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중에 아이피가 똑같은 둘이 대화하는거같아서 누구 입장인지 분간은 안되지만 주장을 따로따로 살펴보자
(같은 ip의 댓글 쓴이가 현상학을 옹호하는 애도 있는거같고 비판하는 애도 있는거같음, 비판받는 쪽은 맥락상 마르크스주의? 루카치주의?를 옹호한다고 간주되고 있음.)
주장1:
현상학은 사태의 본질, 원인 이런거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말고 그냥 네 줏대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
현상학이 사태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사실임(아마 댓 쓴이 의도가 이거였으면 전적으로 동의함)
그런데 현상학이 "사태의 본질같은건 없고 모든 것은 그냥 내 주관(좋게 말해서 줏대)이 구성한 것이다" 라고 말하면 헛소리임
그리고 그 어떤 현상학자도 네 줏대로 생각하라고 한적 없음. 사태가 그 자신을 드러내보이는 구조를 직관하는거지 내 줏대로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 규정하는게 아님
주장2:
현상학은 과학이 쓰레기라고 주장한다
-->
이건 댓글쓴이의 의도를 너그럽게 해석할 여지도 닫혀있는 잘못된 주장임.
물리적 사물을 다루는 물리학의 가정이 이념적 존재를 다루는 수학, 논리학을 침범하는 것
또는 물리학이 본질적으로 다른 영역을 다루는 역사학 등을 침범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지 후설은 과학이 쓰레기라고 말한 적이 없음.
주장3:
현상학의 목적은 학문을 폐기하여 주관적인 영역으로 만들어놓으려는 것이다
" 학문을 폐기하여 " -->
현상학의 목적이 학문을 폐기하려고 한다는 주장은 반박할 가치가 없음. 현상학의 목적이 객관적인 엄밀학을 세우는것인데 학문을 폐기해서 어쩌자는거임?
물론 댓글 쓴이 주장은 현상학 하나만 빼고 다른 구체적인 과학들, 심리학 물리학 같은걸 폐기하려고 주장하는것이라고 해석할수도 있음
그런데 후설은 현상학적 심리학이 오히려 경험심리학(대학교에서 배우는 그 심리학)에 모체 개념을 제공한다고 했고, 오히려 개별 과학들의 가능 조건들을 탐색하고자 했음
개별과학을 비판하는 것은 단지 소박한 형이상학적 전제를 검토하지 않는 태도를 지적하는 것이지, 개별 과학을 폐기하는 것은 현상학의 목적이 아님
" 주관적인 영역으로 만들어놓으려는 것이다 " -->
현상학을 유아론, 관념론으로 오해하는 몇몇 학자들이 있는건 사실이나, 이제 그런 잘못된 입장은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극복되었음.
생활세계와 상호주관성 문제는 후기 후설의 대표적인 아젠다이기 후설은 유아론을 아주 적극적으로 거부한 사람임.
주장 4: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사회학적 범주로 성립할 수 없다. 상부 영역은 하부 영역이 승인하는 내용 하에서만 성립함
--> 이 주장은 현상학을 반대하는 사람(아마 마르크스주의 옹호하는 쪽?)이 할 법한 주장임. 이 주장이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판단하기 앞서서 일단 현상학이랑 대립하는 입장인것임
현상학은 범주들이(후설은 범주보다 사태의 본질이라는 표현을 주로 씀) 각각의 사태에서 그 자체로 도출되는 것이라고 말함.
예를들어 현상학자들은 우리가 사회적 체험을 할 때 체험의 본질적 개념들(상호주관성, 인간간의 상호작용, 주체 등)을 도출되는데, 이는 물리학적 개념들로 환원되거나 오해될 수 없다고 말함.
이걸 반박하고싶으면 내 눈앞에 물리적 객체나 입자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주체나, 인간 간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면 됨. 하지만 주체나 상호작용은 본성상 눈앞에 나타날 수 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임.
왜냐하면 어떤 물리학자가 물리학적으로 여성 주체가 뭔지 보여주겠다고 내 눈앞에 생물학적 여성을 데려다 놔도, 내가 그걸 단지 뼈와 살로 된 물체로 지향(물리학적인 방식으로 지향)하면 그건 더이상 여성 주체가 아니기 때문임.
결론
쓰다보니까 이 주장들 대부분을 한건 아마 마르크스주의? 루카치 주의?
인지 뭔지 모르는걸 옹호한다고, '자신과 아이피가 같은' 어떤 유동2에게 간주되고 있는, 어떤 유동1이었던것 것으로 추정됨.
아마 유동2는 독갤에서 유동1를 몇번 보고 거부감을 느꼈던듯
유동1의 궤변을 반박하고 있는 유동2는 나랑 같은 입장이었을듯 함
만약 마르크스주의를 진심으로 옹호하고 싶다면,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 같은 글을 읽고 현상학의 비판철학적 가능성을 발견하기를 바람. 이상
우리 모두 태초의 방주, 지구는 흔들리지 않는다를 읽자. 후설의 간지가 잘 드러나는 글임.
독갤하면서 211.234랑 106.101 차단 안한사람 없지? 근데나도 106.101이라 셀프차단됨 이댓글도 달고나면 안보임
메멘토 게이야 ㅋㅋㅋㅋㅋ - dc App
끝없는 자아비판 ㄷㄷ
이제 하이데거가 나치를 참지 못하고 현상학을 개족보로 만들었다고 억까할까요?
뚝배기 빨간 친구는 단 자하비부터 떼고와야할거같다
@huse0118 농담임ㅎ 현상학 보고 이성의 파괴 운운하는 건 니체랑 하이데거를 깐 루카치를 신으로 섬기겠다라고 선언한 수준이라 걍 먹물인게 느껴지더라
나도 네가 유동2인줄 알아봤다ㅋ
근데 나는 루카치는 모르는데 그사람이 진짜 그런식으로 말함? 아님 유동1이 루카치도 제대로 모르는거임?
@huse0118 뽄새보니까 마르크스랑 루카치를 취미 이상으로 알긴 함 근데 루카치만 써먹고 온갖 상황에서도 루카치가 맞다 여기니까 마르크스를 성부로 여기고 루카치를 예수로 여기는 종교인이 됨 성령은 지한테 돈대주는 누군가려나
@huse0118 근데 생각해보니까 궁금한게, 개론서 보니까 후설의 당대 핵심은 직관들이 서로 관계하는걸 가능케 하는 범주적 직관이라는데(일단 이게 맞다는 하에), 헤겔류 사상은 직관같은 직접성은 관계를 통해 매개되고 규정되는거라 주장하고, 이럼 범주적 직관은 직관을 가능케하는 직관이잖음? 이런 헤겔을 또 이어받은게 마르크스 류라 저렇게 극성인거 같은데 이게 맞...나?
@ㅇㅇ(211.234) 나는 후설의 직관 개념이 철저히 현상학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해서 다른 철학들이랑 어떻게 대화시킬지는 도전적인 과제라고 봄. 후설이 말하는 직관은 파악내용과 파악의 특정한 관계에 붙은 이름일 뿐임. 내가 헤겔은 초보지만, 헤겔은 마치 아무런 개념적 매개도 없이? 직접적으로 경험이 소여되는걸 두고 직관이라고 부른다고 알고있음. 그런데 후설의 직관은 이미 개념을 포함하는 직관임. 그리고 심지어, 범주적 직관(and, or, is같은걸 포함하는 직관)이 아닌 단적 직관조차도 이미 개념을 갖추고 있음. 내가 과일을 지향하고 실제로 파악내용이 지향을 충족시키는 경우인데, 이건 단적 직관(감성적 직관이라고도 하는)인데, 이미 과일이라는 개념이 지향적 질료에 들어가있잖음?
@huse0118 뭐라 딱 답이 형성은 안 되는데 도움 자체는 많이 되네 그러면 범주적 직관과 단적 직관 간에 차이는 있어도 급이 있다는 건 분명 아니지? 후설 논지면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뭔가가 있어도 그 뭔가야말로 더 급이 높다는 건 오해일테고(둘 다 개념이 포함되니까), 유추가 바른건진 모르겠는데 후설 써먹은 사르트르도 그런거 배제하니까
@ㅇㅇ(211.234) 급이나 위계가 있음. 명제를 직관하는거(범주적 직관)이 단적 직관에 의해 정초되니까. 예를들어 파란 책을 눈앞에 두고 "이 책은 파랗다"고 직관한다고 해보자. 이 범주적 직관은 "이 책", "이-책의-파랑", "이다(술어)"로 정초되는데, "이 책", "이-책의-파랑"은 단적(감성적) 대상임. 반면 "이다(is)"는 범주적 대상임. "이 책"이랑, "이-책의-파랑"을 직관하고 나서, 그 둘을 범주적 대상 "이다(is)" 로 종합함으로써 "이 책은 파랗다" 라는 판단이 직관되는 것임. 이 위계는 단지 논리적인 위계(정초관계)이지, 헤겔처럼 미숙한 의식이랑 계몽된 의식같은 의미로 급을 나누는건 아님
@huse0118 따흐흑 감사합니다
@ㅇㅇ(211.234) 반면 수학적 계산, 예를들어 1+1=2 처럼 감성적 대상을 아무것도 포함하지 않는 범주적 직관도 있음. 내가 말하고 싶은건, 범주적 직관에 감성적 소재(구체적인 저 사과, 내 친구 등)가 있으면 범주적 직관은 그런 그런 감성적 소재에 대한 직관에 의해 정초된다는 의미에서 위계관계가 있다는것임
@huse0118 그러면 사르트르의 경우는 실존에 집중해서 말한 학문적 위계를 우열로 해석하고 그 급을 없애려 한 식으로 해석되네 자꾸 뭐 덧붙여서 좀 미안한데 암튼ㅋㅋ
꿀잼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