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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염세주의도 잘못된 번역임1.흔히 쇼펜하우어 철학을 논할 때 '낙관주의'와 '염세주의'로 번역해서 쓰는 옵티미즘(Optimism)과 페시미즘(Pessimism)은 원래 개인의 밝거나 어두운 성격을 나타내는 심리 용어나 '정서적인 염세'를 의미gall.dcinside.com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백종현 번역보다 칸트학회 번역 추천함
쇼펜하우어 페시미즘을 일본 학자들이 '염세주의'로 번역해 그걸 한국은 무비판적으로 답습해 오해를 일으키듯이
칸트 번역에서 오해의 소지를 줄이는 쪽은 백종현 번역보다는 칸트학회 번역이 원문 의도에 더 맞다고 생각함
1. 'transzendental'은 백종현 번역의 '초월'보다 '선험'이 적절한 이유
논란의 대상인 'transzendental'의 정의는 칸트 본인이 '형이상학 서설'에서 아주 명확하게 정의했음. 이 개념이 결코 '모든 경험을 넘어서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경험에 앞서되(a priori) 오직 경험적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못을 박았음. 우리가 세계를 인식할 때 내면에서 작동하는 시공간적 감각 틀과 지성의 구조를 연구하겠다는 의미임. 시선이 바깥(초월)이 아니라 인간 내부의 인식 메커니즘(선험)으로 향한다는 뜻임.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한자 뜻 그대로 '경험에 앞서 경험을 성립시킨다'는 뜻을 가진 '선험(先驗)'이 맞고 이는 칸트의 정의와 일치함. 이를 백종현 번역처럼 '초월'로 번역하면 칸트가 그토록 경계했던 "경험을 넘어서 저 멀리 있는 것(transzendent)"과 한국어 어감상 겉보기에 구분이 불가능해짐. 만약 칸트가 살아 돌아와 한국어 '초월적 종합판단'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내가 왜 내면을 연구하는 철학을 저 세상 철학으로 만드느냐"고 화를 낼 수준의 왜곡이자 오해를 일으키는 번역어임.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라는 일본 학자들의 번역어 하나 때문에 인생과 세상을 혐오한 철학자로 제대로 공부 안하는 독자들한테 오해를 받았듯이 칸트 철학의 본질인 이 개념 역시 '초월'이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 형이상학적 뉘앙스를 풍기며 오해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번역으로서 부적절함
2. 'a priori'를 차라리 '아프리오리'로 음차 번역이 더 나은 이유
라틴어 용어인 'a priori'는 '실제 경험해 보지 않고도 그 참을 알 수 있는 논리적 성격'을 뜻함. 예를 들어 "삼각형의 내각 합은 180도이다"라는 사실은 전 세계의 삼각형을 일일이 자로 재보는 경험을 하지 않아도 당연히 알 수 있는 성질임. 대상의 유무나 실재와 상관없이 이성 자체가 가지는 '보편성과 필연성'의 성격을 규정하려는 것임. 이 단어를 과거 최재희 번역처럼 '선천(先天)'으로 번역하는 것은 타고난 생물학적 능력으로 오해될 소지가 커서 완전히 엉터리 번역임. 백종현 번역의 '선험'과 칸트학회의 '아프리오리' 음차 번역 둘을 보면 원래 이 단어를 '선험'으로 쓰는 것이 근대 철학의 표준 문맥에는 더 알맞음. 'a priori'를 '선험'으로 번역하면 정작 칸트 비판철학에서 훨씬 더 중요한 'transzendental'을 번역할 단어가 없어서 이를 '초월'로 밀어내야됨. 한국칸트학회가 이를 '아프리오리'로 음차 번역한 것은 한국어 조어 능력의 한계 속에서 'transzendental'의 진짜 의미인 '선험성'이라는 칸트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 선택한 불가피한 것같음. 한국어 어법에 흔치 않아 다소 기이해 '아프리오리'가 어색해 보일지언정, 칸트가 칼같이 나누어 놓은 개념의 기능과 경계를 원형 그대로 살리고 읽는 사람한테 오해를 주지 않는 쪽은 한국칸트학회 번역이고 쇼펜하우어 번역도 마찬가지로 그냥 '페시미즘'이라고 하는 게 더 나음.. 페1미니즘도 흔히 쓰이잖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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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쇼펜하우어 페시미즘 읽었구나?" = "너 삶에 고통이 많다는 철학 + 라이프니츠의 기독교 신정론 세계관에 반대하는 내용 읽었구나? O "
"너 세상 혐오하고 우울한 사상(염세주의) 읽었구나?" X
염세주의라는 번역어는 겉보기에 원래 쇼펜하우어의 페시미즘이 말하는 맥락을 상당히 거세시킴. 라이프니츠-볼프 학파의 이성주의와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비판이라는 측면보다 세상 혐오, 우울, 비관적 정서 상태를 먼저 연상시키는 경향이 강함. 삶의 고통을 강조했다고 해서 그것을 단순한 염세나 세상 혐오로만 이해하면 안된다고 봄
transzendental 어근 자체가 라틴어 trans + scandere
뛰어넘을 초 + 넘을 월. 그래서 초월이 맞지
선험적이 왜 초월적이 되는거지?
저건 ㄹㅇ 문제가 좀 있긴 한듯. 선험적인거랑 초월론적인거는 인간의 선천적인 인식개념으로 구비되어 있나 혹은 그 메커니즘의 탐구이냐라고 해서 비슷한 범주긴 한데 초월적은 이 둘이랑은 다른 물자체로 닿으려고 하는 개념이라서 좀 이상하긴 함
아포..스테리오리.....아프리..오리.. - dc App
아프리오리랑 선험으로 하자는 주장의 논리는 선험-트란스첸덴탈로 하자는 주장에도 완벽히 똑같이 적용될수있다고봐서 좀 현존재를 다자인으로 하는급의 직무유기로 느껴짐
그렇긴한데 트렌스첸덴탈은 한글 단어로 번역하고 아프리오리 1개만 그대로 음차번역 채택하는 걸로 절충한거라 어쩔수없음 "트란스첸덴탈한 종합판단은 어떻게 아프리오리하게 가능한가?" 이렇게 해버리면 더 가독성이 붕괴하고 그래서 걍 절충하고 타협해서 저렇게 된거같음
@ㅇㅇ 원댓글은 "트렌스첸덴탈한 종합판단은 어떻게 아프리오리하게 가능한가?" 가 아니라 "트렌스첸덴탈한 종합판단은 어떻게 선험적으로 가능한가?" 랑 차이가 없다는거임 선험을 아프리오리로 음차번역하는게 그리고 사실 니가 말한것도 잘못말한게 트렌스첸덴탈한 종합판단이 아니라 아프리오리한 종합판단임. 원문에 트랜스첸덴탈 안쓰고 아프리오리로 쓴다. 이걸 백종현역에서는 선험적 종합판단이라고 하는거고 칸트학회에서는 아프리오리한 종합판단임 - dc App
굿 나도 ㅇㅈ
1. 염세주의라는 단어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게 아니라 그냥 쇼펜하우어가 오해받는 거고 다른 니체든 데카르트든 다 마찬가지다 지금 이상하게 단어에 꽂힌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2. 칸트학회 책으로 모으고 있지만 아프리오리는 번역 기본이 없는 행동이다
나도 엄밀하게 그 뜻을 반영할 수 있는 단어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작성자 취지에 동감하지만, 아프리오리는 아닌 거 같음 물론 초월을 채용한 상황에서, 겉보기로 순수이성비판1 초월철학과 순수이성비판2 초월적 가상을 접했을 때 혼란이 야기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인듯 (물론 이 부분을 이해하기에 큰 수고로움이 들지는 않지만 진입장벽이 되니) 지난번 최악론처럼, 대체할 수 있는 단어는 없을까? 좋은 글 잘 읽었음 - dc App
그냥 허경영만세적이라고 번역해야 한다니까
초월을 모르니까 초월이 초험으로밖에 안받아들여지는거지 그냥 칸트 자체를 모르는 인간들이 칸트 읽으려니까 힘든거고 그런것들이 칸트 전공 교수라고 있으니까 수준이 그렇지
transzendental이 칸트 본인이 제1비판 B114에서 밝히듯 스콜라 초월범주(아리스토텔레스 범주를 초월하는 근본 범주)론에서 온 거인데다가, 칸트 본인이 재규정한 주제에 스스로 부주의하게 transzendent의 의미로 쓰는 대목이 적지 않음. 문맥 살리려면 각각 초월, 초절이 제일 적절하다 봄.
이러한 개념사적 내력을 주석으로 적극적 해설하는 게 차라리 오해를 없애는 길이지 칸트학회처럼 대충 미주로 단순 원어랑 잡다한 인물 약력이나 왕창 달아두는 건 제대로 번역하는 태도가 아닌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