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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언> 윌리엄.B.어빈
본저는 스토아 철학의 탄생배경 및 스토아 철학을 대표하는 주요인물들의 삶, 그리고 그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에 관하여, 더 나아가 스토아 철학이라는 고대의 사상을 현대의 사상에 적용 시키는 방법에 관하여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확립된 논리로 설명해주고 있다.
스토아 철학이란 더 좋은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뿌리에 두고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느냐에 천차만별하게 갈릴 수 있는 질문이지만, 스토아 철학에서의 좋은 삶은 평정심을 가진 삶이다. 마음의 평안을 얻은 사람들은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들에 흔들리지 않으며, 오히려 그 요소들마저도 포용하고 나아갈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나 또한 동의한다. 불행이 없는 삶은 존재할 수 없으며 그렇기에 그 불행을 자양분 삼아, 다른 종류의 불행이 내 삶을 덮쳤을 때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 믿음과 다르게 본저에서 등장하는 ‘에픽테토스’ 라는 학자는 당신이 상처받는 때는 자신이 상처받았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내가 상처받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불행이 없는 삶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장은 나를 충격에 빠뜨리거나, 회의에 빠지게 하진 않았지만 내 경험 일부분을 다시 돌아보게 해주는 결과를 낳아주었다. 또, 그 경험에서 난 그 당시 어떤 생각이었는지를 추측하게 해주었다. 상황이 나를 불행하게 한것이 아닌, 내가 나를 불행하다 인식해 난 그 순간 자체를 불행한 경험이라고 기억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평정심을 얻기 위한 방법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본저에선 ‘부정적 상황설정’, ‘통제의 삼분법’, ‘불편 프로그램 개시’ 등이 있었지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통제의 삼분법’이다. 통제엔 3가지 종류가 있으며(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 완벽하진 않지만 일부분 통제가 가능한 것,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 이 중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에 사로잡혀 해야하는일, 하고싶은일 들을 온전히 하지못하며 부정적인 감정 속에 여생을 보내고 있다. 그렇기에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내일 태양이 뜨는 것과, 진심을 다해 사랑했던 사람이 날 사랑하지 않는 다거나 상정했던 범위 이상의 비판과 모욕을 듣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것에 대해 상처를 받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 상황에 내가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한다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갈망하지 않게 된다. 오늘의 태양이 떴기에 어제보다 나은 하루를 살자고 다짐하는 것,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견디기 어려운 모욕에 평정심을 잃지 않고자 벌버둥 치는 것들에 힘을 들이다보면 통제할 수 없는 문제 자체를 망각하고 현재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 밖에도 스토아 철학에서는 쾌락 그 자체를 멀리하고 물질을 쫓는 것이 아닌, 자신의 내면 그 자체에 담긴 가치를 찾으라며 현대 사회를 병들게 한 물질만능주의를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나 또한 맹목적인 쾌락과 물질을 쫓는것에 부정적인 것은 동의하나, 이것들 자체를 근절하자고 말하는 쪽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현재의 나는 내가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의 것들을 누려보지 못했으며, 이것들을 얻고자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며 최후엔 그것들이 얼마나 내 삶에 덧없는 존재였는지 내가 직접 느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핍은 나를 움직이는 주요한 연료 중 하나이다. 대신 난 다짐하게 되었다. 물질과 쾌락이라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쫓는 것이 아닌 그것들을 얻고자 하는 노력에 초점을 다하여 과정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되자고. 나의 영역을 벗어난 결과에 삶을 맞추지 말자고. 그렇다 보면 스토아 철학에도 더 가까워 질것이라 믿는다.
본저를 읽으며 깨달은 점은 스토아 철학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을 내 자신은 거의 다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스토아 철학의 존재는 몰랐지만, ‘최악을 상정해 차악에 둔감해지는 것’, ‘어쩔 수 없는 일에 집착하지 않을 것’, ‘모든 만물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자 노력할 것’, 같은 말들은 이미 은연중에 행복한 삶을 바라는 우리에게 각인되어있다.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실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무의식적인 편의를 위해서일까? 지금 당장 이대로 사는게 좋아, 삶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있다면 너무 불행한 삶이 아닌가? 늦지 않았으니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방법들을 실행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방법을 알고있지만 뚜렷한 목적이 없어, 그것의 온전한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방법은 목적과 함께할 때 비로소 그 형상을 지니게 된다
그렇다면 나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삶을 위해 이 방법을 사용하려 하는가?
쓰고 보니 이상한 부분들이 많네여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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