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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길을 걷는 사람에게 ’노인과 바다‘의 결말이 뭔지 아시나요?라고 묻는다면 10명 중 9명은 최소한 ”아 그 물고기 잡았는데 다 뜯어먹힌 소설“ 이라는 대답은 할거다. 그만큼 유명한 소설이고, 결말을 아는만큼 쉬어가는 느낌으로 가볍게 집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헤밍웨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조금은 보이는 것 같다.
노인은 84일째 고기를 못 잡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불합리한 시련과 고난을 마주한다. 육지에서 노인은 이 상황에 대한 동정과 비웃음을 사긴 하지만, 본인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소년과 소년을 통해 음식을 전달해주는 가게 주인 등을 통해 인간의 온기 속에서 살아간다.
노인은 큰 고기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고, 큰 고기를 잡기 위해 먼 바다까지 나가며 자신을 항상 지지해주는 소년도, 자신을 비웃거나 동정하는 다른 사람들도 없이 사투를 벌인다.
육지와 다르게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광활한 바다와 자연에 홀로 선 노인은, 큰 고기와의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큰 고기를 집착과 원망의 대상에서 서로 교감하는 이해의 대상, 형제로 받아들인다.
“고작 의지와 지혜만 남은 내게 맞서 모든 걸 던져 싸우고 있는 저 녀석이고 싶구나.“
지속적인 물고기와의 사투를 통해 이해의 대상을 결국 잡은 노인이지만, 타인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상어 떼의 습격은 결국 사투의 결과물마저 앗아가고 노인에게 손해만을 남긴다.
그러나 노인은 사투의 결과물이 사라졌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는다. 상어 떼라는 시련과 싸우며 이전 사투의 결과물이 사라지면서, 노인은 역설적으로 결과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고독하지만 단단하고 의지있게 항구로 복귀한다.
“그러나 노인은 신경 쓰지 않고 키를 잡는 일에만 집중한다.“
다가오는 시련을 당당하게 마주하고 돌아온 노인은 비록 물질적인 결과물을 갖지는 못했지만, 사자꿈을 꾸며 앞으로 다가올 다른 시련을 보다 단단하게 버틸 수 있는 상태가 되지 않았을까.
헤밍웨이는 인간이 불합리한 시련을 맞이하더라도 시련을 삶의 동반자로 받아들인다면,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시련의 과정으로 인간의 의지를 단단하게 지키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인간은 부서질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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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내가 이런 딱딱한? 문체를 안 좋아해서,,,읽다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는 알거 같은데 썩 재밌게 읽은 느낌은 아니었음
솔직히 유명한거 아니었으면 서점에서 조금 읽다가 흠 내 스타일은 아닌데 하고 덮지 않았을까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어지지만 속에는 큰 힘이 느껴지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