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실이비 읽다 든 의문인데, 커뮤니티 정책에 위반될 경우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니체 「도덕의 계보」랑 칸트 「순수이성비판」 접한 이후로, 갑자기 도덕 문제에 꽂혀서 어지럽네
결국 읽는 책들이 눈에 안 들어와서 실천이성비판을 펼쳤는데, 너무 어렵기도 하고, 아직 못 닿은 현대철학(?)의 관점이 너무 궁금해서
도움 요청 글을 올려봄...... (철학사를 아직 안 봐서, 어떤 걸 기점으로 중세, 근대, 현대에 대한 구분을 나누는 건지 잘 모름)
일단, 칸트의 감성세계와 예지세계, 그러니까 물자체에 대한 개념은 배웠고, 순수 사변 이성과 이율배반에서, 그 중 우주론에서
어떻게 자유가 증명되는지까지는 이해했음 (대충 ‘인과법칙에 의한 세계를 배진하면 결국 원인의 원인이 필요한데, 그것은 증명될 수 없고, 때문에 자유이다.’)
헌데, 실천이성비판을 읽는 와중에, 정언명령, 도덕법칙, 당위, 지시 등이 아름답고 이해는 가지만, 자꾸 니체가 떠오르면서
자꾸 의문이 들고, 의심을 하게 되고, 내가 이해한 게 맞는 건지 헷갈리고 고통스러움. 그래서 참다 못해 이해는 하고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드는 부분들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궁금해서 글을 올려봄
Q1. 도덕법칙의 해석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순수 이성의 교조주의를 설명하였고, 후반부에서 그것이 바다의 지평선 같다는 비유를 했음.
우주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공간이 절대적으로 한정된 양이 아니라, 무한히 분할됨을 얘기했듯, 지성은 범주를 가지고, 이성은 무조건자를
찾는 이 상호 간의 상충으로 인해 사변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결론에서 이성의 한계를 말하고, 실천으로의 도약을 말함
그리고 실천이성비판에서, 순수이성비판과 같은 체계의 감성세계, 예지세계를 가지고 옴
감성(질료)에 의한, 자기 행복을 위한 것은 보편적일 수 없으며, 법칙이 될 수 없다고 말함. 여기서 감성세계의 것은 ‘조건’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이해하였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지세계의, 그러니까 인과법칙에 반대되는 자유, 그러니까 도덕법칙(도덕은 자유의 인식근거, 자유는 도덕의 존재근거)을
말하는 칸트의 말이, 알 수 없지만 존재한다고 말하는 예지세계를 다룬다는 생각에 자꾸 반항심이 생겼음 (그러니까, 정녕 자유(도덕)가 예지세계의 것이라면
언어와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어야 하겠지만, 나는 자꾸 납득과 설명을 바라고 있는데, 이걸 어떤 방향으로 접근해서 해결해야 할지 잘 모르겠음
Q2. 물자체는 허상인가
순수이성비판을 읽었을 때, 감명 깊었지만 한편으로 칸트가 ‘물자체는 있음. 근데 알 수 없음’이라고 한 부분에 대한 우려가 강했음
알 수 없다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음. 물론, 인간 범주를 벗어나, 이데아 관점(가상이 만들어지는 기준)을 생각하면 타당해보이나, 결국
이 부분은, 칸트가 주장한 ‘신 존재 증명’ 파트와 같이 인간 지성과 이성의 또는 감성세계와 예지세계의 논쟁이 될 우려가 강하다고 보여짐
근데 AI한테 물어보니, 칸트 물자체는 사실상 해체되었거나,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고 있다고 함. 이게 사실임? (칸트, 쇼펜하우어 읽으면서
물자체에 심취해있다보니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건지, 굉장히 충격임)
Q3. 물자체가 없는 도덕
이미 순수이성비판 결말에서 예견한 것이지만, 이론이성이 죽음을 맞이했다면, 이론이성의 상속권을 주장하는 무수한 실천의 산물(역사, 국가, 종교, 문화 등)이
낳아졌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는데, 순수이성의 자리를 대체하려는 것들이 질료(그러니까 현상이나 물질)라면, 도덕은 그저 공동체의 일종의 대화 수단임?
니체 말마따나, 약자들이 강자에게 갖는 원한이라든가,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의 객관화처럼, 모든 것이 경쟁의 모티브이고,
야만적인 경쟁을 할 수 없고, 구조적으로 강자가 소수, 약자가 다수(디오니소스적 철학과 인간 실상을 비견했을 때에도)를 구성하기에,
또 다수가 된 약자들이 푸코식 권력을 가지기에, 상호 합의한 사회 제도로써 권유되고 유지되는 것임?
Q4. 칸트의 빈 자리
칸트의 도덕법칙이 공상이라면, 니체의 도덕 해체나, 푸코의 구조주의가 사실이라면, 왜 현대에서는 도덕, 윤리를 말하는지 궁금함
같은 포유류 동물이나, 저지능이냐, 고지능이냐의 차이가 아니라, 무언가 원초적으로 다름을 증명할 명제가 필요했던 것인가?
우리는 그저 유전학, 생리학, 생존, 진화(적응)에 의해 시시각각 변모하는 동물이면서, 공동체 생활에 의해 체면을 의식해 도덕의 엄숙함을
빌려와 체면을 유지하는 존재인가? (도덕이 교육의 한 켠을 차지하는 것이 사회 인솔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가? 인간 존엄의 문제인가?)
Q5. 우리는 왜 도덕적이고자 하는가
원론으로 돌아와, 왜 준칙이 아닌, 법칙에 대한 강박을 지닌 건지에 대한 의문이 강함. 내가 자란 시기에는, 추측이지만 칸트식 도덕 교육이 강했던 것
같고, 나는 그 때문에 그것들을 행했음. 그렇지만, 성인이 되어서 내 개인의 태만이나 편의, 이익에 의해 기준이 쉽사리 흔들리는 것을 느꼈음
근데, 중요한 건 그 때의, 과거의 잘못들이 지금도 나를 괴롭힌다는 사실임. 모두가 이런 건지 궁금함. 그냥 니체식으로, 약자의 도덕으로 해석해
내가 그저 사회적 인정이나 입지를 다지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한 사소한 과오나 실수에 죄책감을 느끼는 건, 내가 약자이고 죄인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듦. 내 질문의 요지는, 살면서 거듭 실수하고, 지금에도 죄를 저지르면서, 도덕을 운운하는 모순적인 자신의 사고에 대한 의문임. (그냥 면피인가?)
Q6. 정녕 자유가 없다면
스피노자나 쇼펜하우어 철학, 또는 뇌과학을 접하며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점에 대한 인정을 더해가고 있음 (분쟁이 많은 주제인데 싸우려는 게 아님;)
다만, 나는 직관지를 통한 자율은 있기에, 인간에게 자유는 보장이 된다고 믿는 입장임. 근데 칸트가 말하는 도덕법칙이 사라지면, 자유는
현대에서 무엇으로 보장되는 거임? (현대? 철학을 잘 몰라서 그럼) 일례로 사랑을 예시로, 나의 외모, 나의 근육, 나의 직업, 나의 재능 등, 모든 게 인과에 의한다면
인간의 사랑에는 숭고가 없고, 파라미터나 진화에 따른 생존전략이란 결론 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그저 조건의 결합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위에 맞춰
아름답게 맞춰주는 일종의 쑈가 아닌지 의구심이... (칸트 도덕법칙이 현대에도 살아있길 바라는 애처로운 마음 T0T...)
Q7. 현대는 무엇을 말하는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처럼 모든 것은 무거움과 가벼움의 진자운동이고, 우리는 유행에, 자기가 처한 삶에 속해
유연함을 잃었을 때에 맹신하고 관철하고 포효하는, 그저 점을 찍는 존재는 아닌지 싶은 생각이 듦. 하지만 이건 현대 철학에 대해 무지한 사람의 입장인지라,
개인적으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내가 너무 철지난 옛날 얘기에 묶여있는 건 아닌지... 가르침이 필요함...
솔직히 밥 먹여주는 데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도덕 문제로 골몰하는 내 자신이 싫다.
이게 우월감을 바라서 갖는 문제의식인가? 그런 의심도 해본다. 근데 아니다. 이제는 줫도 상관이 없다. 어린 시절, 남의 시선과 평가에 휘둘릴
시기는 지난지 오래다. 근데도 왜 이런 고민에 휩싸이는가? 인간이 숭고해서? 아니면 교육의 개라서? 아니면 약자의 유전 때문에?
여하간... 이런 게... 도대체 현대에서 도덕을 운운하는 이 모습 자체가 너무 뒤쳐진 것 같아서 진솔하게 고민을 남겨봄
칸트는 안보고 사파만 파왔다보니 다른 쪽에서 말씀을 드리자면, 역사의 종말 같은 완전히 철파된 철학을 믿어온 사람도 아니고 무언가를 철학한다 라고 이야기를 하기에도 애매한 수준에서 자기 삶의 규범과 가치판단 하나 없이 거대한 지식을 기둥 삼아가고자 하는 건 문제가 있지용. 말씀하신 고통이라는게 진정 게슈탈트 붕괴 같은 근간이 흔들리는 문제라면 책 덮고 스스로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찾아보시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정도는 아니에용..."이라면 수사학부터 읽으시고 철학사를 읊어가시는게 나을 수도 있구요. 물론 심각한 서문과는 다르게 읽다보면 느낄 수 있는 철학적 질문들이 대부분이라 그리 걱정은 되지 않습니다만, 또 글 말미로 오면 정신병 도졌다고 자책하시는걸 보면 아깝습니다. - dc App
배움의 능선에서 철학을 향유하며 사고와 규범에 대한 자기 강화가 목적일텐데, 아쉽게도 도구를 활용하는데에 무지함이 큰 걸림돌이 되었지 싶네요. 칸트 철학에 대한 부분들은 유튜브나 구글에 검색하면 다양한 자료가 나옵니다. Dbpia들어가셔서 보시면 관련 사료들도 잔뜩이구요. 제가 뭐 신선도 아니고 대가리에 국영수나 잔뜩 채워놨지 대단한 놈은 아니지만, 철학의 쓰임에 대한 서적을 먼저 읽어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괜찮습니다. - dc App
바둑에 미친놈이나 사시낭인 같은 사람 되자고 독서하시는거 아니잖아요. 고뇌하고, 스스로에 실망하고, 깨지는건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하는 일에 의미도 보람도 가지지 못하면서 거기에 매몰되어 있는건 바보죠 바보 쪼~다. 보통은 자연적인거지만, 깊게 들여다 보았을 때 본인 판단 마저 경위를 읊지 못하는 순간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랑 다를게 없습니다. 아무런 득이 없다고 생각 안합니다. 중용을 못찾은게 문제죠. - dc App
고맙습니다. 많은 위안이 됩니다. 왜 하등, 이런 심각하지 않은 문제로 고민하는지 모르겠어요. 저 스스로 뭘 좋아하는지는 알지만, 다만 그게 고등한 게 아닌, 그저 탐욕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또 배워온 게, 인간은 숭고한 존재라는 사실이라는 점이란 부분 때문에 상충되고 막히는 것 같습니다. 중용, 균형, 왜 이런 걸 인정하지 못하는지 싶습니다. 삶이 이분법이 아닌데 말입니다.
@정신병있는놈 하지만 한 가지 반문을 달자면, 중용은 너무나도 쉽다는 것입니다. 오만이지만, 사람들에게는 교양 서적이 준 것처럼, 과학이 준 것처럼, 심리학이 준 것처럼, 유행하는 mbti가 주는 것처럼, 일종의 양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병이 도졌다는 근원적인 이유는 단순히 그것에 대한 허가를 누가 해주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다 보이는데, 그것을 콕콕 집어, 공략하는 일. 그것을 지시한 게 부모의 교육인지, 못생기거나, 열등한 나의 재능 유전자인지, 도대체 예지체가 없다면, 우리가 왜 그렇게 하는지 저는 늘 의문이 듭니다. 적당히 먹고 살 수 있다면, 나 자신에게 당당하다면 우린 그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우린 왜 중용을 바랄까요? 막말로 칸트가 말하는 예지세계가 죽었다면, 도덕법칙이 죽었다면
@정신병있는놈 도대체 왜 사람들이, 사람에게 관여하는 일에 손을 놓지 못하냐는 말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만약 당신에게 100억이 있다면, 당신은 그들에게 참견하거나, 관여하거나, 교화코자 하는 의지를 가졌을까요? 제게 필요한 건 단 한 가지. 내가 그들에게 금전적이든, 상호작용이든, 뭘 바라지 않고, 참여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그게 칸트가 말하는 물자체가 무너졌을 때에 납득할 수 있는 영역인지... 저는 그게 궁금합니다... 어떻게 사람들은... 타인의 미흡함과 악행에도.. 사랑을 잃지 않는지... 보상이 없으면서도 행하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안경여드름돼지 재밌게 사시네요. 부정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구요. 즐거운 삶의 방법! 의문과 감탄을 잃지 않을 자질이 있으십니다. 그거 때문에 미칠지경이면 우선 뇌과학을 파보시고 그 다음 심리학으로 넘어가시면 답이 나올겁니다. - dc App
@정신병있는놈 고맙습니다. 선생님. 진지하게 조언 따라 차근차근 밟아보겠습니다.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안경여드름돼지 그리고 태아적에 형성된 성격 자질에 환경이 더해졌고 이후의 상황에 대한 반응이 더해지고 던져진 모든 것들에 의해 영향 받은 우리, 그중에서도 누군가가 어떤 사고와 행동과 의미를 지닐지, 이후의 행동은 어떨지에 대한 계산은 양자컴퓨터를 가져와도 쉬운게 아닙니다. 불가능이니 악마라 이름이 붙겠지만 라플라스의 악마 조차도 물리세계 선에서의 예측이나 가능한 것이지 "저새낀 왜저러노"에 대한 예상은 인과적인 수준에서나 시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용. 단기적인 해결로는 성직자가 아니시면 자1위를 해보시고 아님 운동을 해보시는게 - dc App
@안경여드름돼지 감히 비슷한 시기를 겪어봤다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을 예측 가능한 것이다. 많이 힘들지만 어떻게든 쪼개보면 답은 나온다. 라고 생각했던게 패착이었습니다. 인간 성격 형성 과정을 가지고 제한적 상황이 아닌 곳에서의 행동 예측 가능 범주가 어디일까 라는 생각으로 경향성 연구라 이름 붙인 쌩쑈를 해봤었는데, 2주 내리 날밤까면서 했었지만 답이 안나옵니다. 할 짓 안돼요ㅡㅡ. - dc App
@안경여드름돼지 별개로 직접 적어주신 댓글에도 보E지만 선생님 자존감이 낮아보이십니다. 진또배기 미친놈이면 제 측은지심도 "이새낀 자존감 채울라고 이러나", "점마 저러는건 저렇게 배웠기 때문인가" 하고 질문공세 기싸움 파티 시작인데, 별 문제 없으신걸 보면 그냥 순수하게 어디 깊게 빠질 곳이 필요하신 걸지도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인간이 왜 그러는지 가지시는 궁금증에 대한 제 행동 양식은 "그렇게 배웠고, 돈은 안되지만 다른 사람도 내 스스로도 채울 수 있는 가치이자, 비슷한 고뇌가 있었으며,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가지시는 의문 전부다 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환경이죠. - dc App
@안경여드름돼지 뭐 ㅈㄴ 적다가 날아가서 짧게 줄이자면 지금 가지시는 질문들에 대한 답은 다른 서적들도 읽어보면서 다양한 시각으로 경험해보는걸 추천드리고 저는 《사랑의 기술》,《자유로부터의 도피》추천합니다. 점점 다른분야로 가게 되면서 보편적 가치를 이야기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겠지만 넓어진 시야를 가지고 다시금 접하게 되면 더욱이 도움이 될겁니다. 그럼에도 이유를 모르겠다면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고 어떠한 스탠스로 철학을 받아들이는지 구경을 해보시는걸 우선으로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본인이 못나서 그런 것 같으면 운동하고 피부관리 먼저 하십쇼 이건 뭐 답 없어요. 철학으로 머리 속에서 체스를 오조오억번 둬도 결국엔 전기기사 자격증 하나에 오체분시로 찢기는 와중 - dc App
@안경여드름돼지 지식이 자기 삶에 긍정적 영향을 못주면 그건 그냥 책 많이 읽은 지능 없는 스티븐 호킹입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쇠질이나 열심히 해야죠. 좋은 밤 되세용~ - dc App
@정신병있는놈 아침에 다시 곱씹어 읽어봅니다. 현실적이고 필요한 얘기입니다. 글 올리기 잘 한 것 같아요! 철학의 쓰임에 대한 고민, 순수하게 깊게 빠질 무언가를 찾는 것, 단순히 경향성으로 정리된다고 보기 어려운 인간의 복잡함, 같은 고민을 거친 사람의 조언, 이를 도울 현실적인 서적 추천 등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철학으로 머리 속 에서 체스를 오조오억번 둔다’, ‘지식이 자기 삶에 긍정적 영향을 못주면 그건 그냥 책 많이 읽은 지능 없는…’이 공감이 되네요. 자주 환기성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__ )
Q2- 물자체는 당대에도 모순이 있다고 지적받음 대충 요약하면 물자체는 시공간 바깥에 있고 현상은 시공간 안에 있는데 그럼 물자체랑 현상은 별개니까 현상을 백날 알아봐야 그게 물자체랑 관련되었다는 이유는 없게 됨
Q3. 헤겔 보면 됨 근데 아뿔싸 내가 헤겔이 그걸 다루는 법철학을 안 봄 니미
@ㅇㅇ(211.234) Q4. 애초에 물자체가 흔들렸다고 그게 공상이 아닌가 식의 회의는 거시기하지 왜냐하면 칸트의 핵심은 근대까지 이어진 전통 권위가 흔들리고 이성이 도입되던 때에 이성의 독단을 방지하고자 고민한 거고, 요즘 칸트재해석의 핵심도 그거라 시공간 형식이 상대적인게 증명된 현대에도 칸트는 철밥통임
맞습니다. 당대에도, 후대에도 지적이 많더군요. 다만, 저는 그것마저 무너진다면, 저 또한 여우와 뱀으로 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왜 내가 곰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칸트가 왜 현대에도 철밥통일 수 밖에 없는가라는 직접적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고맙습니다!
4번 같은 경우에는 뭔가 님이 철학이 실제 현실을 말하는거라고 생각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그냥 그 철학자의 관점일 뿐임. 물질적 증거도 부족해서 증명할 수도 없고 그냥 뇌피셜인거임 그리고 순수이성비판에서 물자체를 알 수 없다까지는 칸트철학내에서 그렇게 큰 모순은 아니라고 볼 수 있음. 물자체를 알 수 없다해놓고 알 수 없다는건 어케아냐는 비판에 대해서 현상계에서 가능한 범위까지를 경계지어놓고 여기까지만 알 수 있다! 는 식으로 말하면 가능하지 않나 싶음. 근데 여기서 물자체에 예지계를 상정해서 어차피 이 영역 모르니까 아무거나 넣을 수 있음 하는 식으로 여기에 도덕을 넣는거지. 본인도 이게 개억지인거 알아서 그런지 신,도덕을 "요청"한다고 함. 거기 있다고 하는게 아니라. - dc App
여기서부턴 되게 모순처런 보이고 뭔가 말 안되는거 같은 느낌이 들긴함. 칸트가 비판받은 것도 이 부분이고. 니체는 칸트가 예지계라는 뒷문을 통해서 다시 신을 끌어들인다 이런 말을 햇엇던거 같음 - dc App
신,도덕을 요청한게 아니라 신, 자유를 요청한건데 잘못씀 - dc App
그리고 도덕에 관한 얘기는 아주 많고, 아주 많다는 사실이 그저 철학자들의 관점일 뿐이라는 거니까 칸트가 맞나? 니체가 맞나? 이런식으로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는 듯. 도덕에 대해서 자꾸 생각이 든다면 여러 철학자들의 도덕철학을 읽고 사유의 지평을 넓혀보는게 어떤지? 그럼 아마 이게 답이 없다는 걸 더 알게되면서 나는 어떤 관점인지도 더 잘 알게 될겁니다 - dc App
@ㅇㅇ(211.204) 그러게 말입니다. 저는 자꾸 철학을 실제 현실과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같아요. 칸트철학에 대한 설명과 정리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네 번째 글이 공감이 갑니다. 정답이 있는 게 아닌, 각 철학자들의 관점인 것인데 너무 심각한 수준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유의 지평을 넓혀라’도 현실적으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읽는 책마다 너무 여과 없이 받아들이다보니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위에 계신 분이 제안한 해결방법과 절충해서 진행해봐야겠습니다! 새벽에 좋은 말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__ )
@안경여드름돼지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것, 남김없이 책을 먹어치워서 체화하는 것은 아주 좋은 태도, 습관이라 생각합니다. 화이팅하세요 - dc App
@안경여드름돼지 저도 철학책을 즐겨보는데, 그 책을 읽을때만큼은 그 안에 몰입해서 완전히 먹어치우려고 노력합니다. 영화에 비유하면 좋을 것 같은데, 저는 영화도 집중해서 보지만, 영화가 끝나고나면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고 항상 생각합니다. 영화는 절대 현실 그 자체가 될 수 없거든요. 문학이나 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인상깊게본 보르헤스의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의 철학 이론은 처음에는 세상을 그럴듯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것은 철학사의 한 장으로만 남게 된다." - dc App
@ㅇㅇ(211.204)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좋은 구절 감사합니다 딱 제게 필요한 말이네요,, 그러게요,, 현실과 이론은 다른데,, 자꾸 현실을 증명하는 이론을 내세워달라고 발버둥치고 있으니,, 한 편의 영화, 사진처럼 받아들이는 철학이라,, 정말 필요한 촌철살인입니다 감사합니다 즐주 보내세요^^
난 철학에 대해 읽어본게 별로 없음. 그래도 참견 해보자면. 1. 도덕법칙은 무너지지 않았음. 무너진건 칸트가 만든 그 당시의 철학이 무너진거지 큰 틀에서 봤을 때 철학에서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것. 즉 물자체 혹은 진리, 신 등등과 같은 것들을 인간의 이성의 한계를 이유로 들어, 알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하고 그 자리에 사람들이 믿고 따라야하는
삶의 지침으로 삼고 살아가야할 것으로서, 종교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 두었음. 니체의 경우는 어떤가? 현대 과학에 의해서 신이 죽은 현실 사회를 위해 또 그 당시의 관점에서 낡은 도덕관념과 종교를 치워버리고 혼자 남은 개개인의 다양한 기준과 관념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 진정한 나 로서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라고 했음. 여기서 글쓴이 님이 느끼는 죄책감과 의문들
@ㅇㅇ(169.212) 그것들은 진정한 나 가 아닌가? 현대의 과학에 의해서 밝혀진 것들. 인간은 자유의지가 없다는 문제에 대해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나의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뇌 안에서의 전기적 신호들의 결과물일 뿐이고. 대부분은 신체에서 만들어내는 호르몬의 변화에 의해서 쉽게 바뀌고 한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 개개인의 성격이 다 다른 것과 신체적인 요소들이
@ㅇㅇ(169.212) 다른 것은 그냥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와 유전자의 변이에 의한 결과물인 것. 그래서 인간은 자유의지가 없고 유전자에 의해서 정교하게 프로그램 된 기계일 뿐이라는 결론으로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과학의 방향은 이 쪽으로 가고 있음. 그럼에도 종교, 칸트나 플라톤 같은 철학들이 무너지지 않은 이유. 우리가 기계라고 해서 도덕을 지키지 않을 이유가 뭐지?
@ㅇㅇ(169.212) 불쌍한 사람들을 보고 연민을 느끼고, 과거의 죄로 인해서 죄책감을 느끼고,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종이 생존해 오기에 이로웠기 때문임. 글쓴이 님이 말한 도덕은 그저 사회가 필요로 하기 때문에 존재해 왔는가 라는 질문에 답해 보자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라는 거임. 인간은 프로그래밍 된
@ㅇㅇ(169.212) 기계이기 때문에 본능으로서 도덕이 작용해 대부분의 사람들의 내면에 식욕, 성욕, 수면욕과 같은 위치에 도덕심이 들어가 행동원리로서 작용한다는 거임. 그런데 다시 칸트로 돌아와서. 현대 과학이 인간에 대해서는 아마도 대부분 밝혀 주었지만, 철학과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즉 물자체에 관해서는 과학이 답을 주었나? 아니면 물자체에 관해서 우리가 알 수 있을
@ㅇㅇ(169.212)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과학이 알려줄 가능성이 희박하게라도나마 있는가? 에는 아마 아닐 것이다 가 현대 과학의 답임.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는 한계가 정해져 있고 미시세계의 법칙인 양자역학과 거시세계의 고전역학, 상대성이론 들을 통합시키는 통합이론도 발견하지 못했고 우리가 이론적으로만 알 수 있는 양자역학적 세계인 미시세계에서도 또 그 아래의
@ㅇㅇ(169.212) 더 미시적인,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 보다 더 작은 것은 우리가 이론적으로라도 알지 못함. 그렇다면, 인간의 한계를 두고서 사람들이 믿고 따라야할 것으로서 종교를 세웠던 칸트의 그 당시 상황과 지금 현재의 상황이 다른 것은 무엇인가?
@ㅇㅇ(169.212) 인간이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하고 실천하고 행동해야 할 근거가 되는 법정으로서의 도덕은 여전히 그대로 살아있음. 이제 잠 와서 더이상 못쓰겠다. 글이 이상했을텐데 미안합니다. 글쓴이 님은 지금까지 배웠고 믿어왔고 또 믿고 싶은 것들이 시대가 변하면서 바뀐 걸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건 이겁니다. 믿어야 하는 것이니까 믿는다.
@ㅇㅇ(169.212) 아, 아닙니다. 본문의 제 글이 두서가 없었는데 오히려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셨고, 제가 의문을 가졌던 자유의지와 과학, 그리고 도덕에 대한 의문에 도움을 주는 답변이었습니다. 전혀 이상하지 않고 술술 읽혔습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관측할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있다.’, ‘그렇다면 그 때와 현재 상황이 다른 것은 무엇인가?’, ‘도덕은 여전히 그대로 살아있다.’, 사실 제가 바라온 답변이 이것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전 바뀌는 시대 속에서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하지만 말씀처럼 아직 법정이 무너진 것은 아니지요! 이 글도 괴로울 때마다 돌아와서 읽겠습니다. 무언가 더 조언해주실 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흥미롭습니다.)
@안경여드름돼지 아닙니다. 제가 말한 것들은 모두 제가 어디서 주워들은, 제가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을 토대로 제가 원하는 이상에 끼워 맞춘 것으로. 아주 억지스럽고 무식하게 보였을 줄 압니다. 저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비슷한 괴로움과 고민, 혼란 등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성의 한계 너머에 도덕을 요청한 칸트의 높은 이상을 좋아하는 독자로써
@ㅇㅇ(169.212) 선생님이 괴로워하시는 모습을 보고 혹시나 그 이상을 버리지는 않을까 그것이 싫어서 침묵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선생님은 아주 좋은 상황에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아마 앞으로 여러 가지 지식과 철학 등을 접하고 습득하여, 선생님만의 이상 혹은 철학을 만들어내시겠지요. 기대가 됩니다. 응원합니다.
@ㅇㅇ(169.212) 고맙습니다. 댓글 달아주신 분들 덕에 생각이 많이 트였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요. 직전까지는 다 무너진 이상이란 모래성에 대한 똥고집이었다면, 지금은 생각 자체가 전환된 것 같습니다. 저는 탄생과 죽음이란 시작과 끝이 있기에, 그간 과정 자체가 다 정해져있는 기계적 삶이라고 착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론과 실천은 분명 다른 것일 겁니다. 실천이성비판에서 말하는 게 뭔지 몸으로 감각하기 시작한 거 같습니다. 위로의 말 고맙습니다. 선생님. 제게는 설득도, 조언도 필요했지만, 같은 길을 걸었던 사람의 공감과 위로, 그리고 격려도 무척 필요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