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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는 평론가 김현의 작고 전 4년간의 일기를 편집해 세상에 내놓은 책인데, 김현이 누군지 몰라도 알 수 있는 것 하나; 이것은 일기라는 것; 자기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의 일기라는 것이다.
일기장 훔쳐보기의 재미는 내가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남'의 세계를 찍어먹을 수 있다는 데서 온다. 이 사람은 무엇을 했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 그것을 일부라도 알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 일기장 훔쳐보기다. 일기장은 생각이 들어있어 흥미롭다.
또한 일기장은 일기를 쓴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얻어갈 수 있는 것이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내가 만약 엘비스 프레슬리의 일기장을 손에 넣었다 해보자. 나는 일기장을 넘기기 전 여기 무엇이 쓰여 있을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자기 음악에 대한 생각이 있지 않을까 하고 예상해 본다. 60년대에 일어난 사건이나 그 시대에 유행한 영화, 음악과 같은 문화에 대한 생각도 있지 않을까? 엘비스가 비틀즈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 일기장은 엘비스 프레슬리나 60년대 음악 씬scene에 관심이 없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아무래도 좋은 글뭉치가 되는 것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 김현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이 사람이 쓴 일기가 대체 왜 가치가 있는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 유고를 편집한 소설가 이인성은 이 유고가 출간될 것을 염두에 두고 김현 본인이 사전에 편집한 글이기 때문에,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형태를 제시한 것이다 하고 해설에서 말하고 있다.
김현의 새로운 글쓰기 형태는 말하자면 "짧고 맛있는" 글쓰기인데, 이 책에는 그 표현이 어울리는 비평으로 가득하다.
정치 의식의 깊이에선 김원일을 따르지 못하고 있으며, 스케일의 크기에선 박경리를 따르지 못하고, 낭만적 사유의 울림에선 김주영을 못 따른다.(...)그러나 읽힌다.(68) — 조정래의 <태백산맥> 단평.
안도현의 <모닥불>(창비, 1989)는 재미없다. 체험의 폭도 좁고(평교사의 지루한 체험), 사유의 깊이도 없다, 아니 없어 보인다. 통일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의식이 무의식을 완전히 억압하고 있다. 좋은 교사, 좋은 시민. 옳다고 알려진 것만을 사유하는 젊은 시인의 그 순응주의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의 재능이 이 정도였는가?(285)
왜 이 사람의 일기에는 비평이 가득한가? 아니 뭐 비평가니까, 그러나 그것은 일차적으로 책읽기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책 읽고 글 쓰는 사람은 비평가가 아니고 독붕이다. 그걸로 돈 벌어먹으면 나 비평가요 하고 명찰 달고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도 일로 삼으면 질린다는 말이 있는데, 글 읽기와 글 쓰기가 일이면서 취미인 이 김현이라는 사람은 아무래도 쉽게 질리는 성격이 아니었나 보다.
몇 권의 시집을 쌓아놓고, 천천히 읽는다. 의무적인 책읽기가 아니니까, 읽다가 재미있으면, 더 천천히 읽고, 재미없으면 마구 넘긴다.(297)
어제 낮에 황학주의 <사람>(청하,1987)을 읽고, 뭔가 강력한 것이 내 속에 남아, 다시 읽으려고 제쳐두었다가, 오늘 아침, 찬찬히, 느릿느릿 다시 읽는다.(142)
그리고 또 하나 언급해야 할 것; 이것이 죽기 전에 쓴 일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쓴 글은 역설적으로 삶을 보여주고 있다. 육체의 쇠락에 대한 자각...동시에 삶에 대한 열망...
어떤 경우에건 자111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살아서 별별 추한 꼴을 다 봐야 한다. 그것이 삶이니까.(36)
삶의 순간순간이 죽음과의 싸움인데 그것을 모르고 희희낙락 지낸다. 그러나 고통이 없다면 죽음의 실감도 없으리라. 많이 아프라, 죽음이 너를 무서워하도록.(303)
죽음이 도둑처럼 갑작스럽게 온다면, 그것을 두려워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죽음은 순간순간 온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하나의 도구와도 같다.(331)
내가 내 육체의 주인이 아니라, 내 육체가 내 주인이라는 생각에 갈수록 깊게 사로잡힌다.(350)
남은 페이지가 얇아지는 만큼 그의 목숨줄도 얇아지는 듯 하여 책을 더 읽기가 싫었다. 더 읽고 싶었다. 그러나
새벽에 형광등 밑에서 거울을 본다 수척하다 나는 놀란다
얼른 침대로 되돌아와 다시 눕는다
거울 속의 얼굴이 점점 더 커진다
두 배, 세 배, 방이 얼굴로 가득하다
나갈 길이 없다
일어날 수도 없고, 누워 있을 수도 없다
결사적으로 소리 지른다 겨우 깨난다
아, 살아 있다. -1989.12.12.(366)
김현이 마지막으로 남긴 글은 "아, 살아 있다."로 끝난다. 소련의 록밴드 키노КИНО를 언급할 때면 따라오는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잠시 빌려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김현은 살아있다!
책 읽는 것을 업으로 생으로 삼았던 사람의 일기를 읽고 든 생각: 나 자신의 책읽기에 대한 생각.
나는 호기심 때문에 책을 읽는다. 나는 천일야화의 술탄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줄지 궁금하니 계속 읽게 된다.
초등학교 다닐 적부터 어린이가 읽는 세계문학 시리즈를 읽었다. 집에 꽃혀 있던 책을 아무거나 읽었다.
모비 딕,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지킬 박사와 하이드, 해저 4만리, 80일간의 세계 일주, 푸른 수염, 아르센 뤼팽, 15소년 표류기, 장발장, 걸리버 여행기, 톰 소여의 모험, 아라비안 나이트, 보물섬, 노인과 바다, 파브르 곤충기, 시턴 공물기, 왕자와 거지, 마지막 잎새, 몽테크리스토 백작, 피노키오, 정글 북, 플랜더스의 개, 리어 왕, 맥베스, 햄릿, 도련님, 아서 왕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럴, 오페라의 유령, 피터 맨의 모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의 마법사, 눈의 여왕, 갈매기의 꿈, 어린 왕자...
그러나 책을 사랑하느냐 물으면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하기 힘들다.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는 대답도 애매하다. 뭘 어떻게 해야 정말 좋아하게 되는지 사랑하게 되는지 기준을 모르겠다. 또 저는 책을 사랑해요!!! 하고 말하면
이 짤들마냥 느껴진다...
다만 독서가 절대 떼놓을 수 없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는 느낌은 확실히 받고 있다. 신이든 운명이든 내가 어쩔 수 없는 무언가가 허락하는 시간 동안은 독서하며 살겠다. 다 읽을 수 있을까?
정복할 수 있을까? 저 무한을. 신이여 나에게 무한한 욕망을 주신다면 나는 왕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 왕들은 모두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어령, 「도화 시간과 왕자」,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문학사상, 페이지 수 까먹음.
이 글은 김현의 글을 더 읽고 싶다는 말로 끝내고 싶었다. 근데 김현 문학전집이 품절이네?
그래도 문지 만든 사람인데 책 좀 다시 찍어줬으면 좋겠다.
라인업 보니까 어릴 때 생각나네 - dc App
나는 통큰세상 출판사에서 나온 교과서 세계명작문학 시리즈를 많이 읽었삼
예전에 사당역 책창고에 김현 전집 한 가득 있었는데... 책창고 없어져서 너무 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