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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중단편전집의 4권까지를 읽고 있는 지금, 최고로 꼽을만한 일작을 꼽으려면 무엇을 꼽을지 모르겠다. 그의 단편 대부분은 특유의 읽기 좋은 문체 덕분인지, 늘상 거슬림 없이 넘어오기 마련이었다. 오히려 그렇기에 한 작품을 고르기는 참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예술과 전통의 대립을 다룬 금시조, 젊은 날의 방황을 투박하게, 동시에 세련되게 그려낸 그 해 겨울, 온갖 한문 표현이 돋보이는 맹춘중하, 전통을 추억하는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까지, 그에겐 이토록 많은 좋은 작품이 존재하기에, 결국 일작을 꼽는 일은, 할 수 없이 하는 궁색한 변명일지도 모르겠지마는, 딱 이거다 정하긴 어려운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읽게된 지금, 어느 정도는 내가 무슨 작품을 꼽을지 확신하고 있다. <황량한 이 역에서> 라는 작품은, 그토록 좋아하던 주제인 향수와 사랑이 섞여들어간 작품이지 않나. 언젠가 고를 일이 있다면 그 날도 편파판정은 잘만 작용할 것이다.
이 작품은 장르문학처럼 느껴지는 감이 큰데, 이런 인상이 국문학 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작가는 최인훈이다. 그의 글은 순수문학임에도 불구하고 장르성이 짙게 묻어나온다. 그건 사랑에 관한 주제를 다루면서 종종 생기는 일인데, 대부분의 작가는 그 층위를 깊지 파지 못하거나 너무 파고만다, 헌데 최인훈은 다르다. 사랑을 분리해 떼어놓으려는 것처럼 보여도, 그 글을 읽다보면 전체에 사랑이 녹아들어가있음을 알 수 있다. 거대한 사랑의 서사가 아니라 사랑 그 자체에 가깝다고 표현해도 괜찮을 성 싶다.
시작부터 풍경의 변화와 동시에 독백하는 내용은, 이윽고 찻집이되 찻집이 아닌, 마치 공상속의 추상적인 공간과 비스무리한 곳으로 전이된다. 이 장면은 꼭 취한듯이 몽롱한 형식으로 그려짐에도, 실제로 몽롱한 것은 주인공이지 상대가 아닌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문열은 그 몽롱한 상대방을 짧지만 세밀하게 그려내는 일을 통해 장면 자체를 담배연기로 자욱한 대합실로 전환해냈다.
이문열의 작품이 늘 그렇듯이, 오늘도 주인공의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역과 가까워진 계기도 그분께서 여행을 떠났노라 설명받은 까닭에서이다. 순수하게도 황량한 그 역에서 그는 오지 않을 이를 기다린다. 이 기다림 끝에 만나는 이는 다름 아닌 외팔이 검차원이다.
그는 주인공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몇십년간 철로 생활을 하며 경험했던 그 대단한 지식들. 그가 회상하여 펼쳐낸 역사는, 그 사실여하와 관계없이 방대하다. 헌데 그 다양성과 달리 과거로 자세히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과, 결코 그것들로 말미암아 가르침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 역시 못지않게 중요하다.
‘…오히려 그 무렵의 그에 대한 기억으로 더 정직한 것은 그저 한 유쾌한 친구로서이다….‘ 사상적 스승보단 외로움을 달랠 격조 없는 친구와 엇비슷할 이 역사와의 역사는 기실 그리 길지 못하다. 그렇지만 짧다 하여 추억이 아닌 것이 아니고, 길다하여 꼭 추억인 것은 아니니.
이 부분에서 여인은 다시 말한다. 제게도 승차권이 마련되었어요. 여자는 이별을 암시하며 회한 섞이고 독기서린 웃음을 보인다. 조화된 그 표정을 나는 아름답다 생각한다.
이 기억을 간직한 주인공 그는 삶이 일종의 기차이며 우리는 그동안 다양한 역을 거쳐가며 살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인생이란건 정차와 승차의 연속이며, 비용은 쾌락으로 지불해 어미 뱃속에서 나오는 하행을 시작으로, 하늘 위로 가는 상행으로 맺음한다는 그럴 듯한 비유를 든다.
어쩌면 늙은 친구의 다시 만나자는 한 마디는 만세불변의 종착역을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작 인간은, 또 인연은 역이 되기 어렵다. 만남이란 놈은 보편성보다 우연성으로 가득 차 있다. 우연성으로 만난 너는 지금 짙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말 한마디 채 건네지 않는 나는 그 애처로움에 울적함마저 느끼고 있다.
과거로 넘어가면 나의 예민함, 그리 부르는게 옳을 무언가에 빠진 너는 이윽고 맹목적이다. 정작 나는 똘똘 뭉친 사상 따위에 물들어 그런 것들에 관심을 놓은지 오래인데도, 사랑을 따위로 취급하며, 여행 속의 어떤 한 에피소드로 취급하며 관심가질 수 없었음에도. 나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자여 우리들도 그러하였다.‘ 라는 말로 그것들을 한 에피소드로 여기고 있건만, 너는 놓지 못했다.
이 거창한 오디세이아가 끝나면 무엇이 오느냐고 너는 묻는다. 내 경우는 오디세이와는 사뭇 다르다. 신화적인 요소도 없거니와 강요된 고행도 아니기에, 그렇지만 그렇게 비유한다면 너는 페넬로페가 될터였다. 이제서야 깨닫는다. 저 초로의 노인과 만난 일이 어쩌면 불행이였음을. 모든 일에 달관하는 것처럼 구는 일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였음을.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존재하는 것과 사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나는 오만하고 과장된 허무주의자다.
내 생각으론 아직도 산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의 자그마한 변형일 수 밖에 없다. 평생을 기차를 통해 살아온 이상 지나친 역으로 되돌아갈 수 없음이 명백하다. 썼던 편지들을 소중하고 그리운 것들이라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끝까지 그렇게도 냉철한 이지로 살아가고자 원하면서 그런 기억의 과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냐고 조소한다.
내게 건네진 마지막 인사는, 언젠가 다시 만난다해도 허심탄회하게 목례로 넘어가자는 이야기다. 산다면 어느 역에서나 만날 것이라는 어린 날의 노인과는 정반대다. 다음을 기약하지 않고 나라는 인연으로 되다만 역을 지나쳐버릴 것임을 논하는 너의 뒷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상대의 말어귀가 끝나자 장면은 다시 현실의 찻집으로 전환된다. 주인공이 이리 독백하는 것을 끝으로 소설은 마무리 된다.
’그러나 여자여, 참으로 떠나야 할 것은 네가 아니었다. 생각하면 나야말로 아무런 애착도 미련도 없이 너무 오래 이 황량한 역을 배회하고 있었다. 네 조그만 번민과 고뇌로부터, 자기가 창출한 여러 가치를 이것저것 고르기만 하고 끝내 선택하지 않는 자에 대한 이 대지의 불쾌한 기억으로부터 진작 떠났어야하는 것은 나였다. 지금 내 귀에는 새로운 출발을 재촉하능 기적소리가 들린다. 일찍이 어린 나의 새벽잠을 깨우고 성장한 나를 끊임없이 떠돌게한 저 기적소리. 그리고 지금은 더 머물 곳도 없는 이 대지로부터의 출발을 재촉하는 저 기적소리. 기약하지 않았으되 날은 다 되었고, 나는 올때처럼 무망하게 떠나지 않으면 안 되리라….‘
황량한 이 역에서라는 작품은, 분량도 길지 않고 특이성에 적응하기도 쉬운 단편만이 오롯한 역량을 끌어낼 수 있는, 두 가지 서술을 교차해가며 진행한다는 매우 독특하고 또 아름다운 방식을 십분활용한 소설이다. 역량 문제로 반절도 주워담진 못했지만, 이문열이 이 작품에서 그려낸 서술방식과 젊디젊은 비망록의 완숙성은 놀라울 정도다.
그렇기에 직접 보았으면 한다. 짧은 몇 페이지 따위로 이런 소설을 적어낼 수 있다는게 참 신기할 따름이고, 이런 감상을 들게 만드는 것 역시 못지 않게 신비할 따름이다.
이제와서 떠올려보니 네가 언하기전까지 나는 이 조각된 역을 떠나야함을 몰랐구나. 언젠가 다시 보길 바라매, 그러면 이제야말로 안녕. 이 황량한 역이여.
오늘도 안쓰면 평생 안쓸거같아 밖에서 급하게 패드로 적었음
아마 비문이나 오타가 좀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최인훈 문학의 장르성 -> 최대로 느끼고 싶으면 <태풍> 추천 <광장>의 대체역사 if물 느낌이라 재밌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