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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가린 채 사는 이가 있고, 눈을 떴으나 삶의 잔혹함을 보다 못해 다시 눈을 가리고 사는 이도 있으며 눈을 떴지만 제대로 세상을 이해 못하고 미숙한 자의식만을 지닌 채 사는 이가 있다. 그들의 눈을 뜨게 하고 제대로 볼 수 있게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계몽인가? 그렇다면 계몽이란 무엇인가?

이광수의 소설 <무정>의 서사는 남주인공 형식과 그의 새로운 인연 선형, 옛 인연 영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얼핏 보면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단순히 사랑 뿐만이 아닌 구시대와 신시대로 대표되는 여러 욕망들을 다양하게 다루는 작품이다.

형식은 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지식인이다. 그는 새로운 것을 욕망한다. 서양세계에서 온 지식들(플라톤 전집 등)을 채운다는 작은 것부터 비롯해서 선형과 함께 결혼하고 미국 유학을 간다는 크나큰 운명까지.

그러나 그는 영채가 죽었을 수도 있음에도 목사의 간청에 못 이겨 장로의 집을 방문해 영채를 잊어버린다. 외모에 자신감이 없어 선형에게 자신을 사랑하는지 물어본다. 학생들에 대한 애정도 그런 보살핌을 겪어보지 못한 자신의 과거에 대한 연민이 섞였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과 비교하며 자신을 깨우친 사람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이처럼 그는 선함과 강인함과 지식을 두루 갖추되 우유부단함과 독선과 시대적 한계를 가진 복합적인 인물이다(소설 내에서 악인으로 나오는 배학감은 그의 분신격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형식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선형은 선함과 재능을 동시에 타고났으나 형식의 외모를 맘에 안 들어하기도 하고 영채를 보고 질투하기도 하며 영채는 세상에 대한 환멸을 가졌음에도 형식이라는 이상을 만들어내면서 삶을 이어나간다. 우선은 호탕하고 의협심 있는 인물이나 아내를 두고 기생을 만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인간의 이중성은 시대와 시간을 뛰어넘는 그들의 보편성이다. 이광수의 재능이 가장 빛을 발할 때는(사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딸리지만) 인간의 이중적인 심리 혹은 연민이나 죄책감 같은 어두운 감정들을 다룰 때다. 솔직히 '무정'의 서사는 통속적이다. 현대의 기준에서 봐도 재미는 있되 훌륭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와 연결되는 인간의 심리와 본성에 대한 묘사를 자연스럽게 서사와 연결시켜 독자의 흥미를 이어나가게 하는 필력은 탁월하다. 노파나 월화, 병욱 가족처럼 주요 등장인물들이 아님에도 독자들은 형식이나 영채처럼 그들을 기억한다. 이는 이광수가 그들의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에도 인간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묘사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무정>의 서사를 단순히 보자면 형식의 마음이 어디로 가느냐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처음에 선형에게 호감을 가졌다가 영채와 오랜만에 만난 후 그녀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품다 영채의 나쁜 일에 휘말려 고통스러워한다. 그 뒤 영채가 죽은 줄 알고 선형에게 마음이 간다. 급작스럽게 치뤄진 약혼에 형식은 과연 선형이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지, 자신은 선형을 확실하게 알고 사랑하는건지 스스로 묻다 영채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채는 단순히 히로인 포지션이자 중후반부에 가서야 심리가 제대로 나오는 선형과 달리 제2의 주인공이라 칭할만한 인물이다. 아버지 박진사의 비극, 월화의 비극, 그리고 자신의 비극. 그 뒤 천운처럼 만난 병욱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형식과의 만남.

영채는 형식을 만난 뒤 다시 죽음에 대한 충동을 느낀다. 형식도 마찬가지로 영채와 선형 사이에서 내적인 갈등을 가지며 이도저도 아닌 생각을 계속한다. 선형 또한 온실 속 화초처럼 지내다 처음 느끼는 질투라는 감정을 깨닫고 마음이 불탄다. 병욱은 영채의 심정을 헤아려준다. 이 네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의 내면의 갈등과 어두움과 충동과 감정 등이 최고조로 격양된 기차 안을 그린 이광수는 이제 어떤 서사로 후반부를 매듭지을 것인가?


























씨발


그런 건 없다


갑자기 홍수로 인한 수재민들을 주인공 일행이 도와주게 된 서사가 이어지더니 형식은 갑자기 과학과 계몽으로 딸딸이 치는 교육무새가 되고, 형식에게 약간의 반감을 가졌던 병욱은 갑자기 형식의 의견에 동조하기 시작한다. 서로에 대해 반감 혹은 부끄러움을 가졌던 선형과 영채는 수재민 도우다가 손 몇 번 닿고 말 좀 텄다는 이유로 서로 눈물을 흘리며 포옹하는 사이가 되고, 갑자기 스피드왜건처럼 등장한 우선은 형식이 파이어펀치였고 자긴 병신이었다는 식으로 말한 뒤 자기도 바뀌겠다며 운다.

지금까지의 심리 묘사들을 하수구에 쳐넣는 전개가 나오다가 갑자기 4년 후 인물들이 어떻게 됐는지 설명하는 결말부가 나온다.


??????????


씨발 이광수 이 개새끼는 타츠키의 전생이 분명하다. 연재하다가 현타라도 왔는지 아니면 지가 존경하던 톨스토이 따라서 계몽소설 쓰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품을 던지다가 급작스럽게 마무리한다.

솔직히 결말 별로라는 얘기는 이미 들었고 문장이나 서사 자체도 썩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대보다는 괜찮고 인물들도 맘에 드는데다가 재밌기도 해서 조금의 희망은 가지고 봤던 작품인데...씨발 좆같다

그래도 소설 자체는 꽤 재밌게 읽은 편이었다. 마지막에 개좆박아서 그렇지. 솔직히 한국문학사의 중요한 작품을 읽고 싶다는 이유가 아니면 읽을 필요가 딱히 없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재미와 문체와 주제의식이 더 뛰어난 다른 해외 작품들도 많이 있는데 굳이... 이광수는 더 읽고 싶지 않으니 김동인, 현진건, 이태준 등 다른 일제강점기 시절 작가들을 파기로 마음 먹고 감상을 마무리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