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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생거 사원」은 제인 오스틴이 죽은 후에 출판됐다고 한다. 다만 죽기 직전까지 집필에 몰두했던 역작은 아니었고, 작가 생활의 극 초기에 완성된 장편 소설인지라 강한 애착이 있었지만 끝내 개작을 거쳐 생전에 빛을 본 다른 작품과는 달리 고이 모셔져 있던 모양이다. 그녀의 작가로서의 역량이 무르익기 이전의 작품이라 그럴까? 「노생거 사원」은 좋게 말하면 내용과 형식이 하나같이 풋풋하고, 안 좋게 말하면 등장인물들의 혈기가 넘쳐서 서사와 구성미가 엉성해졌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재밌게 읽었다. 거장의 설익은 시절을 보는 것도 고전을 읽을 때 맛볼 수 있는 별미가 아니던가.

제인 오스틴은 원래도 전지적 작가 시점을 사용해서 이야기를 재기 넘치고 발랄하게 들려주는 작가지만, 「노생거 사원」은 특히나 오스틴 개인의 주장이나 취향이 잘 드러난다. 가끔은 무언가 교훈을 주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예를 들어 오스틴은 자신이 소설을 읽고 쓴다는 것에 일찍이 자부심을 느낀 모양이다. 그래서 소설에 대한 예찬이 장광설처럼 나오는 대목도 있다. "한마디로 그냥 소설 작품이라는 것인데, 실은 여기서야말로 정신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 발휘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지식, 그 다양한 면모에 대한 가장 기막힌 묘사, 생생하게 넘쳐흐르는 위트와 유머가 선택된 최상의 언어로 세상에 전달되는 것이다." 오스틴이 아니라 스탕달이 한 말이기는 하지만 소설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사람은 살면서 자신과 세상을 곧이곧대로 돌아볼 여유가 없고, 결국 스스로와 세상을 이해하지 못해 방황에 빠지고는 한다. 그럴 때 손에 쥔 소설은 의외로 모든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길잡이가 되고는 해준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해보았기에 오스틴의 소설 찬가에 적극 동감한다.

고백컨대 사실 「노생거 사원」은 서사로만 치면 그다지 신선하지는 않은 작품이었다. 이미 읽은 오스틴의 작품들에서 맛볼 것은 다 맛보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노생거 사원」의 줄거리는 제인 오스틴식 소설의 스테레오타입이었다. (물론 미발표 처녀작이었음을 감안하면 오히려 오스틴의 모든 작품의 신선함의 근원이 이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남자들은 자기네 자존심에는 민감하지만 타인의 자존심에는 지극히 둔감하고, 여자들은 모든 것을 궁금해하다가 기껏 알게 되면 후회에 빠진다. 그러는 와중에 당차고 사려 깊은 주인공은 사회 초년생으로서 남녀상열지사와 그 부산물로서 나오는 씁쓸한 경험들을 겪어내고 끝내 원하는 사랑을 쟁취한다.' 그냥 오스틴의 소설이 등장인물들로부터 멀찍이서 감정 없이 읽으면 다 이런 식이 아닌가?

그럼에도 오스틴의 다른 작품들이 명작으로 치부되는 것은 그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복선이나 전체적인 구조가 탄탄하고, 재치와 나름의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생거 사원」은 그런 면에서 칭찬을 하기에는 조금 어렵다. 굳이 따지면 캐서린이 남들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같으리라는 미숙한 판단, 그리고 남들을 첫인상으로 재단하여 생긴 편견 때문에 고생을 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런 구조의 이야기는 「오만과 편견」에서 후대의 어느 작품도 뛰어넘기 어려울 정도로 잘 선보인 바 있다. 「노생거 사원」은 그에 반해 서사가 빈약한 것은 사실이다. 헨리 틸니가 나름 사려 깊은 남성인 것은 맞지만 캐서린이 금방 반해버릴만한 이유는 독자로서 딱히 느껴지지 않는다. 캐서린만의 오만과 편견이 캐서린의 발목을 잡기는 하지만, 사실 일을 틀어지게 만든 것은 존 소프와 틸니 장군의 허영이지 캐서린의 경거망동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결말은 소위 '소드마스터 야마토'식 결말이었다. 엘리너를 캐서린과 교환하듯이 소모해서 해피 엔딩을 만든 것은 너무 작위적이었다.

다만 「노생거 사원」을 읽는 동안 큰 재미를 느꼈다는 사실만은 부인하지 않겠다. 우선 서사의 구성에는 다소 흠결이 있지만, 「노생거 사원」은 적어도 인간사의 규칙을 보여주는 역할은 충실하게 해냈다. 예를 들어 나는 이 문장이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친해지고 싶다면 늘 무식해야 한다. 아는 것이 많다 보면 남의 허영심을 자극하지 못하므로,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늘 이를 피해야 할 것이다." 호감을 쌓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타인의 허영심을 채워준다는 것이다. 물론 허영심을 넘어서는 진실한 관계도 더러 있지만 세상사에서 피상적으로 맺는 관계는 다 이런 식이 아닌가. 이 문장은 「노생거 사원」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자 인간사를 관통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인 오스틴답게 이 문장과 비슷한 결의 문장들이 여럿 나온다. 새롭지는 않더라도 관계에 대해 통찰할 기회를 주는 좋은 작품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캐서린이 허영에서 벗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일도 재밌었다. 캐서린은 고딕 소설에 심취해 자신을 은연중에 그 속의 주인공처럼 여긴다. 자신은 만인의 심리를 이해하고 있으며, 자신 앞에 놓인 길은 자신만이 풀 수 있는 특별한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주인공스러운 생각은 소설에서조차 쉽게 무너진다. 물론 캐서린만큼 사려 깊은 인물은 「노생거 사원」에서 드물며, 캐서린은 여러 사람들에게 실제로 특별한 사람이다. 하지만 캐서린이 여러 사람들에게 그렇듯, 모두가 각자의 관계 속에서 특별함을 지닌다. 캐서린은 특별하므로 평범하다. 어떻게 보면 한창 세상을 달콤하게 누릴만한 때에, 마치 아이에게 산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려주는 무자비한 부모처럼 오스틴은 캐서린에게 가혹한 맛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고, 이걸 알아야만 캐서린은 더 원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됐다.

「노생거 사원」은 비유하자면 장인이 만든 섬세한 장식이 달린 거울은 아니었지만, 열의를 가지고 만든 풋풋한 거울임은 느껴졌다. 소위 말하는 명작 반열에 들기는 어려울지라도 인간사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소설로서의 본분은 다한 셈이다. 다만 제인 오스틴이 다른 작품들에서 보여준 역량들이 너무도 뛰어났기에 「노생거 사원」도 생전에 개작이 되어 새 생명을 얻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어쩔 수 없는 문제지만... 여하튼 불세출의 이야기꾼의 미숙하지만 활기찬 작품으로 이 소설을 기억할 것 같다. 타임머신이 개발된다면 직접 그녀의 육성으로 세상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해본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우돌포의 비밀」이라는 책이 정말 많이 인용되던데, 주석으로 찔끔 소개되는 내용만 보아도 정말 재밌어 보인다. 현재는 원서만 유통되고 있는 듯한데 언젠가 번역이 되려나? 여하튼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