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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스포 생각을 미처 못함...미안해ㅠ..
제목 : 노르웨이의 숲 레이코와 잔 이유



이유?
꽁떡이 생겼는데 피할 이유가 있나?
라고 생각하는 건 소설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통용되는 논리이고
물론 우연과 무의식을 따라가는 픽션도 많지만
노르웨이의 숲은 생각보다 하나의 주제의식을 따라가는 잘 짜여진 소설임

허구헌날 원나잇에 자살에, 우발적 요소가 그득한데 뭔솔?
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하자면, 그러한 무질서 자체보다는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하려고 노력한 작가임

그 노력 중 하나가 작중에도 자주 나오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개념임

사실 인간의 삶은 우리네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그야말로 규격 외의 대참사의 향연임
어째서 첫사랑에게는 허락되지 않던 몸이 그의 친구에게는 열리나?
어째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죽고 그의 친구가 남았나?
어째서 미성년자, 그것도 동성 여자애에게서 인생 최대의 쾌락을 느끼나?
이런, 보통의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조리가 삶 곳곳에 만연함

그 부조리를 끝장내는 무기가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자살과 사랑임
견딜 수 없다면 죽던가
견디기 위해서 사랑을 준비함

여기에서 사랑은 섹스와 엄밀히 구별됌
예컨대 와타나베는 나가사와 선배와 무분별한 원나잇을 즐기다가
미도리와 진지한 관계를 나누기 위해 섹스의 의미를 재고함
이는 나오코를 처음 안았을 때의, 즉 섹스 자체에 중점을 뒀을 때와는 대비되는 부분임

노르웨이의 숲에서 섹스는 곧 죽음임
이 소설에서 각 인물들은 섹스 때문에 죽기도 하고 죽음 때문에 섹스를 하기도 함
기즈키, 나오코, 와타나베의 삼각관계가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음
이것은 삶의 부조리를 끝장내는 무기가 아닌 부조리를 지연시키기 위한 또다른 부조리임
나오코와 와타나베는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관계를 맺지만 결과적으로 파국에 이르고, 섹스에서 삶의 가능성을 찾던 나가사와는 진정한 사랑인 하쓰미를 죽음으로 내몲

다소 순진하게 들릴 수 있으나 이 소설은 결국 사랑을 위한 찬가임
앞서 언급했지만 와타나베는 나오코와의 관계에서, 나가사와의 관계에서, 그리고 미도리와의 관계에서 섹스라는 행위를 진지하게 고찰한 뒤
작품 중후반부터는 함부로 성관계를 맺지 않음
성장한 와타나베에게 섹스란 죽음과 동일한 무게의 허무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허무를 함께 지고 나갈 수 있는 동반자의 가치를 찾기 위해 미도리와의 관계를 몇 번이고 밀어냄

미도리는 왜 작중 내도록 와타나베에게 성적 농담을 던지고 성적인 관계를 암시했을까?
그녀 역시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죽음 앞에서 그 죽음의 무게를 잊게 해줄 섹스라는 또다른 허무가 필요했기 때문임
이것은 와타나베가 미도리 아버지의 병실에서 본인이 연극 강의에서 배우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개념을 설명하며 분명해짐

다시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돌아가자면 그 뜻은 결국 천재지변을 물리쳐줄 단 하나의 사기적인 힘임
우리는 죽음이라는 위기 앞에서, 섹스라는 허무 앞에서 모두가 키를 잃고 방황하는 선원들임

나오코가 죽은 뒤 와타나베와 레이코는 모두 삶의 의미를 찾아 기존 삶의 양식에서 벗어남
와타나베는 여행을 떠나고 레이코는 요양원을 떠남
그 둘은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닌 일부이다'라는 와타나베의 깨달음을 변주해서 '삶은 죽음의 일부이다'라는 단계를 공유하는 정신적 동지임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와타나베에게 섹스란 더 이상 내가 너에게 일방적으로 퍼붓는 준비되지 않은 연정도, 하루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수단도 아닌, 오히려 그 모든 가벼움에 맞서기 위한 진지한 행위임
와타나베는 레이코와 재회를 통해서 그들이 같은 아픔, 같은 슬픔,삶에 대한 같은 의지를 공유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에게(그리고 레이코 역시 와타에게) 자신의 육체를 허락함

여기에서 육체란 낮은 의미의 몸뚱아리가 이닌, 이 생에서 만나지 못했다면 안아보지 못하고 감응하지 못한 실존 그 자체임
작품 마지막에서 와타나베가 미도리를 호출하며 불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암시하는 결말은 어쩌면 그러한 실존의 필요를 역설하는 장치일지도 모름

그렇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품의 서문에서 썻듯이 <<노르웨이의 숲>>을 '수많은 축제를 위하여' 바쳤음
여기에서 축제란, 나는 허무를 택하지 않고 다시 한번 삶을 택하여, 삶으로 나아가는 모든 청춘을 위한 찬가로 읽었음
많은 사람들이 노르웨이의 숲을 죽음과 섹스로 점철된 허무주의 소설로 읽지만
누군가는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삶과 사랑에 대한 정신을 읽고 희망을 찾으리란 것을 의심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