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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읽기 정말 힘들었던 소설이다.

내가 한국 문학의 실험 작품류는 읽어 본 적이 없는데
어쩌다 보니 처음으로 접하게 된 소설이 베를린 필이다.

설마했는데 사건이 없다
여기서 사용되는 기법이라고는 회상, 시선(묘사), 감상 끝이다
따라서 그 흔한 기승전결도 없고 발단 전개 절정 결말 같은 단계도 없다

그냥 감각으로만 쓰여진 그런 작품이다
초반엔 읽다가 너무 지루해서 잠이 오기까지도 했다
그리고 정신 차리고 다시 집중해서 읽었을 때
소설이 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베를린 필)을 보는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커피를 마시는 나. 이것과 우연히 마주친 초등학교 동창생과의 재회. 이 두 가지 상황일 뿐인데, 그 두 가지 상황 속에서 거대한 세계가 은은하게 존재를 드러낸다.

이걸 단편 소설로 압축시킨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연관성이 없는 상황과 묘사들을 결국 마지막엔 하나의 주제로 응축시키려 한 것에 결국 작위적임을 느꼈다...
차라리 중구난방에 끝까지 이게 뭐야 느낌으로 가면 더 좋았을 거 같았으나, 결국 맞이하는 엔딩은 분단 현실의 아픔을 은유적으로 드러낸 작품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한 부분으로 딱 귀결되는 결론이 여태 소설의 산발적인 부분들의 매력까지 다 앗아가 버린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갑자기 인간의 실존 문제를 다루다가도, 언어의 영역을 고심하다가도, 과거에 대한 기억을 해체하다가
정말 아무 상관성 없는 문장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다양해지는 풍부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분단 문제를 다루면서 끝나다니

내가 잘 못 느낀 걸 수도 있지만
수준이 높은 작품은 확실했고, 이런 류의 작품은 처음 봐서 신선했던 것도 사실이다. 근데 일단 재미가 너무 없었고 한국 문학이 이미 줄기차게 다뤄왔던 분단, 전쟁 키워드를 꺼내오니 소설의 매력이 확 반감되었다.

하지만 그 지겹도록 다룬 주제를, 또 다른 시각과 기법으로 재편한 것은 높이 살만하다. 이렇게 해서도 그 주제를 다룰 수 있구나 하는 느낌.

별점 2.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