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d87fa11d02831b24d3c2d27291c406c42f12d195c3e4bcebf8fc9d670dfac14522b7dde0b8110a5554b874df0c1be08ad3bae870d6b5c8cf7ac


한동안 소설에 소홀했다. 어려운 책은 재미없다고 느꼈으며 쉬운 책의 문체는 세련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독서의 중요성을 언제나 강조하시는 학교 국어 선생님께서 중간고사 시험에 ‘공부머리 독서법’이라는 책의 1장章을 내신다고 하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 책을 읽던 중 소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2년 전 읽다가 학교 책이 낡다면서 덮은 ‘멋진 신세계’를 (시험 기간에) 읽게 되었다.


같은 디스토피아류의 소설이지만 1984와 멋진 신세계는 분위기가 다르다. 1984를 읽으며 느낄 수 있는 색감은 잿빛, 청회색, 검은색과 같은 채도 낮은 칙칙한 색들뿐이라면, 멋진 신세계를 읽을 때는 초록색, 분홍색 등 밝은 색을 상상할 수 있다. 이는 그 신세계의 본질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1984의 오세아니아에서는 “무산 계급은 인간이 아니”며 인간으로서 사고할 수 있는 내외부당원들은 텔레스크린부터 도청기까지 온갖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멋진 ‘신세계’는 다르다. 이 문명화된 세계에서 피상적인 통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모든 사람들은 부화소에서 조작되며 태어나고, 성년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수면교육을 받지만, 그건 통제라기보다 ‘진리’에 가깝다. 최상위 지식 계층인 알파 계급도 이를 통제라고 여기지 않는다. 사회화를 위한 진리의 교육일 뿐이다. ‘만인은 만인의 소유물’이라는 ‘진리’에 따라 연인이나 가족과 같은 집착적 관계 없이 모두는 모두와 성희性戱를 즐긴다. 감정적으로 불안하면 부작용 없는 마약 소마가 있고, 온갖 감각적 쾌락을 촉각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다. 사회에 불안정을 가져다 줄 요소는 없다. 이러한 사회는 상당히 ‘유토피아’적이며, 올더스 헉슬리가 이 책을 쓴 1930년대보다는 현대 21세기 사람들에게 더욱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이러한 사회를 보는 다른 관점을 제공하는 인물이 세 명이 등장한다. 알파 계급 요소의 결핍으로 인해 자신의 반사회성에서 우월감을 느끼는 버나드, 타고난 긍정적 성격과 정서과학으로의 추구를 지닌 헬름홀츠, 마지막으로 문명인 부모에서 태어나 비문명 환경에서 자란 존이다. ‘멋진 신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고 자란 존은 자신이 사랑하는 레니나가 결혼(문명인에게 얼마나 상스러운 단어인가)자신의 몸을 탐닉하는 태도를 지니자 ‘창부’라 욕하며 거부하고 ㅡ “우리의 사악한 정신이 아무리 강한 유혹의 손길을 뻗칠지라도 나의 정조는 음탕함을 용해되지 않으리. <템페스트 4막 1장> 결코! 결코!” ㅡ 신체적 고통 속에서 극기로 기독교적 가치를 추구하는 ㅡ “썩어버리고 말 보잘것없는 육신을 운명과 죽음과 위험에 내맡기고 겨우 계란 껍질 한 개를 얻는다는 것. <햄릿 4막 5장> 이런 처사에도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ㅡ 인물이다.


소마를 배급받는 델타 계급에게 소마를 버리면서 자유를 외치고, 사회화 과정의 일환으로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구경하러 온 아이들을 밀치고, 고독을 위해 외딴 등대 건물에서 살아가는 그에게 찾아온 레니나를 창부라 욕하며 채찍을 때리는 존의 모습은 희화적이지만, 우리에게 문명화된 신세계의 인간 가치 상실에 대한 경고를 던진다. ‘과학적 진보를 통한 고통의 상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질문을 던지게 하는 과정에서 결국 신세계의 문명인들이 1984의 무산 계급과 같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가혹한 노동이 감각적 쾌락으로 대체되었을 뿐, 그들은 사색을 할 수 없는 유아적 존재들이며, 통제를 통제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전체주의적 사회에 대한 항거나 변화 추구를 할 수 없다. 과학의 성과로 인해 경건을 잃고 사색을 통한 진리 추구를 할 수 없는 신세계인들은 정말로 문명인인가?


이 책이 진보는 악이라고 말하는 반지성주의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긴 침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야만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문명이 진보하지 않았을 때 가져야 하는 것들을 열거함으로써 헉슬리는 단순한 퇴행으로 진보의 부작용을 갖지 않으려는 태도를 갖는 것을 막는다. 과학적 진보는 존재해야 하지만, 진보에서도 잃어서는 안 될 가치가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진보로 인해 스스로 사고하는 과정을 잃고 있지 않는가?


국어 쌤이 중간고사 끝나고 책 사오래 책 추천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