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역사>를 900번째로 요악한 사람의 능력이나 밀턴, 포프, 프라이어의 열두어 행을 <스펙테이터>의 논문 한 편과 스턴의 한 장과 묶어서 출판하는 사람의 능력에는 벌떼같이 달려들어 미화하면서, 소설가의 역량은 폄하하고 그 노고를 절하하려고 든다. 오직 천재, 위트, 감식력으로만 승부하는 그런 작업을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 대세를 이룬 듯하다. 

"전 소설은 읽지 않아요...... 소설은 들여다본 적도 거의 없는 걸요...... 제가 종종 소설을 읽으리라는 상상은 하지 마세요...... 소설치고는 꽤 좋네요."

이런 것이 판에 박힌 듯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아가씨, 뭘 읽고 있어요?"

"아이! 그냥 소설이에요!"

젊은 숙녀는 대답한다. 일부러 무관심을, 혹은 일시적인 수치심을 엿보이며 책을 내려놓으면서.

"별거 아니고 <세실리아>나 <커밀라>나 <벨린다>인걸요."

한마디로 그냥 소설이라는 것인데, 실은 여기서야말로 정신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 발휘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지식, 그 다양한 면모에 대한 가장 기막힌 묘사, 생생하게 넘쳐흐르는 위트와 유머가 선택된 최상의 언어로 세상에 전달되는 것이다. 자, 바로 그 젊은 숙녀가 그런 소설 대신에 <스펙테이터>를 읽고 있었다면 그녀는 얼마나 자랑스럽게 그 책을 내놓으며 제목을 밝혔을까? 그 두꺼운 출판물에서 고상한 취향을 가진 젊은 여성에게 거슬리지 않을 소재나 문체를 담은 대목이 있어서 몰두하게 될 가능성도 거의 없으면서 말이다. 거기에 실린 글들에는 있을 법하지 않은 환경과 자연스럽지 않은 인물이 부지기수고 지금은 누구도 이젠 관심을 두지 않는 대화 주제가 넘쳐난다. 언어 또한 너무 거칠어서 도대체 그런 말을 용납한 시대 자체가 한심할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