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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탱고라는 소설은 꽤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딱히 큰 이유가 있던 건 아니고, 그냥 제목이 멋있어서 장바구니에 오랫동안 담겨져 있었는데, 라슬로 선생님이 마침 작년에 노문상을 타셔서 그때 냉큼 샀다가 지금에 와서야 완독하게 되었다.


이야기는 1980년대 헝가리의 외딴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곳에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운영하는 집단 농장이 있는데, 과거에는 사람의 발길이 좀 있었으나 현재에는 아무도 찾지 않아 쇠락하고 말았다.


마을 이곳저곳의 건물과 사람들이 사는 집들은 낡고, 점점 부스러져 간다. 마을의 주민들 또한 의욕이 없다. 매일매일 술을 퍼마시고 불륜을 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이들 중 몇몇은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저 멀리에서 의문의 종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을 깨운다. 종이 있는 교회는 오래전에 부서져버려 종소리를 낼 수 없지만 말이다. 소리와 함께 찾아온 소식은 공산당원 이리미아시가 돌아와 마을 전체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줄 거라는 것.


이게 간단한 줄거리고, 각 챕터마다 인물 한명한명을 조명하여 그 인물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군상극의 양상을 띈다.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껴졌던 특징이라고 한다면, 전체적으로 만연체로 글이 쓰여져 있어서 무턱대고 읽을 수 있을만큼의 쉬운 소설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글의 문단을 나누지 않고 한번에 쭉 쓰여져있어서 자칫하면 집중력을 잃기 좋겠다고 생각했다.

글의 서술 방식에 어느정도 적응이 된 중반부부터는, 이러한 특징이 장점이 되어 뛰어난 흡입력을 보여주었다.

중간에 끊는 게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읽게 되기도 하고, 이야기 자체가 재밌어서 딱히 그만두고 싶지도 않은, 그런 느낌이다.


좋았던 점을 하나 더 말해보면, 문단을 나누지 않음으로 인해서 물 흐르듯이 인물들의 감정을 체험하고 세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희망과 절망, 개인적인 욕망들이 여러 인물들을 통해 계속해서 옮겨가며 점차 독자에게 전달된다.

작품은 약간의 희망으로 시작해서 결말에서는 그야말로 절망의 끝부분으로 계속해서 가라앉는데, 이 흐름을 부드럽게 따라가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어있다.


한편, 라슬로 선생님이 글을 쓸 때 카프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작품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났다. 약간의 차이점이라면, 카프카는 꿈 속 같고 기묘한 느낌인데 사탄탱고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암울하고 우중충하고 진흙처럼 질척거리는, 꽤나 찝찝한 인상이었다.


보살피는 사람 없이 빗속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에슈티케도 그렇고, 구@원을 가져다 줄 메시아인 줄 알았던 이리미아시가 남을 속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이기적인 협잡꾼이었던 것도, 결말에서 밝혀지는 사실도 정말 어둡기 짝이 없었다.



그는 지금 굶주리고 얻어맞은 몸이 되어, 느닷없이 나타나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트럭에 앉아 있었다. 갈림길이 나와도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것은 그가 아니었고, 덜컹거리며 달리는 낡은 트럭이 자신의 생을 결정짓는 것을 그는 다만 무력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헤어날 길이 없다.' 무감각하게 그는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망한 거고, 내일은 또 나를 기다리는 일이 뭔지도 모르는 채 낯선 방에서 깨어나겠지. (355p)



소설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제자리걸음‘ 혹은 ’무기력‘ 이 어울릴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찾으려 이리미아시에게 돈을 주었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허황된 희망을 붙잡고 미친듯이 춤을 춰봐도 다음 날 느껴지는 건 무기력뿐이다.

자신의 의지 없이 움직였기 때문일까?


작품은 실제 탱고의 움직임처럼 1부 1-6장, 2부는 그 역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무한한 반복 속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 상황과 감정을 담은 춤이야말로 진정한 사탄탱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