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줄글책을 본건 초6 때 였던거 같음
당시 역사를 좋아했던 나는 유튜브보다 더 자세히 역사를 알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중국사 책을 빌렸었음

그 책이 600페이지는 넘었었던거 같은데 읽어본 글이라곤 구몬 국어에 나오는 몇 페이지 짧은 글 밖에 없던 내가 어떻게 소화했겠냐 당연히 절반도 못가고 포기함
그래도 어른들이 읽는 책을 나도 읽었다는 것에 뽕에 찼는지 그 뒤로 줄글책만 읽기 시작했었음

하지만 그때는 글을 이해한다거나 재미를 느낀다는 것 없이 그냥 줄글책을 읽는 내가 멋있어서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이다 하고 읽었던거 같음

그렇다 보니 책의 난이도 같은건 나한텐 문제가 없었기에 총균쇠, 사피엔스, 군주론 이런 어려운 책들만 읽고 '이런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라는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음

이런 이상한 독서를 하는 나를 본 아빠도 어디가 잘못 됐다고 느꼈는지 나에게 어려운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닌 책을 즐기고 음미하는 사람이 독서를 잘 하는 사람이라며 재밌는 책부터 보자며 소설을 한번 읽어보라고 쥘 베른의  '80일 간의 세계 일주'와 '해저 2만리'를 주심

당시 심각한 자아도취에 빠져있었던 나는 처음엔 안읽으려 했지만 아빠의 계속된 부탁에 결국 읽음
처음엔 투덜투덜 읽었지만 읽다보니 너무 재밌는거임
줄글이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는게 나는 너무 놀랐음

이 이후로 나는 글에 눈을 뜸
그때가 중학교 들어가기 전 초6 겨울방학이었는데 아빠랑 같이 거의 매일 도서관을 가서 헤밍웨이를 좋아하는 아빠를 따라 헤밍웨이 소설을 주로 읽었던거 같음

아빠 덕분에 책에 재미를 갖게 된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독서토론부도 해보고 친구들과 책에 대해 같이 얘기도 해보면서 아빠가 바랬던 즐기는 독서를 하게 됐음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글을 가오로라도 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함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듯이 나는 어줍잖게라도 글을 읽었기에 아빠가 나에게 새로운 지평을 여는 기회를 줬던거 같음

요즘보면 패션으로 책을 읽니 지적허영심이니 자아도취니 하는 말이 있던데 너무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음
물론 질려서 책을 놓는 사람도 있겠지만 읽다보니 재미가 들려 책에 빠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음

다른 사람이 책을 어떻게 읽던 너무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말고 응원해줬으면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