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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선



나의 비거니즘 만화

(2020)


‘아멜리’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앞세워 작가가 비건이 ‘된’ 경위와 과정을 비거니즘과 동물권에 관한 이야기로 함께 푼 그림 에세이. 동물도, 비(非)인간도 고통을 느낀다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어 비건이 되었다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와 그로 인해 찾아본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 등을 혼합한, 일상툰과 정보툰이 혼합된 만화라고 할 수 있음.


가장 짚이는 표현은, 굳이 따옴표까지 한, ‘비건이 되었다’는 말. ‘비거니즘을 추구하기로 했다’도 아니고 ‘채식을 하기로 했다’도 아닌, 그야말로 ‘나는 전과 다르게 비건이라는 무언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라는 그 첫 문장이 이상하게도 시작부터 마음에 걸렸음. 그 이유는 감상과 함께 밝히는 게 좋을 듯함.


만화로서 짜임새를 먼저 보면, 솔직히 일상툰과 정보툰의 결합이 엄청나게 매끄럽지는 않음. 이건 일상 부분은 비건(혹은 도전)을 비유적으로 암시하는 내용과 어떻게든 일상(생각)을 비건과 연관 지으려는 시도로 나뉘고, 정보 부분은 정보에 입각해 현실을 보여주는 내용과 조금은 학습 만화에 가깝게 느껴지는 전개로 나뉘는데, 이 각각의 연결이 가끔 상충해서 그런 것 같음. 그러나 진실을 추구하기에 조금 더 슬퍼졌지만 그럼에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태도가 포근한 그림체 안에 넉넉히 스며들어 있기에 복합적으로 ‘얕다’는 결론만큼은 쉽게 나오지 않음.


게다가 이 책은 어디까지나 에세이라는 것, 자신이 보고 느끼고 공부하고 생각한 걸 타인과 공유하기 위해 만든 책이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어떤 식으로든 구성으로 태클을 거는 건 무의미해짐. 실제로 나도 읽으며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어 부끄럽기도 했고, 먹거리라는 간편한 이름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에 가슴 아프기도 했음. 그러니 이 주제는 여기까지 하고 작가가 독자에게 궁극적으로 전해 주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꼽으라면 ‘결심’임. 다른 누군가의 아픔을 더 이상 모르는 척하지 않겠다는 결심, 추상적으로 알고만 있던 무언가를 자세히 알아보려는 결심, 잘 모르기에 두렵더라도 잘 헤쳐 나가리라는 믿음으로 도전하는 결심. 그러나 아멜리가 행하는 그 모든 결심을 독자에게 절대 강요하지 않음.


왜냐하면 비거니즘이란 단순히 고기를 끊고 풀만 먹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동물의 삶을 존중하고 그들의 고통을 줄이는 데에 동참하는 행동, 즉 완벽히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인 행동이기 때문임. 이는 ‘비거니즘’을 ‘채식주의’로 치환해서 표현하지 않는 점과도 맞물림. 단순히 채식이라는 식단을 다루는 게 아니라, 나에게만 국한되었던 생각의 반경을 다른 존재로까지 넓히는, 삶의 방향이자 가치관으로써 비거니즘이란 개념을 다루기 때문.


더불어 역설하는 것은, 채식이 육식보다 환경과 영양에서 무조건 상위 개념이 아니라는 점. 그보다 중요한 건 동물(비인간)을 객체가 아닌 주체로 여기는 개념의 확장임. 애초에 비거니즘에 정답이란 없고 불완전한 실천이라도 의미가 있음을 강조함. 그러한 불완전함을 멈추지 않겠다는 결심을 견지하며 살아가길 스스로 진심으로 바라기에 아멜리는 비건이 되었다고 당당히 말한 거였음. 또한 그렇기에 이 총체적인 개념을 소개하고 제시할 뿐 강요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음. 굳이 표현하자면 격려와 위로에 가까움.


아울러 이런 시선을, 서로를 주체로 여기고 서로의 실수에 집착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는 관점으로 확대한다면 단순한 식습관을 넘어 더 넓은 개념으로의 위로까지 생김.


다만 그러한 모든 완충적 표현이 자칫하면 ‘쿠션’으로 느껴질 수 있는데, 이는 작가 자체도 비거니즘에 대한 고민이 완료된 시점이 아니라 고민하는 걸 포기하지 않겠다는 단계여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음. 독자와 함께 성장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잘 보여서 여차하면 갸우뚱하게 될 요소들이 어째선지 다 이해됨.


솔직히 나만 해도 비거니즘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너무 막막하기만 했으나 식단 이전에 마음가짐이 먼저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음. 결국 중요한 건 동물을 대상으로 인간이 행하는 모든 착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것. 모두가 더 안전한 세상에서 더 존중받으며 살길 바라는 마음을 떠올릴 줄 알게 되는 게 비거니즘의 시작이라는 것. ‘비인간 동물이 사유 안에 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은, 실로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독자들에게도 적용될 포부라고 생각함.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이 세상에 부족한 아멜리가 더욱 많아지기를. 그리고 나도 그렇게 될 수 있기를.






4.0 / 5.0

모두가 조금이라도 더 무사한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비로소 가치관으로 발현될 때

26. 03. 16.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