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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도 언급되는 장 뤽 고다르의 '영화사'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영화와 이미지에 대한 고다르 나름의 고민으로, 수백편의 영화가 인용되기는 하지만 결코 정석적으로 인용되진 않으며 분절적이고 파편적으로, 혹은 누락된 형태로 인용된다. 영화의 역사가 단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며, 복수이며 분절적인 것임을 드러내기 위함인데, 바로 이 지점이 책이 고다르의 영화랑 닮았다 생각하면서도 가장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 글은 수많은 글들의 파편적 인용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고전적인 방식에 가깝게 회귀하고 있기 때문이다.
괴테를 비롯해 여기서 언급되는 수많은 작가들과 고전 영화들은 작품 자체라기보다는 파편적인 부분으로 전달되며, 이러한 전달 자체는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적 외양의 이미지를 가져다 준다.
그러나 이 모든 인용들은 오직 독자가 각각의 인용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 유희적인 코드로 읽힐 수는 있을지언정, 결론적으로 곁다리의 위치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이는 이 글이 본질적으로는 괴테에 관한 글이기 때문으로, 글 자체가 괴테의 총체성으로 향하면서 각각의 파편적인 인용들을 전부 하나의 기치 래에 통합시키기 때문이다. (작중에서라면 필시 잼이 아닌 샐러드와 같다고 이야기 했으리라.) 이는 각각의 인용을 단순히 분위기 조성용이나 유희적 코드로 그치게 만들뿐, 각각의 이미지가 충돌하고 분화되는 고다르와는 크나큰 차이를 지닌다.
괴테의 명언을 찾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구.원받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파우스트적인 이야기이자 고전적인 결말은 글을 가볍게 만드는 동시에 인용들을 지식 현시의 위치에서 더 나아갈 길을 막는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모두 써내고자 하는 욕심이 상당히 드러난 글이라 생각하는데, 거의 초기작임을 생각한다면 이 부분을 참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 이 모든 인용들이 이름 이상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그 모든 함의에도 불구하고)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즉, 글 자체의 진로가 고전적으로 회귀하기 때문에, 이 모든 파편적인 인용들은 결국 유머 코드 정도로 전락한다는 점은, 본문에 등장한 '영화사'의 언급을 더욱 빛바래게 만든다.
그렇다면 여기에 남는 것은 오직 이 모든 인용들의 원본을 찾아내며 얻을 수 있는 발굴자적 즐거움 뿐인데, 그 점에서 책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인용을 그 자체로 즐기는 독자라면 아마 흥미롭게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점에서 나는 썩 흥미롭지 않았고, 단지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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