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 <-> 대학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간도 - 디아스포라, 고된 노동, 식민지라는 긴장감과 불안감, 그러나 활력이 있고 노동과 생명력, 정신적 뿌리

도쿄 or 교토  - 제국의 심장부, 늙은 교수가 주는 이미 고착된 제도의 견고함, 권태로움, 지식, 체제,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지적 충격


양 극단의 충돌


그러나 어릴적 동무들과는 삶의 길이 달라졌고 지식인, 문학인이 되어버린 지금,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동무들이 삽, 괭이, 쟁기를 끼고 살때 자신은 대학노트를 끼고 살았다.

그렇다고 식민지배의 하수인이 될 수도 없다.


윤동주는 그렇게 경계에 서 있었다.


고향의 부모가 고된 노동을 하여 보내준 학비를 받아쓰며 제국의 심장부에서 무엇을하고 있나.

배운 이는 배운대로, 배우지 못한 이들 배우지 못한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건만 

시인은 삶을 살지 못한다.


간도에서는 씨를 뿌리고 수확을 거두고 학비를 보낸다.

늙은 교수는 오래전 뿌려둔 지식의 씨앗을 뿌린다.

모든 이들이 씨를 뿌리고 결실을 거둔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지 못한다.


그런데도 시는 쓰여진다.

타국의 작은 방에서 시를 쓴다.



땀내나는 돈봉투의 치열한 삶과 대학노트,  늙은 교수의 세계가 부딪히는데 거기서 생겨나는 부끄러움, 갈등이 시가 된다.

그 시가 부끄러워진다.


간도에서 한반도에서, 만주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그래서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진다는게 부끄럽지만

그 중압감에 짓눌리지 않는다.


완전히 벗어던지지는 못한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몬다.


그리고 자유인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인다.

이제 간도, 동무, 부모, 학비, 대학, 늙은 교수, 육첩방 은 사라진다.


분명 세상은 역사는 둔중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다.

시인은 거기에 참여하지 못함을 스스로 거짓없이 고백한다.


그러자 간도, 부모, 동무, 학비, 흙, 도쿄, 교토, 대학, 늙은 교수 

이런 것들은 잊혀지고

진정한 내가 나타난다.


그 후의 삶은 그 발견으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