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죽누, 소리와 분노 스포 있음*
아무래도 애디의 독백이 아닐지? 물론 달의 날카로움이나 바더만의 순수성 역시 좋지만, 단 하나의 독백으로 이 정도의 피괴력을 보여줄 수 있는건 역시 애디 밖에 없다고 생각함. 사실 포크너가 글을 쓰며 말하고 싶은 모든게 이 장면에 녹아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언어의 무의미성, 피(가족)의 영원한 구속, 인간의 실존과 신적 의탁과의 간극, 죄의 필연적 탄생 등등…
결국 포크너의 다른 작품들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는 주제들이 이 몇페이지 안되는 독백에 있다는 사실이 감탄스러울 뿐…
내죽누의 다른 모든 텍스트와 서사는 하나의 상징, 즉 애디를 향하고 수렴되는데 이 애디의 독백을 통해 이 모든게 파괴될 수도 있다는 것도, 소리와 분노에 버금가는 소설의 정교함이 놀라울 따름임. 애디는 죽은 인물인데 애디가 이야기에 개입됨으로서 이 서사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더는 분간이 안되는 소설적 장치임.
“하지만 내게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시작과 끝이라는 의미에서는 끝났지만, 그때는 모든 일에 시작도 끝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문장처럼 소설은 쥬얼과 함께 언덕을 올라가는 달의 서술로 시작하지만 엔딩은 새엄마를 만나는 것으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 근데 이걸 성경적 레퍼런스로 생각해보자면 애디를 묻으러 가는 여정은 관을 십자가로 놓고, 예수와 골고다 언덕의 여정이고, 새엄마라는 캐릭터는 애디라는 존재의 (그러나 모조품에 불과한) 부활 아닐까? 하지만 이 행진은 거룩함과 신성함은 커녕 시체의 악취와 가족 간의 몰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괴한 블랙코미디이기도 함.
그리고 포크너의 시간성 또한 흥미로움. 보통 시간은 일싱과 과학에서 수평적인 것으로 간주되지만, 실존과 실험의 포크너적 세계에서는 시간이 수직적임. 포크너는 시간이 우리 인간을 구속하는 것이라고 사유했고 그래서 소리와 분노나 다른 작품들에서 그 시간을 계속해서 뒤틀고 빠져나올려고 한거지. 그 인물 중 하나가 바로 퀜틴임. 삶과 죽음의 시간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그리고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자11살이고 퀜틴은 이를 실행한 존재라는 것….
포크너 작품은 머리가 아파
저히 같이 압살롬X2 읽어요~
개소린게 자살을 삶과 죽음에서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면 안되지 파멸인데 니 일문학 좋아하냐?
시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자살이 맞음
압살롬은 읽었는데 내죽누는 안읽어봄 - dc App
초독 때는 별로 안좋아했는데 (소분 하위호환이라고 생각함) 재독하니까 너무 좋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