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와 혜시는 똑같이 '동'을 지향한다. 혜시는 "만물을 널리 사랑하라"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천지는 한 몸"이라는 점을 논증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논증 과정을 관통하고 있는 철학적 입장은 상대주의였다. 장자 역시 특유의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논의를 전개하여 개개의 존재에게 고유한 존재 근거를 확보해 줌으로써 전체적인 무차별 무분별의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사람간에는 방법론상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혜시는 그러한 결론을 논리적으로 논증하려고 하였음에 비하여, 장자는 오히려 논리를 포함한 인간의 인식 일반이 가지는 폐쇄성을 폭로하는 방식을 통하여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따라서 혜시와 장자 사이에 보이는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방법론상의 차이에 그치지 않고 양자간의 근본적인 철학적 입장의 차이를 함축한다고 보아야 한다.
(중략)
사실 하나의 세계관의 문제로 처리한다면 몰라도, '논리'라는 원칙을 끝까지 고수한다면 "만물을 사랑하라, 천지는 한 몸이다"는 혜시의 마지막 결론에는 그 논리적인 난점이 존재한다. 그가 여기에 도달하기 위하여 쏟았던 노리적인 정열에도 불구하고 이 결론은 논리적으로 지지받지 못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천지는 한 몸이다"는 주장이 혜시의 선행하는 작업들을 통하여 논리적으로 정당화된다고 하더라도 "만물을 사랑하라"는 주장이 그 전제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되지는 않는다. 장자는 아마도 만물의 평등성을 논리적으로 지지해 보려는 혜시의 이러한 작업이 갖게 되는 한계를 꿰뚫고 있었던 듯하다. 이것은 뒤에서 언급할 장자의 언어관과 결부된 문제이기도 한데, 아무튼 이렇게 본다면 혜시와 장자는 결론에서는 같지만 방법에서는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가 아니라 '동'의 입장에 선다는 점에서는 둘은 같다. 그러나 혜시는 그것을 논리적으로 지지하려고 했지만 장자는 오히려 논리의 한계를 폭로함으로써 그런 결론으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다르다.
- <논쟁으로 보는 중국 철학> '명변' 논쟁을 통해 본 제자의 사상적 갈래 중
P. 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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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라는 책에서 보면 혜시는 참으로 미련한 존재다. 쓸모도 없는 논리를 통해 무엇을 증명하려고 하는지? 전국시대 중기, 난세와 혼란을 몸소 겪고 그러한 환경에 진저리가 났을 장자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혔을 것이다. 그럼에도 혜시는 모든 사람들을 같게 보고 만물을 사랑하라는 논리적 가르침을 전한다. 과연 장자가 자신의 벗이자 말을 나누는 동무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있었을까?
혜시는 위나라의 재상으로 활약한 인믈이다. 그럼에도 쫓겨나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 아마도 장자를 깊이 이해하고 따르지만, 자기 나름대로는 이해할 수가 없던 인간상이었으리라 추측된다. 물론 이는 장자에 쓰여진 책이 장자와 그 후학들에게 영향을 받아 혜시가 장자와 논쟁을 할 때면 늘 한방 얻어 맞는 역할로 나오긴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서로를 진정으로 공감하고 의견을 나눈 진정한 벗이었기에 농담 삼아 장자가 세상에 남긴 것이 아닐까.
장자 스스로도 세상에 만든 규율을 회피하려고는 하지만, 그것을 무작정 거부한 것은 아니다. 그 나름대로 모두의 쓸모가 있을 뿐이지 않는가. 누구의 방법이 더 옳은가? 이런 물음을 따지는 것은 장자의 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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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장자와 혜시는 연인 아니었을까? 모든 것을 꿰뚫는 혜시의 우뚝 솟은 논리 모든 것을 허용하는 장자의 넓고 깊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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