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는 예로부터 맛 좋은 연어와 작가들을 양식하는 곳으로도 유명하였다.
살아있는 희곡의 신이자 차기 노벨상 예약한 욘 포세도 있고,
최근에 현대의 프루스트로 이름 날리며 대충 머잖아 노벨상 후보에도 오르락내리락할 게 분명한 <나의 투쟁>의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같은 맛 좋은 연어들을 우리는 맛볼 수 있다.
물론 그 전엔 역시 현대 희곡의 아버지이자 신 <입센>이 있지만, 놀랍게도 노르웨이산 연어 중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가 무려 세 명이나 있다.
물론 대부분은 읽기 어렵다.
처음 탄 비요르뭐시기는 노벨상 초창기 10년간의 잃어버린 작가들급이라서 솔직히 개인적으로 읽어본 적도 없고, 영역도 구하기 어렵다.
그나마 시그리드 운세트는 중세를 잘 표현하며 좋긴 한데, 아마도 한국어역본이 없는듯하다.
하지만 이들은 오늘 이야기할 모더니스트들이 아니므로 생략한다.
오늘 이야기할 모더니스트는 놀랍게도 노르웨이산 연어가 아니라, 노르웨이산 파시스트 돼지다.
아이 엠 크누트
크누트 함순.
한국에도 <굶주림> 같은 대표작들이 여럿 번역되기도 하였다.
다만, 함순의 경우 생각 외로 애매모호한 작가다.
누군가는 톨스토이가 노벨상을 안 받은 것을 두고, 함순 같은 녀석도 받는데 톨스토이는 안 줬다며 까지만, 사실 함순이 그 정도로 폄훼될 작가는 아니었다.
크누트 함순의 업적은 분명했고, 영향력 있었다.
그는 '새로운 소설'을 쓰기를 외쳤으며, 동시대 및 후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토마스 만 같은 이들이 극찬을 하기도 했는데, 당대의 명성을 생각하면 오늘날 위상은 생각 외로 초라해보인다.
그가 귀신 같이 떡락한 아나톨 프랑스 같은 과일까, 아니면.....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1859년에 태어난 함순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어린 그는 부모와 강제적으로 이별하여 삼촌이 운영하는 우체국으로 끌려가야했다.
노예처럼 일하며 도망치다 추노당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시궁창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고, 이것이 그의 대표작들에서도 나타난다.
이렇게 일을 하면서도 반전을 노린 함순은 미국도 가고, 후원자도 찾으려고 노력하던 도중, 작가로서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럭저럭 괜찮게, 드디어 어린 노예는 도비가 자유를 얻듯, 작가가 되었다.
함순은 무엇보다 리얼리즘과 자연주의를 거부하였다.
이는 모더니스트들 상당수가 하는 일이므로 흔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함순은 모더니스트들 중에서도 틀딱 세대다.
한 마디로 선구자다.
밖을, 현실을 리얼하게 하는 걸 포기하면, 무엇을 해야할까?
밖이 싫다면, 안을 파야겠지.
자연스럽게 내면, 의식.......의식의 흐름....윽...머리가...
그렇다.
함순은 의식의 흐름의 선구자 중 하나이자 내면 독백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 결과, <굶주림> 같은 작품으로 히트를 치면서, 그는 당대의 소설을 이끄는 중심인물이 되었고,
후대의 토마스 만이나 카프카, 헤세, 헤밍웨이 같은 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등, 포텐만 보면 오늘날처럼 묻히는 게 이상할 정도로 잘 나갔다.
'인종차별적' 모습이 우려되었지만, 미국에서도 잠깐 살아본 그는 도시를 경멸하며
목가적인 삶을 지향했고, 이는 그의 후기 작품들에도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함순은 연어와 함께 노르웨이의 자랑 중 하나가 되었고, 1920년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하면서, 말 그대로 절정에 이르게 된다.
함순의 나이를 생각하면 대충 노벨문학상 받고 한 10년 정도 잘 놀다가 죽었으면, 호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나치게 오래 살았고, 지나치게 늙어버린 함순 앞에 '그새끼'가 나타나고 만다.
"노르웨이 침공"
"저...저! 더러운 나치쉑 카악 퉷! 함순! 우리 노르웨이의 대표로서 저 더러운 놈들에게 한 마디 해줘요!"
"하일...히틀러..."
"함순? 너....지금....??"
나치의 침공으로 노르웨이가 점령된 순간, 함순은 누구보다도 환호하면서 히틀러와 괴벨스까지 만나면서 마치 연예인과 악수를 나눈 팬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랬다. 사실 함순은 게르만빠였고, 누구보다도 나치를 사랑하던 파시스트 돼지였던 것이다.
괴벨스마저 자신의 일기장에 함순과 만난 날을 팬미팅한 날처럼 기록할 정도로 그는 열광적인 나치였다.
인종차별적인 면모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왜 뜬금없이 함순은 게밍아웃을 한 것일까?
여기엔 사실 살짝 비하인드가 있었다.
대추장국이 보어 전쟁에서 벌인 혐성질은 많은 유럽인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함순도 그 중 하나였다.
이를 보며, 함순은 어떻게든 영국놈들은 안 된다! 란 심정으로 영국의 대항마 독일을 빨기 시작한다.
러시아도 영국과 싸우지 않냐고?
명심해라, 북유럽과 러시아는 영원한 [적]이다---
"아니...그렇다고 영국 제국주의 놈들하고 더러운 소련 놈들하고 손 잡을 순 없잖아."
"그래서 나치는 괜찮고?"
나치 패망 후, 함순은 곧바로 붙잡혀 재판도 받고 벌금형도 선고받고 미친게 분명하다는 합리적 의심으로 정신병동에도 감금되는 등 온갖 조리돌림을 당한 끝에
1952년, 92살의 나이에 뒈진다.
물론 노르웨이인들의 정신적 충격은 엄청나 애써 함순의 작품과 삶을 분리하려고 애쓰거나, 벌금형도 조금 탕감하는 등 생각보다 럭키하게 뒈졌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것이 함순이 껄끄러워져서 조금씩 묻힌 원인들 중 하나다.
근데 생각해보면 딱히 묻혔다고 보기엔 어찌되었든 대표작들은 잘만 읽히긴 한다. 전성기 만큼 영향력만 없을 뿐이지.
물론 이것도 어찌되었든 현대 소설에 영향을 끼친 재능과 영향력으로 어떻게든 버티는 거지만.
명심해, 그새끼와 가까이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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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혜택만 읽어봤는데 진정한 대표작은 굶주림인건가...... 근데 칼 오베씨의 나의 투쟁은 프루스트과 소설인가요. 너무 비슷하면 읽기 싫은데.
하일 히틀러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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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작가들이 훼미니즘과 엮이는거랑 비슷한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