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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건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최근에 읽었던 문학 중에선 가장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발칙하고 적나라하다. 천박하다는 말은 이 소설에 담긴 섹슈얼리티와 폭력의 절반도 표현하지 못한다. 표면상으로는 SF다. 그러나 장르의 문법은 파괴되고 장면은 개연성이 없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종속절 문장에 파편화된 줄거리는 파악하기 힘들고 아동살해, 강간, 윤간, 시간, 근친상간, 신체훼손 등 대부분의 독자들의 반감을 유발할 요소가 수도 없이 등장한다. 한마디로, 읽기 어렵다! 그래서 소설이 끝나고 나오는 옮긴이의 말이 정말 반가웠다. 해설까진 몰라도 어느정도 이해는 시켜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물건을 만들어 낸 작가에 대해 잠시 알아봐야 한다.
캐시 애커의 인생은 초기부터 심상치 않았다. 뉴욕의 유대계 독일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태어나기 전 집을 나갔고 얼마 안 되어 재혼한 어머니와는 평생 사이가 좋지 않았다. 동네 아파트 호텔에 살던 할머니에게도 의지하지 못했다. 그녀는 스물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찾으러 나서지만, 아버지가 자기 요트에 무단침입한 사람을 살해하고 6개월을 정신병동에서 보낸 뒤 면책을 받고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추적을 그만둔다.
이 자전적 요소는 1장 <아버지에 의한 강간>의 주인공 업호르의 유년기에 그대로 반영된다.
캐시 애커는 뉴욕 언더그라운드 음악, 문화, 포르노 업계와 많은 교류를 하며 살아갔다. 록 음악가 패티 스미스의 공연을, 장 주네의 연극을 보며 자랐고 70년대 초에는 애인과 함께 섹스 쇼(가짜 섹스 공연)을 하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이 경험은 본 작품 외 애커의 다른 작품에도 반영되고 있다. 캐시 애커의 인생과 작품은 이렇게 70년대 80년대 펑크 문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 기존 형식을 거부하고 주류 사회에서 배제된 요소를 미학적 기조로 삼는 펑크 문화는 그녀의 소설에서 친제도권적인 요소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난다.
이성은 항상 경제와 주인을 위해 작동해. 여기서, 질서의 개념과 행위가 수행되는 이 토대에서 습격을 감행하는 것은 문학이지. 문학은 억압 기계를 기의의 차원에서 고발하고 베어내는 것. 바타유, 클라이스트, 호프만 등이 헤겔주의적 관념론과 종결적인 인식의 변증법을 시험하기 훨씬 이전부터, 독일 낭만주의자들은 뻔뻔하게 노골적으로 소비와 낭비를 찬양했어. 그들은 피투성이 면도날로 보수적인 나르시시즘을 관통하지. 주체를 자신의 종속, 자아의 종속으로부터 뜯어내고 꼭두각시인 너를 탈구시키고 의미의 실을 잘라내고 모든 통제의 거울에 침을 뱉어.(27)
친제도권적인 요소-백인 중산층 교양인 독자층이 가치 있는 문학이라 여길 요소를 모조리 전복한다. 가독성 있고 명료한 언어를 거부하고 욕설, 동어반복, 아무말 대잔치(번역가 본인의 표현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문장을 사용한다. 또한 기존 텍스트를 표절하고 해체하고 짜집기하기도 하는데, 애커는 이를 "문학적 해적질literacy piracy"이라 표현한다. 이 해적질에 가장 많이 노략당한 문학 작품은 SF 작가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이고, 그 외 마크 트웨인, 앨런 긴즈버그, 조르주 바타유, 윌리엄 셰익스피어 등 다양한 텍스트를 베끼고 자기만의 맥락으로 붙여넣는다.
옮긴이 장한길은 "형식 실험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부조리함에 대한 반발심과 결부되어 있고,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데서 비롯한다는 설명은 캐시 애커의 경우 특히 더 유효하다. " 라고 말한다. 애커 본인은 윌리엄 버로스, 앨런 긴즈버그와 같은 비트 세대 작가들이나, 로버트 크릴리와 같이 블랙 마운틴 시인의 반항적 문학에 영향받았지만 그들의 문학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남성적'이었기 때문에 다른 형식의 글쓰기를 모색해야 했다고 말한다.
그러니 이 소설이 읽기 힘든 것은 당연하다. 캐시 애커가 생각한 글쓰기, 더 나아가 언어에서 남성주의적 권위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는 서사의 개연성, 인물 구성의 통일성, 언어의 기본적 의미 작용까지 적용될 수 있는 '중앙화된 의미 체계'였으니, 그걸 해체하기 위해 소설을 개발새발 개판으로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의미를 표현하는 해체주의적 언어 전략에 정치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분명하지 않다면 그것은 사회의 부조리함을 비판하는 데 있어 유효하지 않다고 캐시 애커는 말하고 있다.
모든 종류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우리 존재의 일부(정신성, 감정, 신체성)를 '무의식'이라고 해보자. 무의식은 통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이는 제도화된 의미, 제도화된 언어, 통제, 고정, 편견, 감옥에 대항해 우리가 가진 유일한 방어 수단이 될 수 있다.
(...)
무의식의 주요 언어는 터부, 즉 금지된 모든 것일 테다. 그러므로 감옥 제도를 언어를 통해 공격하는 것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금지된 언어 또는 복수의 그러한 언어의 사용을 통해야 한다. 언어는 어떤 차원에선, 사회적 그리고 역사적인 약속, 즉 코드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무의미함은 그 자체로는 이러한 코드 체계를 허물지 않는다. 코드 체계에서 금지된 언어를 말하는 것이 바로 이 코드를 허문다.(233~234)
책 중간중간에 심심치 않게 튀어나오는 식민주의, 억압, 국가에 의한 폭력, 자본주의, 가부장제에 대한 언급이 아마 그 예시인 것 같다.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건 새로운 영토나 신선한 피다.(62)
국가에 의한 폭력과 억압, 식민주의, 차별. 등등... CIA 때문에 강제로 감옥에서 살게 된 사람들은 악하다. 그들은 광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꿈속에서 살아간다. 우리의 광기가 분노로 바뀌기를.(291)
그러니 출간 당시 femi니스트들에게도 '여성혐오적'이라며 비판받은 불쾌한 요소—여성 폭력, 아동살해, 강간, 윤간, 시간, 근친상간, 신체훼손—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금지된 언어'로 말하는 것임과 동시에 사회 속 권력이 작동하는 구체적인 방식과 개개인이 그러한 권력과 맺는—완전히 지배되지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는—관계의 복잡성을 가장 현실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상품이 판치는 그 도시에서 점점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던 나는 울었다. 완벽의 도시를 끝장내버리고 싶었다. 나의 눈물은 매춘부의 눈물tear이었다. 마리아 박달레나를 시켜 처녀 마리아의 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게tear 하고 싶었다. 그녀의 눈에선 나의 보지즙과 오줌이 붉게 흐를 것이다. 순하기만 한 나. 나를 증오한 엄마에게 상처 주지도 못한 나. 어린애인 나. 나의 눈물과 오줌이 바로 나의 섹슈얼리티이다.(115)
의의는 이제 알겠다. 이 소설의 전위적인 형식과 적나라한 표현은 저항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 도시는 죽은 정자가 든 정액처럼 진한 안개로 뒤덮였다.(222) 같은 표현이 계속 등장하는 것은 유럽어권 시스젠더 남성이 주도하는 전위문학을 전복하기 위한 존나 심오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씨발!!
하드코어 포르노 영상과 Leftist가 만든 비디오 에세이와 비키니 킬Bikini Kill의 노래를 동시에 틀어놓는 듯한 문학... 존재 자체가 펑크다!!
번역된 문학 포함 한국 문학에 참고할 만한 사례가 없어 '창작에 가까운 방식으로 옮긴' 장한길 씨의 노고를 인정해 줘야 할 듯 하다!! 그러나 문학은 몰라도 에로 동인지나 디시의 글을 참고했으면 더 천박하고 적나라한 번역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야이 씨발새끼들아 이게 femi니즘 SF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나는 해적이고 너희는 개병신이다
전위문학 한다고 깝치는 남자새끼들에게—
차렷,열중쉬엇,차렷 이 좆만한 놈들이...
차렷,열중쉬엇,차렷,열중쉬엇,정신차렷, 차렷, ◯◯, 차렷, 헤쳐모엿
이 좇만한 놈들이...
헤쳐모엿.
( 야 이 좇만한놈들아, 느네들 정말 그따위로밖에
정신 못차리겠어,엉?)
차렷,열중쉬엇,차렷,열중쉬엇,차렷....*
*박남철, 「독자놈들 길들이기」,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97.
누가 캐시 애커를 두려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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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리뷰 보니 읽어봐야겠다… ㄱㅅㄱㅅ
버로스류의(캐시 애커 본인은 싫어할 표현이지만) 개지랄문학이 좋으면 읽는 것을 추천
무서워요
이거 읽고 싶은데 청불이라…
시발 어디서 읽은 구절인데? 하고 보니까 박남철이네
이 글 보고나서 동시대 겉절이 한국문학 생각하니까 암담해졌어요
미국은 히피의 시대였던 1960~1970 년대 이런 류의 코드가 모든 문화예술 쪽에 대거 입혀졌고, 문학도 SF도 예외가 아니었음. 로버트 하인라인의 [스트레인저(낮선 대지의 이방인)]도 절반은 비슷한 내용이어서 읽다가 깜짝 놀라기도 했고. 마이크 레스닉은 [키리냐가]같은 책이 소개되어서 그렇지, 본래 수백권의 야소설을 전문적으로 써냈던 작가였음
흥미롭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