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다산북스에서 리커버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는 <애가>가 거기 껴 있다는 거에 많이 놀랐음.
개인적으로 10년쯤 전에 박경리 소설에 꽂혀서 거의 모든 작품을 찾아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인상으로 <애가>는 박경리의 장편 중에서도 범작 또는 태작 정도로 취급되는 <성녀와 마녀>와 비슷한 수준의 작품이었다고 기억함.
흔히 박경리의 장편에 대해 <김약국의 딸들>이나 <시장과 전장>, <파시> 정도를 제외하면 대체로 연애소설 위주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고, 또 그건 사실이기도 함. 하지만 연애소설도 연애소설 나름이라 고만고만한 소설 사이에서도 구성과 문체가 잘 짜여진 작품이 있고 그렇지 못한 작품이 있음.
한 열댓 편 되는 박경리의 중, 장편 중에서 개인적으로 최악이었던 건 장편 <은하>하고 중편 <재귀열>이었음. 문체가 정말로 싸구려 연애소설 정도로 느껴지는 대목이 적지 않았던 걸로 기억함. 이 두 편을 제외하면 그 다음으로 별로였던 작품이 바로 <애가>하고 <성녀와 마녀>였었음. 박경리의 연애소설은 이 작품들 이후의 <푸른 운하>나 <노을진 들녘>, <그 형제의 연인들> 정도는 가야 문체랑 구성이 조금씩 안정되고 있다고 느껴졌음.
이런 점에서 <애가>는 첫 장편이라는 작가 자신의 개인사적 의미 외에는 주목할 만한 이유가 별로 없는 작품인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함. 물론 '애가'라는 제목에 대해 평론가 유종호가 박경리 작품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제목이라는 말을 한 적은 있지만 그건 그야말로 제목에 한정해서 하는 얘기에 불과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가>가 하고많은 박경리 소설 가운데 리커버 대상으로 정해졌다면 그건 작가의 첫 장편이라는 까닭 외에는 딱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고 생각됨. 짧기 때문임. 이 작품과 함께 리커버가 된 <표류도>랑 <김약국의 딸들>은 둘 다 박경리 장편 중에서 짧은 축에 속함. 이 두 편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거의 다 이것보다 두 배 정도 되는 길이고 짧은 분량의 장편은 <타인들> 정도밖에 안 남는데 <타인들>은 정말 딱 그냥저냥한 연애소설 정도라 리커버할 명분이 딱히 없음.. 그래서 결국 어부지리로 첫 장편'도르'로 <애가>가 선택된 거라고 보여짐.
아무튼 리커버 때문에 괜히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가 올라갈 것 같아서 걱정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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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대표작으로 평가되기는 하는데 솔직히 그렇게 뛰어난 작품이라고 하긴 어려울 듯.. 정명환의 <한국 작가와 지성>이라는 책에 이 작품이 언급되고 있는데 딱 중기 작품을 위한 빌드업 정도로 봤던 게 기억남
근데 애가 다음 작품이 표류도였던 거 보면 실력이 엄청 빨리 늘어났던 건 사실임. 갑자기 실력이 점프함. 은하나 성녀와 마녀는 겹치기 연재가 원인이었던 걸로 보이고. 말 그대로 먹고사니즘으로 썼으니까. 동시 연재했던 내 마음은 호수는 또 꽤 잘 썼고. 갠적으로는 내 마음은 호수를 ㄹㅇ 흥미진진하게 읽었음. 이 작품 집필하면서 신문 연재 할 때 독자를 손에 쥐고 가지고 노는 스킬을 완전히 터득한 걸로 보임 ㅋ 그리고 초기의 혼란스러운 작품들과 시장과 전장, 파시, 김약국까지 불과 4,5년 격차인 걸 보면, 진짜 하도 많이 쓰다 보니까 저절로 각성하는 수준이었던 거 같음. 그리고 한 3년 있다가 토지가 갑툭튀 했다는 게 ㄷㄷㄷ 이래서 작가라면 되든 안되든 무조건 많이 써 보란 말이 있는 건지도 ㅋ
노을진 들녘에서 (나쁜 의미로)정점을 이루는 우연성 남발이 참 박경리 초기 소설의 작품성을 많이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는데, 우연마저도 작위적인 수준에서 나중에는 매끄럽게 전개시키는 수준으로 발전시키더라 ㅋ 얼마나 고심을 하며 썼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음. 토지에도 우연이 종종 등장하는데 굉장히 매끄럽게 처리되는 거 보면 거의 득도한 수준이라 느껴졌음 ㅋㅋㅋ
@ㅇㅇ(59.14) ㄹㅇ로 토지 이전의 십여 년 동안 장편을 워낙 많이 써서 60년대의 최대 작가는 어쩌면 김승옥이나 최인훈이 아니라 박경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함ㅋㅋㅋ 개인적으로 <노을진 들녘>을 언급했던 건 주실이라는 인물이 왠지 모르게 계속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었음. 성격도 그렇고 특히 풍만한 외모에 대한 묘사 때문에 토지로 넘어가기 전에 작가가 생각하는 '자연'적인 것의 화신 같은 인물이 이런 인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음. 완전 뇌피셜이긴 하지만 박경리 전집에서 다른 장편들을 제치고 무려 2번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작가 나름으로는 애착이 갔던 작품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고..
@ㅇㅇ(118.217) 뇌피셜이 아니라 사실일 거임 ㅋ 옛날 신문 아카이브에서 본 건데, 노을진 들녘 연재 전 작가 소감에서 오랫동안 쓰고 싶어 마음속에 묵혀 온 소재를 쓰는 작품이고 연재 시작 전에 이미 30회 가량 완성해 놨다고 밝혔음. 주실이라는 생명력의 화신을 가지고 무슨 이야기를 쓰고 싶어 했는지 잘 알 수 있었음. 갠적으로는 사촌오빠인 남주가 하도 쳐답답, 무책임, 우유부단의 화신 같은 놈이라(ㅋㅋㅋ) 도대체 이 ㅅㄲ가 어디까지 하나 궁금해서 읽긴 했지만, 결말도 그 정도면 깔끔하고 좋았음. 다만 내가 지적했던 그 결정적인 우연들이 참 별로였다는 거임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