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엔 너무 시끄러운 세상 by 움베르트 에코



평생 학계와 출판계를 벗어나지 못한 천형인지 이런 종류의 독자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은 자신의 독서 취향과 갈망이 얼마나 고결하고 절실한지를 역설하며, 동시에 세상이 얼마나 그 고결함을 방해하는지를 탄식한다. 카페의 에스프레소 머신 소리, 지하철 안내 방송, 옆자리 낯선 이의 통화, 영혼도 의미도 없는 매스미디어의 소음과, 그보다 더 가치 없는 대중의 잡담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독서를 방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호소.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진정한 독서란 투스카나의 어느 수도원 독방에서만 가능한 것처럼 들린다.


나는 이런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알레산드리아에서의 기억을 떠올린다. 부모님은 -그분들의 야망과 나의 호승심이 기묘하게 합작하여- 나를 집에서 전철로 사십 분이나 떨어진 중학교에 보냈다. 매일 등하교길의 전철에서,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짐승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급우들이 광분하여 뛰는 쉬는 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유년의 독서를 통해 나는 방해받지 않는 독서법을 자연스레 배웠던 것 같다. 그리고 독서라는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활동의 쾌락도. 


사랑에 빠진 사람을 생각해 보라. 수 천의 군중 속에서도 그는 단번에 상대를 식별한다. 그녀가 그의 품 안에 있다면? 광장의 소음 따위는 그들의 밀어를 가로막지 못하리라. 독자의 손에 들린 책과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일단 내가 사랑하는 책이 내 손 안에, 내 눈 앞에 있다면 몰입이란 주변의 침묵 같은 외부적 환경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 책과 그 독자 사이에 형성된 인력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든 이야기의 재미에 대한 탐닉이든- 의 강도에서만 비롯된다. 


그 훈련 덕분인지, 노년이 된 지금도 나는 어디서든 읽는다. 밀라노의 공원 벤치에서, 런던행 이코노미 좌석에서, 시끄러운 식당 한 구석에서. 펼치는 순간 밀회는 시작되고,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릴 방해할 수 없다.


그러니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 책을 읽을 수 없다고 호소하는 독자들이여, 잠깐 멈추어 스스로에게 물어보시라. 혹시 그 불평이 "나는 그녀를 사랑하기엔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는 말과 같은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말이 고백하고 있는 씁쓸한 진실이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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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 해외 인터넷 매체에 기고된 글을 접하고 재밌어서 갈무리해 뒀던 거

저격의 의도도 솔직히 있긴 한데 ㅋㅋ  독붕이로서 한 번 쯤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 같아서 올려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