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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란 무엇인가?
편견이란 문자 그대로 치우쳐진 견해, 한정된 정보로부터 취사선택된 단면임
우리는 작품의 초반부터 선입견이 어떻게 편견으로 변화하는 지를 목격할 수 있음
바로 위컴이 다아시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고, 제인과 엘리자베스가 이에 대해 평하는 두 장면에서임
"정말 어려운 문제야. 너무 안타깝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어."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보기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너무나 분명해." ― p.122
"그렇지만 그분의 확신만 가지고 내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해 줘야겠어. [...] 하지만 빙리 씨가 직접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 데다 아는 부분도 다아시 씨한테 들은 게 전부니까, 나로서는 위컴 씨와 다아시 씨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꿀 수 없어." ― p.136
엘리자베스는 소문이 오로지 위컴의 말에만 근거하는 것임을 명확히 인지하면서도, 빙리의 증언 또한 편향되어있을 공산이 크므로 적절한 반증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함
한 사건에 대한 정반대의 두 단면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물론 제인처럼 사건을 결론짓는 것을 유보시켜두고 지켜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으로서, 결국은 선택을 해야 함
그러한 선택은 우리가 그 선택의 한계를 이해하고 있다면야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역시나 우리는 인간이기에, 그 편견이라는 선택은 어느샌가 자신의 속에서 진리의 위치를 점하게 됨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경우에서도, 네더필드 일행에 대한 좋지 못한 인상에 다아시에 대한 의혹까지 겹쳐지며, 본인 선택의 한계는 희미해지고, 짐작은 어느새 사실로 변모하고, 이에 중반부 다아시의 오만을 극도로 몰아붙이게 되는 것임
"어떻게 해도 둘 다 좋은 사람이 되게 할 수는 없을 거야. 선택을 해야 해. [...]" ― p.306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다아시의 오만 또한 하나의 선택이라는 점임
다아시는 자신 성격의 근원을 이성에서 찾고 있음
하지만 그의 오만이라는 특성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이 다름 아닌 그가 감정적으로 궁지에 몰려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한 장면이라는 점은 굉장히 의미심장함
(물론 다아시의 심리는 굉장히 한정적으로 서술되지만, 엘리자베스와 계속 같은 산책로에서 마주하는 장면을 보자면, 그가 얼마나 냉정을 잃어가고 있었는지가 선명히 보이는 듯함)
이어 엘리자베스가 청혼을 거절하고 그를 힐난함에 마침내 그는 자신에 대한 정반대의 단면을 마주하게 되었고, 이것이 결국 그가 자신의 행동거지를 바꾸어 나간다는 선택을 하는 계기가 됨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재밌는 점, 바로 다음 장(章)에서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의 편지를 통해 그에 대한 편견의 실체를 깨닫고, 마찬가지로 본인의 생각을 바꾸어 나가게 된다는 것
서로가 변화하게 되는 순간이 이렇게 겹쳐진다는 점에서, 제인 오스틴의 빌드업 능력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볼 수 있다
"[...] 제 건방진 점 때문에 제가 마음이 드셨나요?"
"생기 넘치는 성격 때문이었겠지요."
"건방지다고 해도 무방해요. [...]" ― p.507
(재밌게도, 다아시도 건방진 건 마찬가지지만, 엘리자베스와는 정반대의 생기 없는 성격이었다...)
(이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오만과 편견이라는 건 각 인물을 상징하는 것이면서도, 그 두 가지 특성 모두 각 인물에 내제되어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저 한 쪽은 오만이 선명하고 다른 쪽은 편견이 선명할 뿐...)
그렇다면, 그러한 변화의 과정이 어떻게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가?
편견이란 한정된 정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위에서 언급했었다
흥미롭게도, 제인 오스틴은, 무슨 하드보일드 작가도 아니고, 정말 한정된 정보만을 그때그때 필요한 순간에만 제공함
예로, 베넷 가 자매들의 서열은 1부 중간쯤 가야 대충 정리가 되며, 셋째 메리의 나이는 끝까지 직접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주인공 다아시의 나이마저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서술은 언제나 행동 중심이며, 주변 환경에 대한 묘사는 일절 없다
하지만 새로운 정보가 차츰 더해지고 사태가 선명해지며 우리의 편견이 사라지듯이, 작품은 세 부에 걸쳐 계속해서 무대를 옮겨가며 해상도를 높여감
실제로, 엘리자베스가 새로운 장소에 발을 들이며, 이전에는 없던 환경 묘사가 점차 서술되기 시작하는데, 편견을 해체시켜가며 작품도 이전에 보지 않았던 것에 주목하게 되는 모습인 것임
이런 것을 두고, 내용과 양식의 일치라고 부르는 것일까...
한 가지 더, 가족 얘기만 조금 하고 마무리해보자
제인과 엘리자베스는 위에서 논해봤으니 넘어가고
리디아는 큰 사건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중요한 인물인 것도 있지만, 순간적 감정만으로 결혼하는 인물형을 보여주기 때문에 중요한 것도 있음
(이와 정반대의 인물로서 샬럿을 등장시키며, 제인 오스틴은 당대 여성들의 결혼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키티는 리디아의 언니임에도 리디아에게 끌려다니는 역할인지라 큰 비중은 없지만, 되려 그 애매한 위치 덕에 동생의 성향과 언니의 성향 어디로든 튈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할 수 있었음
메리는 마찬가지로 정말 비중이 없지만, 오만과 허영의 구분을 제시해주고, 스스로가 오만과는 다른 허영의 본보기가 되어주며, 다른 인물들의 오만이라는 성향을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줬음
하지만 여기서 내가 정말 주목하고 싶은 인물은 바로 아버지인 베넷 씨임
베넷 씨는 과거 베넷 부인을 좋게 생각하고 결혼했지만, 이후 부인이 분별력 없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어, 결국 굉장히 냉소적인 인물이 되어버림
그런데 사실 이 과정은 나쁘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착해서 결혼했다는 엘리자베스의 서사와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음
이에 우리는 역으로, 엘리자베스 또한 부정적인 확증편향에서 긍정적인 확증편향으로 옮겨간 것은 아닌가, 그저 한 편견에서 다른 편견으로, 한 단면에서 다른 단면으로 옮겨간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음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그러한 옮겨감은 그저 한 사건에서 비롯된 직선적 전환이 아닌, 끝없는 진동 과정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됨
3부 전체가 이러한 진동 과정이 결국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하는 모습을 그려내는 데 할애하고 있기 때문임
사실 우리가 타인을 완벽히, 100%로 이해한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함
그렇기에 우리가 택한 단면이 긍정적인 방향의 단면일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단면이고 편견임
혹여 한 사람의 본질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둘러싼 정보가 아닌 그 사람 자체에 있을 것임
하지만 완벽한 이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선택이라는 것이 필수불가결해짐
이 작품은 결국 한 사람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를 우리는 선택할 수 있고, 그 속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인정해야만 함을 보여줌
엘리자베스는 다아시를 선택했고, 다아시는 엘리자베스를 선택했음
그리고 그들은 사랑을, 믿는 것을, 그리고 사랑을 믿는 것을 선택했음
서술이 행동중심이면 엄청 잘 읽히겠네 조만간 봐봐야지… - dc App
정성글추
안볼려 했는데 볼까 재밌어보이네 - dc App
소설 속 내용과 소설 밖 구조가 일치될 때 무릎을 탁 치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