
갤에 다 읽은 애들한테 물어보셈 - dc App
김종건 교수역 주석은 많지만 읽기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떤가요 그래도 읽을만 한가요
잘 읽혀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