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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읽을 생각은 없었는데 노르웨이의 숲을 읽는게 벌써 세번째다. 처음 읽었던게 대학교 1학년 한참 우울해 하던 때였는데 신기하게 분명 우울한 책인데 나는 읽으면 읽을 수록 오히려 힐링되는 기분이 들었다. 두번째는 여자친구한테 추천해주면서 책 샀다가, 세번째는 군대에서 책장 정리 하던 도중에 우연히 눈에 띄여서 읽었다. 채널 돌리다가 ocn에서 틀어주는 쇼생크 탈출 끝까지 보게 되는 것처럼, 노르웨이의 숲도 한 번 펼치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책이다.
읽어본 틀딱들이라면 다 하는 이야기지만, 나도 상실의 시대가 더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 생각한다. 삶의 목적도 없고, 이념도 없고, 유일한 친구, 사랑하는 사람까지 잃어버리고 종국에는 자기 자신까지 상실해 버리고 종국에는 자기 자신까지 상실해 버리는 모습을 보며 참 이 소설의 기저를 흐르는 공허감을 잘 잡아낸 제목이라고 느꼈음.
근데 이번에 군대에서 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면서 문득 아이러니한 소설이라고 느꼈다.
책이 일본에서 처음 출판된게 1987년인데, 이 때가 바로 일본 버블경제가 정점에 달한 시기였다. 그렇다고 빨갱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본과 인간의 괴리가 극심하다 이런건 아니고, 문화적으로도 전성기를 맞이한(지브리, 아다치 미츠루, 루미코 여사 같은 띵작들은 전부 이 때 나왔다) 낙관주의의 시기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주인공 같은 감성적인 아싸에게는 제대로 된 사람은 자살해버리고 '역겨운 사람들만이 살아가는' 상실과 공허감이 가득한 세계였던 것이다.
주인공이 방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주인공이 고통받던 공허감에 너무 잘 적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상처받지 않을 만큼의 정서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나같은 아싸들도 디시인사이드에서 인터넷 친구들과 대화하며 고독해지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소설에서 와타나베가 가지는 깊은 감정 교류를 하는 사람이 이제 몇이나 될까? 모두가 혼자지만 진정으로 고독 할 줄 아는 사람은 없는, 상실 상실의 시대에 살게 된 것 같다.
나도 상실의 시대 여자친구한테 추천했었는데 무슨 생각이었을까
우울한 책인데, 힐링되는 느낌. 동감. 왜냐하면 내 삶도 그래서 동의,동감되어서 그런거 아닐까. 같이 우울하니까.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라는 느낌이 들게 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