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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의 <도련님>을 읽은 독자들은 주인공의 고집 센 성격에 대해 호불호를 느낄지언정 그의 결말부의 행동에 대해서는 통쾌함을 느낄 것이다. 결국 융통성이 부족하고 감정적일지라도 도덕적 우위를 가진 인물이 법의 사각지대의 비도덕적인 인물들을 단죄하는 서사는 옛 민간 신화에서부터 인기 있던 요소니까. 그렇다면 주인공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추락할 때,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는 단순히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한쪽에 다른 길이 있는데도 꿋꿋이 가던 길을 가기보다는 양쪽의 길 둘 다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길을 가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소세키의 표현을 빌리지면 그는 자신의 운명에 비겁한 사람이다.

 결혼을 강요하는 아버지의 말에 수긍하거나 반발하지도 않은 채 애매하게 답하고 무엇 하나 창조적인 일 하나 없이 생활한다. 그런 생활의 조건은 아버지나 형이 보내주는 돈 덕분인데 불구하고 그는 노동하는 친구들을 보며 노동을 위한 노동이 아닌 먹고 살기 위해 노동을 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유미적인 사상을 고수한다. 의식주를 위한 있더라도 훌륭한 음악을 즐길 수 없다면 비참한 인생이라는 태도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가 갑갑하고 때로는 비웃음까지 짓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그가 이런 신념을 갖게 된 것은 인간 사회에 대한 그의 냉소 때문이었다. 기성세대는 신세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들만의 사상을 고집하며 강요하고 자본과 이익만을 높이 평가하는 즉물주의적인 사고관의 대중들은 우리 시대에도 이어지는 인간의 보편적인 갈등이다. 독자는 그런 다이스케를 비판과 공감의 감정을 섞어가며 복합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그의 사상이 세계와 충돌할 수 밖에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이스케는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는 상태다. 그 친구가 아내에 대한 사랑이 식었다한들 불륜은 법을 넘어 도덕의 차원을 건드리는 문제다. 다이스케의 사상이 과연 도덕보다 더 우위를 가질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다이스케가 비판하던 사회는 도덕적이어야 하나 다이스케는 그렇지 않다는 이기적인 결론이 되지 않나? 그런데 사랑받지 못하고 가난 속에 빠진 여자를 구하는 게 비도덕적인 행위인가? 인간의 어떤 행동은 하나의 관점으로만 볼 수 없기에 독자는 자신이 살아왔던 혹은 배웠던 사상을 토대로 그의 행위를 평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을 보자. 다이스케는 지금은 가난하다 해도 다시 일을 해 돈은 벌 수 있을 친구보다 못한 신세다. 그의 자본은 가족들과 연결되어있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결합하는 이상 끊어질 운명이다. 그렇다고 직업을 얻기에는 무능하다. 결국 그에게는 사랑과 책임 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한 인간이 세계와 타협하지 않으려면 먼저 세계와 부딪혀 봐야한다. 자신이 나약하다면 스스로 단련해 도전하고 또 도전해야한다. 다이스케는 어떠한가? 형의 일갈처럼 평소와 달리 중요한 순간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친구에게 자신의 선택을 알리지만 어떻게 살거냐는 말에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한다. 여자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안절부절하며 거리를 떠돌아다닌다.

 세상이 외적, 내적의 갈등과 투쟁의 무대라면 다이스케가 처음 연 세상의 문은 여자에게 다시 느낀 강한 사랑의 감정, 그것도 도덕을 넘어서야 할 금기의 자연적인 결합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 첫 문턱을 넘었으나 고꾸라졌다. 그에게 의식주를 위한 돈과 사람이 지닌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 오직 사랑만 남은 상황에서 다이스케는 그 후 어떻게 될까? 더이상의 사상은 남지 못하고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할 때 그는 변할 수 있을까? 독자가 다이스케가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하고 상상할 때 소설의 문턱은 삶의 길로 향한다. 그 뒤는 우리가 이어갈 삶으로 남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