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눈을 가린 채 사는 이가 있고, 눈을 떴으나 삶의 잔혹함을 보다 못해 다시 눈을 가리고 사는 이도 있으며 눈을 떴지만 제대로 세상을 이해 못하고 미숙한 자의식만을 지닌 채 사는 이가 있다. 그들의 눈을 뜨게 하고 제대로 볼 수 있게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계몽인가? 그렇다면 계몽이란 무엇인가?
이광수의 소설 <무정>의 서사는 남주인공 형식과 그의 새로운 인연 선형, 옛 인연 영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얼핏 보면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단순히 사랑 뿐만이 아닌 구시대와 신시대로 대표되는 여러 욕망들을 다양하게 다루는 작품이다.
형식은 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지식인이다. 그는 새로운 것을 욕망한다. 서양세계에서 온 지식들(플라톤 전집 등)을 채운다는 작은 것부터 비롯해서 선형과 함께 결혼하고 미국 유학을 간다는 크나큰 운명까지.
그러나 그는 영채가 죽었을 수도 있음에도 목사의 간청에 못 이겨 장로의 집을 방문해 영채를 잊어버린다. 외모에 자신감이 없어 선형에게 자신을 사랑하는지 물어본다. 학생들에 대한 애정도 그런 보살핌을 겪어보지 못한 자신의 과거에 대한 연민이 섞였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과 비교하며 자신을 깨우친 사람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이처럼 그는 선함과 강인함과 지식을 두루 갖추되 우유부단함과 독선과 시대적 한계를 가진 복합적인 인물이다(소설 내에서 악인으로 나오는 배학감은 그의 분신격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형식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선형은 선함과 재능을 동시에 타고났으나 형식의 외모를 맘에 안 들어하기도 하고 영채를 보고 질투하기도 하며 영채는 세상에 대한 환멸을 가졌음에도 형식이라는 이상을 만들어내면서 삶을 이어나간다. 우선은 호탕하고 의협심 있는 인물이나 아내를 두고 기생을 만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인간의 이중성은 시대와 시간을 뛰어넘는 그들의 보편성이다. 이광수의 재능이 가장 빛을 발할 때는(사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딸리지만) 인간의 이중적인 심리 혹은 연민이나 죄책감 같은 어두운 감정들을 다룰 때다. 솔직히 '무정'의 서사는 통속적이다. 현대의 기준에서 봐도 재미는 있되 훌륭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와 연결되는 인간의 심리와 본성에 대한 묘사를 자연스럽게 서사와 연결시켜 독자의 흥미를 이어나가게 하는 필력은 탁월하다. 노파나 월화, 병욱 가족처럼 주요 등장인물들이 아님에도 독자들은 형식이나 영채처럼 그들을 기억한다. 이는 이광수가 그들의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에도 인간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묘사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무정>의 서사를 단순히 보자면 형식의 마음이 어디로 가느냐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처음에 선형에게 호감을 가졌다가 영채와 오랜만에 만난 후 그녀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품다 영채의 나쁜 일에 휘말려 고통스러워한다. 그 뒤 영채가 죽은 줄 알고 선형에게 마음이 간다. 급작스럽게 치뤄진 약혼에 형식은 과연 선형이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지, 자신은 선형을 확실하게 알고 사랑하는건지 스스로 묻다 영채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채는 단순히 히로인 포지션이자 중후반부에 가서야 심리가 제대로 나오는 선형과 달리 제2의 주인공이라 칭할만한 인물이다. 아버지 박진사의 비극, 월화의 비극, 그리고 자신의 비극. 그 뒤 천운처럼 만난 병욱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형식과의 만남.
영채는 형식을 만난 뒤 다시 죽음에 대한 충동을 느낀다. 형식도 마찬가지로 영채와 선형 사이에서 내적인 갈등을 가지며 이도저도 아닌 생각을 계속한다. 선형 또한 온실 속 화초처럼 지내다 처음 느끼는 질투라는 감정을 깨닫고 마음이 불탄다. 병욱은 영채의 심정을 헤아려준다. 이 네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의 내면의 갈등과 어두움과 충동과 감정 등이 최고조로 격양된 기차 안을 그린 이광수는 이제 어떤 서사로 후반부를 매듭지을 것인가?
씨발
그런 건 없다
갑자기 홍수로 인한 수재민들을 주인공 일행이 도와주게 된 서사가 이어지더니 형식은 갑자기 과학과 계몽으로 딸딸이 치는 교육무새가 되고, 형식에게 약간의 반감을 가졌던 병욱은 갑자기 형식의 의견에 동조하기 시작한다. 서로에 대해 반감 혹은 부끄러움을 가졌던 선형과 영채는 수재민 도우다가 손 몇 번 닿고 말 좀 텄다는 이유로 서로 눈물을 흘리며 포옹하는 사이가 되고, 갑자기 스피드왜건처럼 등장한 우선은 형식이 파이어펀치였고 자긴 병신이었다는 식으로 말한 뒤 자기도 바뀌겠다며 운다.
지금까지의 심리 묘사들을 하수구에 쳐넣는 전개가 나오다가 갑자기 4년 후 인물들이 어떻게 됐는지 설명하는 결말부가 나온다.
??????????
씨발 이광수 이 개새끼는 타츠키의 전생이 분명하다. 연재하다가 현타라도 왔는지 아니면 지가 존경하던 톨스토이 따라서 계몽소설 쓰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품을 던지다가 급작스럽게 마무리한다.
솔직히 결말 별로라는 얘기는 이미 들었고 문장이나 서사 자체도 썩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대보다는 괜찮고 인물들도 맘에 드는데다가 재밌기도 해서 조금의 희망은 가지고 봤던 작품인데...씨발 좆같다
그래도 소설 자체는 꽤 재밌게 읽은 편이었다. 마지막에 개좆박아서 그렇지. 솔직히 한국문학사의 중요한 작품을 읽고 싶다는 이유가 아니면 읽을 필요가 딱히 없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재미와 문체와 주제의식이 더 뛰어난 다른 해외 작품들도 많이 있는데 굳이... 이광수는 더 읽고 싶지 않으니 김동인, 현진건, 이태준 등 다른 일제강점기 시절 작가들을 파기로 마음 먹고 감상을 마무리 짓는다.
근데 오히려 너무 븅신같아서 신선하고 아방가르드한 느낌까지 듦
신선하게 갈거면 선형 병욱 영채 3p 레즈보빔 갔어야지 그랬으면 이광수>>>>>>소세키임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이광수 얘는 재능은 충분히 보이는데 작품을 이따구로 마무리한 게 빡침 결국 시대적+재능 한계인건가
@남기엘왕추크 염성섭이 다비드상 정도인가? 일단 삼대 갖고 있긴 한데 삼대보다 단편이 더 나음?
@남기엘왕추크 표본실 어떤 작품인지 궁금하네 삼대 읽기 전에 읽어보는 게 낫나
유정 안 읽었으면 읽어보셈. 명작이라고 생각함. 일단 설정부터 먹고 들어가는데 그걸 또 꽤 잘 써냈음. 이광수답지 않은 작품이라고 할까? 작가 본인 최애 작품인데 왜 그런지 알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tv 문학관 시절까지 수차례 영상화 된 데에는 이유가 있음
소신발언)훌륭한 작가들 번역 많이 되고 최인훈, 김승옥, 이문구 같은 국문학 작가들 볼 수 있는데 굳이 이광수 다시 읽고 싶지가 않음...
@책은도끼다 뭐 그렇게 진지하게 말할 건 없고 ㅋ 내가 유일하게 읽은 이광수 작품인데 괜찮아서 추천해 본 거지
갑분음악회 ㄹㅇ ㄹㅈㄷ - dc App
이 댓글은 게시물 작성자가 삭제하였습니다.
이인직도 갑자기 등장인물 유학보내버리고 그러던거 보면 이광수도 그 시기의 소설을 읽고자랐을테니 영향을 받았는지도
참고로 최인훈을 매료하고 이문구를 감동시킨 <흙>도 비슷하게 기승전계몽으로 끝남 - dc App
기승전계몽 ㅋㅋㅋ
광수햄은 역사소설에서 필력 터짐. 단종애사 마의태자 보면 무정 기억도안남 - dc App
그냥 이광수를 기억 안 하는 걸로...
주딱 고로시 가는거임?
ㄱㄷ
이 댓글은 게시물 작성자가 삭제하였습니다.
무정이 현대한국문학사의 독보적 첫머리에 있는데 평가가 너무 박하다 이때 한국문단에 나와있던 신소설 하나만 읽어도 생각 바뀔듯
무릇 고전이라면 현대에 읽었을 때도 사유와 감정이 와닿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솔직히 결말만 잘 만들었으면 이 정도로 까지 않았을 듯. 그리고 문학사적인 중요도는 인정하지만 그것때문에 호평하고 싶지는 않았음. 다른 신소설들은 전혀 관심이 없고
@책은도끼다 난오히려 결말도 이 당시의 근대성이라는게 이광수같은 지식인+계몽주의자도 표현할 수 없는 거였구나 싶어서 재밌었음. 이사람들이 어딘가에 도달한다거나 3p를 한다거나 이런건 당시 통념으로는 불가능임.. 그 시대에 무엇이 가능했는지를 확인하는 데에서 공감도 오는거임. 바로 와닿는 경험을 좇는다면 굳이 고전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책은도끼다 그리고 이후에나온 김동인 약한자의슬픔이나 염상섭 표본실 모두 현대적 시선으로 본다면 좋은점이 없을거임.. 삼대도 일제강점기의 리얼이라는 점에서만 읽을 수 있지 역사/문학사를 빼놓고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없음 그나마 좀더 현대장르에 맞닿아있는 김동인 단편들은 문학사적 맥락 없이도 재미있게 읽을수는 있는데 그러면 히가시노게이고 읽는거랑 차이가 있을까 싶음..
@ㅇㅇ 글쎄다 난 돈키호테나 적과 흑 같은 무정보다 옛날 소설들에서도 현대인에게도 느끼고 보편성이 와닿던데. 물론 소설은 시대적 한계가 있긴 하겠지만 이런 식으로 결말부를 망치는 건 한계라고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실망스러웠음
@ㅇㅇ 또한 현대적 시선으로 아쉬운 것들이 있더라도 문학적인 요소가 뛰어나면 그걸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함. 근데 무정은 그 요소들이 뛰어났나 생각하면 인물들 말고는 잘 모르겠음. 그리고 시대상으로도 계몽은 서양에서는 몇백년전에 끝난 사조 아닌가?
@ㅇㅇ 물론 이게 서양의 관점이기 때문에 서양이나 일본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사회상과 비교하면 이광수의 계몽 엔딩이 옹호받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굳이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 소설들을 읽어야 하나 생각이 듦
@책은도끼다 일단 서양사에서의 계몽과 한반도에서의 계몽은 관련은 있지만 서로 다른거임. 전자가 서양 내에서의 이성주의 즉 내부로부터의 계몽이라면 후자는 서양 중심의 근대를 받아들이는 외부로부터의 계몽임 조선이 처했던 상황을 생각할때 몇백년전에 끝난 사조를 다시 이야기했다 이런건 전혀 틀린말이고
@책은도끼다 그리고 예시로 든 두 작품이 (특히 돈키호테) 물론 서양사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길이남을 걸작이어서 무정과 대결하면 당연히 무정이 궁색해지는 면은 있음. 그럼에도 그냥 와닿으니까 좋은거다 라는 말은 적절치 않은데
@책은도끼다 돈키호테에 나오는 기사도 소설들이나 적과 흑에 나오는 혁명이 그들에게 경험할 수 있는 생생한 현실이었던 것과 달리 무정에서 형식이 부르짖는 과학은 도달하고 싶은 미래이지 현실이 아니었음. 경험한 적 없는 걸 말해야 하니까 당연히 결말이 잘 나올수가 없지. 그럼에도 근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은 시대적 사명과도 같은 것이었음
@책은도끼다 한편 글쓴이는 무정을 돈키호테나 적과 흑과 같은 고전과 괴리된 것이라 말했지만 무정은 두 작품과 겹치는 점이 꽤 있음. 민족적 계몽과 기사도를 겹쳐 보고 안창호와 아마디스를 겹쳐 읽는 게 가능할듯? 또 영채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한국 고전소설의 서사가 붕괴되는 충격이나 선형과 형식이 보여주는 미숙한 당대인들의 혼란은 또 어떤데.
@책은도끼다 알고 보면 모든 장이 다 흥미로운 게 무정임 물론 이광수는 그 시대의 지식인이었을 뿐이지 세르반테스 같은 GOAT에 비빌정도는 당연히 아니지. 근데 님 돈키호테 원문으로읽음? 적과 흑은? 최소 같은 문화권에 속하는 언어로 번역된 본을 읽어봄? 서양소설은 우리 동시대 번역가들의 수려한 문체로 재창조된 텍스트고 무정은 우리 언어로 쓰인 날것의 텍스트임.
@책은도끼다 애초에 우리, 우리가 아니라면 우리 언어가 뿌리내린 역사성에 근거해서 텍스트를 읽지 못하는데 어떻게 몇 세기 전 세계문학의 가치를 이해한다는 말임? 그게 정말로 이해한 게 맞긴 할까?
@ㅇㅇ 번역된 작품이 번역가들의 재창조된 텍스트라는 의견은 동의 못함. 번역본이 물론 원문보다는 다소 각색된 작품이더라도 서사와 구조 등 역본으로도 느낄 수 있는 충분한 가치가 있음. 어떻게 보면 님의 의견은 다소 국수주의적인 의견 아님? 우리말이어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함
@ㅇㅇ ㅇㅇ 계몽에 대한 내 설명은 틀린 거 맞음. 그리고 무정은 우리나라 문학사에서는 중요하지만 세계문학사에서는 돈키호테와 적과 흑에 딸리는 게 맞음. 근데 도달하고 싶은 미래를 그렇게 엉성하게 끝내면 나에게는 와닿지 않는 게 정상임
@ㅇㅇ 경험한 적 없는 걸 말해야 하니까 당연히 결말이 잘 나올 수 없다>> 판타지 문학이나 sf 문학 등은 뭐임? 그리고 순문학으로 한정한다 해도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어 미래를 예견하는 듯한 작품들도 많음. 무정은 내 기준에서 그냥 못 만든 작품임
@ㅇㅇ 우리 언어로 쓰인 날것의 텍스트와 역사성이 조잡한 서사와 구조를 가졌다면 혹평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세계문학의 가치를 원문이나 역사성 등 때문에 한정한다는 의견은 나에게 전혀 와닿지 않음
@ㅇㅇ 우리말로 쓰인 위대한 작품들 중엔 백석이나 정지용의 시들, 무진기행, 관촌수필 등 많음. 그런 소설들은 나에게 깊은 감흥을 줄 수 있지만 무정은 아님. 무정의 중요성을 따지기 위해 그 시대 신소설을 읽어봐라, 우리 언어의 역사성에 근거해라 이런 말은 나에게 무가치하다고 생각
@ㅇㅇ 아니 근데 원문 안 읽어봤냐고 따지는 건 이해가 안 가네. 그럼 못 쓴 원문이 잘 쓴 번역본보다 더 낫다는 말임? 타국어 배울 수 없는 사람이라면 외국 작품들의 감흥을 덜 느낄 수는 있어도 못 느낄 수는 없음. 옛날도 아니고 지금은 인터넷으로 세계화된 세상인데 무슨
@ㅇㅇ 그렇게 우리 언어로 쓰인 날것의 텍스트를 옹호하는 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뜬구름 같은 소리라 느껴짐. 내가 무정에서 놓친 부분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당대의 사회상을 더 연구하면 보이는 게 많겠지. 근데 그냥 실망스러움. 님 입장에서 나는 우리 언어보다 번역본이어도 더 서사와 구조의 완결성이 탄탄한 쪽을 더 중시하는 사람임.
@책은도끼다 번역본의 가치를 폄하하는 게 아님. 애초 한국어 텍스트의 역사성을 이해 못하는데 동시대 번역을 경유해서 해외 텍스트를 이해하는 게 가능하냐는 말이었음. 한국어로 쓰였다고 가치있다는 게 아니라, 그 시대 한국어 글쓰기의 장, 또는 역사적 맥락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둘 때 놀랍고 흥미로운 텍스트라는 의미임.
@책은도끼다 좀 더 쉽게 말해볼까?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나 오늘날의 시점에서 어설픈 부분이 분명 있음. 그럼에도 역사성을 고려하면서 셰익스피어를 읽는 일은 호메로스나 그리스 비극으로부터 출발하는 다른 문화권의 역사적 텍스트와 접속하는 일임. 그런데 그게 없으면 그냥 동시대 한국어 텍스트를 읽는거랑 다를게 없음.
@책은도끼다 그리고 백석이나 정지용의 시들은 읽는 그대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장르니까 역사성 이해 없이도 아름답다고 쳐. 관촌수필이랑 무진기행은 둘 다 무정으로부터 50년정도 또는 그 이상 뒤에 나온 작품임. 처음이라는 무게를 생각하면 무진기행과 무정의 거리가 우리랑 무진기행의 거리보다 훨씬 멀지. 이건 손자를 보면서 할아버지 옷입은거 촌스럽다고 욕하는 급임.
@ㅇㅇ 한국어 텍스트의 역사성 때문에 내가 별로로 읽은 작품을 호평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음 그놈의 역사성 얘기 좀 그만 해 무정보다 몇백년은 더 일찍 쓰인 홍길동전이 더 훌륭하고 입체적이었으니까.
@ㅇㅇ 김유정의 동백꽃이랑 이상의 날개는 정말 잘 읽었는데? 그리고 셰익스피어나 다른 후대 작품들을 역사성을 고려해 읽으라고 말할거면 연구자들에게나 그렇게 말하셈 님 의견은 나에게 하나도 와닿지가 않음
@책은도끼다 그리고 님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법한 형식이나 선형의 내면의 혼란 묘사?? 애초 내면성이라는 게 지금처럼 당연하지 않았음. 이 시대 한국어 소설쓰기는 일본어 소설을 생각하고 그뒤에 한국어로 창작해야 하는, 말하자면 한국어 현대소설의 문체를 처음부터 만들어내야 하는 일이었음. 춘향전같은 옛 작품에 무정같은 내면 묘사가 나오나 확인해보셈
@책은도끼다 독서 애호가를 자임하는 사람인것치고 너무 실망스럽다.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도 그럼. 홍길동전이 무정보다 입체적임?? 홍길동이 혁명 다 해놓고서도 왕의 권위를 인정하고 자기 나라를 만드는 과정이 무정의 혼란보다 입체적임??
@ㅇㅇ 지금처럼 당연하지 않았음<<<그 당시 시대상에서 중요한 일이고 이후 한문학에서도 깊게 다룰만한 일이지만 나는 그런 걸로 호평하고 싶지 않음 난 그냥 서양 중국 일본 번역본이라도 서사 구조 완결성이 뛰어난 작품 읽을게 ㅇㅇ
@책은도끼다 SF소설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서술하는 게 아니라 경험한 것들로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상상하는 일임. 무정의 과학은 분명 세계에 존재하는데 내가 아직 모르는 것이고. 그냥 완전히 다른거임
@ㅇㅇ ㅇㅇ 홍길동의 가족이 홍길동을 마냥 배척하지 않고 가족으로 여기는 거나 자연 묘사 등의 작품이 정말 뛰어나고 입체적이라 생각함. 그리고 자기 나라 만들겠다고 전쟁 일으킨 건 나도 비판하면서 읽고 감상 남겼음
@책은도끼다 ㅇㅇ 계속 그렇게 시늉하면서 읽으면 좋을듯
@ㅇㅇ 왕의 권위<<<시대적 한계임에도 다른 게 더 뛰어나서 괜찮게 넘어갈 수 있음, 여러 고전의 가부장적이나 종교적인 요소도 그럼. 무정 또한 여러모로 현대적인 장점이 많았지만 나한테는 단점이 눈에 확 느껴짐
@ㅇㅇ 남의 감상 보고 시늉이라고 말하는 게 참 ㅋㅋㅋ
@책은도끼다 홍길동전 옹호가 무정을 욕하는 자신을 스스로 부정하게 되는 일인 건 앎?? ㅋㅋ
@책은도끼다 시늉 <- 번역본이라도 서사 구조 완결성이 뛰어난 작품 읽을게 라는 말에 대해 한 것이고 그럼 완결성 망한 카프카 장편들이나 구조 망한 모비딕같은 위대한 작품들은 안 읽을건가봄
@ㅇㅇ 게이고나 번역본 운운하면서 무정 옹호하는 게 더 웃긴 건 알아?
@ㅇㅇ 모비딕이 구조 망했다는 거에서 님 의견에 답글 계속 달았다는 게 시간낭비라 여겨지네
@책은도끼다 홍길동시대의 시대적 한계가 봉건제도라면 그만큼이나 무정도 시대적 한계였던 전근대성에 저항하려했던 작품이고 적어도 초능력쓰는 홍길동전보다 내면 묘사 위주의 무정이 혁신적으로 그걸 해낸다고 봄.
@ㅇㅇ 일단 내가 좀 흥분해서 님한테 좀 적대적으로 댓글 단 것 같아서 사과할게요
@ㅇㅇ 게이고나 읽어라 이뜻이지 게이고 싫어함. 모비딕은 님이 무정 폄하하는 것과 같은 기준으로 볼 때 서사구조상의 탄탄함보다는 포스트모던한 갈등의 문체를 가졌다는 뜻임. 물론 난 모비딕 카프카 둘다 엄청 뛰어난 작품이라 생각하고 두고두고 펼쳐봄
@ㅇㅇ 님 말대로 무정이 내면 묘사, 당대 사회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 등을 포착하고 묘사했다는 것엔 동의함. 다만 내가 혹평하고 싶은 건 결말부임. 난 후반부까지는 인물들의 이성과 감정을 묘사하는 이광수의 필력에 감탄했었음. 스토리가 다소 통속적이라도 그 때까지는 나에게 와닿은 작품이었다는 말임
@책은도끼다 저도 좀 독갤 자체에 기대가 있는지 분노해서 교조적으로 단거같긴하네요 죄송합니다 요는 그냥 읽는게 아니라 늘 맥락을 존중하면서 읽어야된다는 뜻이었음요
@ㅇㅇ 난 결국 무정이 계몽소설보다는 연애소설로 가다가 계몽이라는 주제와 적절히 섞였다면 좋았을 거라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음. 무정의 결말부의 실망감을 다른 소설들과 비교해봤을 때 이광수의 재능이 그 소설들보다 더 돋보여서 하는 말임
@책은도끼다 결말이 구려서 ㅂㅅ작품이다 라기보다 결말을 왜 그렇게 낼 수밖에 없었느냐, 결말이 보여주는 현실이 무엇이냐가 더 중요하다는말
@ㅇㅇ 결국 나는 결말이 보여주는 현실보다도 작품 자체의 완결성을 위해 결말부의 완성도를 더 다듬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고 그 역사성으로 따지자면, 솔직히 나에게는 작품 자체의 평론보다 더 나중에 판단해야할 문제라고 느꼈음
@책은도끼다 갠적으로 이광수 동생뻘인 김동인이나 염상섭을 좋아하는데 그들의 훌륭한 성과가 전부 무정에 빚진다 생각하고 무정이 단순히 시작 이상을 보여주는 지점도 있어서 그만큼 중요하고 재밌는 작품이 무정이라는 거? 무정에 대한 실망은 가능해도 알고보면 비난하긴 힘들다는 거? 그정도를 말하고 싶었음
@ㅇㅇ 카프카를 따지자면 카프카는 그 미완성 조차 환상적이고 기괴한 세계관에 어울려서 좋다고 봄. 생각해보면 내가 굳이 완결성을 따지는 사람은 아닌데 좀 화나고 예민하게 반응해서 되도 아않는 말을 지껄인 듯 ㅈㅅㅈㅅ
@ㅇㅇ 이해했음. 실망하긴 했지만 비난하기에는 문학사적인 영향도가 뛰어나다는 작품인 거. 근데 내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반응한 거는 초중반부를 봤을 때 이광수가 작품의 결말을 제대로 낼 재능과 필력이 있음에도 이렇게 되었음+소세키나 루쉰과 비교했을 때 자국문학의 영향도는 똑같겠지만 작품성에 좀 실망한 거 이게 큰 듯
@책은도끼다 이지점에서 달라지는 것 같은데 나는 특정한 역사성과 떨어진 작품 자체를 상정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함. 역사성을 떼어놓고 작품을 본 게 아니라 2020년대 독자의 지극한 관습 속에서 읽은거임
@ㅇㅇ 그래서 일단 김동인 현진건 염상섭 이런 작가들도 읽을 예정인에(이미 대표작 읽은 김유정 이상 포함)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무정을 다시 생각하게 될 날이 올 수도 있을 듯 결국 국문학의 대가인 소설가들 중 이광수가 가장 큰 영향을 발휘했으니
@책은도끼다 솔직 이광수가 소세키나 루쉰보다 딸림 염상섭은 좀 비빌수는 있을거같기도 하지만 맨날 염상섭 이야기하기엔 좀 궁색해지고. 한국 상황이 너무 어렵고 궁핍하고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의 인물도 개 적었음
@ㅇㅇ 길게는 호머의 서사시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에서 시작해서 필립 로스가 쓴 당대의 미국까지, 문학의 역사를 물론 고려해야겠지만 나는 사회성 역사성 상징성 이런 걸 배제해도 남을 수 있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표현할 수 있다는 희망를 문학에 가지고 있음. 다만 이건 역사 자체를 이미 다 알고 있는 나라는 현대인의 오만이라 볼 수도 있지만...
@ㅇㅇ 근데 솔직히 이광수의 대표작 무정이 그의 데뷔작이라 충분한 문학적 경험이 없었을 수도 있고, 소세키나 루쉰은 30대에 들어 성숙할 때에 작품을 시작했으니 내가 이광수에게 다소 엄격한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겠음
이 댓글은 게시물 작성자가 삭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