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viewimage.php?no=24b0d769e1d32ca73ded84fa11d028310ef2ab22591d9bdbf8feafbf5b59a2e97c0657cdc33a8d63e5c69ac8e588fe4ddeb785dc594c370b1810e78bd3ca3e526c9130186bc6dcd1013fb93417bb


작고 누추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고래의 주인공은 춘희다. 하지만 대부분의 페이지는 금복의 일생을 설명하는 것에 할애한다. 또한 춘희보다는 금복의 서사에서 작가 천명관의 역량이 잘 드러나는 것 같다. 그런 금복을 꿰뚫는 문장이 바로 위의 저 문장이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다. 엄마는 없고, 아버지는 금복에게 욕정을 품는 자신에게 자책감을 느끼며 지냈기 때문이다. 당시는 연약한 여자아이의 몸으로 홀로 살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시대가 아니었다. (아마 일제강점기) 그녀는 자신의 몸을 팔며 살아간다.

그녀는 차츰 사업의 길에 빠져들며 대성하기 시작한다. 또 한편으로는, 어느날 바다에서 고래를 만나고는, '거대한 것' '강한 것'에 대한 열망을 키워간다. 그는 자신을 거두어줬던 생선장수를 버리고 몸집이 장대한 걱정이란 사내에게로 간다. 그가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되자, 칼자국이란 건달에게 빠진다. 금복은 어쩌다가 두 사람을 죽이게 되고, 평대란 곳에 눌러붙으며 국밥집, 카페, 벽돌공장, 영화관 등으로 사업을 번성시킨다.

어느새 그녀는 강함을 동경하는 것을 뛰어넘어, 스스로 강함이 되었다. 남자가 된 것이다. 그때부터 서술자는 그녀를 그라고 부른다.

금복은 매혹적인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스스로 여성성을 버리고 남자가 된다. 반대로 춘희는 태어났을 때부터 너무 거대하고 여성성이 희박해서 외려 자신의 여성을 지킨다. 이 구도가 제법 아이러니하다.

힘있는 서사, 기존의 소설에 빚진게 없다, 란 평가들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환상과 현실의 경계 속에서 지나치게 환상 쪽에 함몰되었다는 임철우의 분석에도 동의한다.

거대함을 갈망하다 못해 스스로 거대함이 되고마는 금복의 모습이 재밌게 느껴졌다. 작품의 주인공인 춘희에 대해서는 조금 아쉽다. 여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인물상을 만들어냈지만, 그것을 잘 다루지는 못한 듯 하다. 춘희, 벽돌, 반편이. 셋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야기 상에서는 어딘가 따로논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참신하고 재밌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