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카운트다운을 보던 게 엊그제 일 같았는데 어느덧 한 해의 반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이번달이 2026년 상반기의 끝인 만큼 최대한 많은 책을 읽어보려고 했지만, 모처럼 오래 휴가도 다녀오고 4년만에 개막한 월드컵 경기 관람에 푹빠져 딱 저번달 만큼만 책을 읽었다. 그래도 즉흥적으로 책을 골라 읽었던 저번달과 달리 오래 전부터 읽어보려 했던 책들을 싹 읽어봤고, 다들 훌륭한 작품이어서 보람찬 독서를 했던 것 같다. 앞으로 남은 반년 동안 더 많은 책을 읽어볼 것을 다짐하며 지난 한달 간 읽었던 책들을 정리해보겠다.

1. 죽은 혼 (Мёртвые души)

과거에는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던 우크라이나 폴타바 태생의 소설가, 극작가이자 러시아 문학을 넘어서 세계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대문호 니콜라이 고골(Николай Гоголь, 1809 - 1852)의 역작으로 꼽히는 장편소설 죽은 혼을 읽어봤다. 내가 고골을 처음으로 접한 작품은 페테르부르크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묶여서 출간된 바가 잇었던 단편소설집이었다. 단순히 근대 러시아 문학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는 호기심에서 그 책을 찾아 읽었었지만, 읽어보니 내가 그간 읽었던 소설책 중에서도 가장 매혹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어 감탄한 채 책을 덮었다. 그래서 고골이라는 작가에 대한 애착도 자연스레 샘솟아 올라서 그의 다른 대표작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책부터 읽어볼까 고민을 하다가 이 책이 아무래도 고골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것도 있고, 올해 연초에 읽었던 표도르 도스토옙스키(Фёдор Достоевский, 1821 - 1881)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Братья Карамазовы)에서 죽은 혼이 인용되는 대목이 있다보니 이게 무슨 내용의 책인지 궁금증까지 더해져서, 이번 기회에 이 책을 구해서 읽어봤다.

이 책은 작가가 생전에 출간하여 당대 사람들의 격찬을 받았던 1권과 말년에 작가가 슬럼프에 빠져서 집필 과정이 지지부진해진 끝에 결국 미완으로 남은 2권으로 이뤄져 있다. 1권은 파벨 치치코프라는 전직 공무원이 러시아의 한 지방도시인 N시의 지주들과 안면을 트면서 명부상에는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죽은 농노들을 매입하려고 분투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상하게도 살아 있는 농노가 아니라 왜 죽은 농노를 거래하려는지 내막을 살펴보면 허술한 구석이 있던 제정 러시아의 행정 시스템과 연관이 있다. 제정 러시아에서는 7-10년 정도 간격을 두고 인구조사를 했는데, 그 사이에 명부에서 등록된 농노가 죽게 되면 신규 조사가 있기까지 살아있는 농노로 간주되어 인두세 징세 대상에 해당되서 지주에게 적잖은 부담이 되었다. 주인공은 이 점을 파고들어 과세 부담을 줄여준다는 명목으로 N시의 지주들로부터 명부에 등록된 죽은 농노들을 양도 받고, 이를 바탕으로 거액의 담보 대출을 받으려고 한다. 이처럼 황당하기 짝이 없는 촌극의 주인공인 치치코프는 물론이요 그가 만나러 다니는 여러 지주들의 천태만상을 보여주며 고골은 당대 러시아 제국의 사회상을 통렬히 풍자한다. 표트르 대제의 치세를 거치며 러시아는 급격히 서구화되는데, 이런 흐름을 타서 서유럽 문화라면 눈이 뒤집힌 채 맹종하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낭비하고 소비하는데만 매몰된 당대 상류층을 작가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또, 그렇게 들여온 서유럽 문화도 일견 화려해보이는 부분만 취해서 얄팍하게만 소비하는 그네들의 속물적인 면모도 고스란히 담아낸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화두로 가장 많이 오르는 주제는 바로 예나 지금이나 러시아 공직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이다. 서구화 이후 도입된 러시아의 관료제는 그럴싸 해보이는 외양을 갖췄지만 실제로는 수뇌부부터 일선 공무원까지 뇌물을 수수하는 도덕적 해이가 기저에 자리하고 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러시아의 공직사회를 작가가 어찌나 날카로우면서도 현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조롱하는지 가히 예술적이라 할 만하다. 분명 나는 근대 러시아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고 원문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기지 못하는 번역문으로 이 책을 읽었는데도 문장속에 스며든 유머에 꽤 여러번 피식대면서 읽었다.

1권이 러시아 사회에 자리잡은 비속성을 폭로하는데 주력한다면 2권은 이렇게 비속하기 짝이 없는 러시아의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고민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상술하였듯이 급격한 서구화 이후 러시아에는 사치와 소비에만 치주하고 속물적인 분위기가 사회 도처에 자리잡지만 2권에서 작가는 러시아 시골의 목가적인 풍경과 오롯이 노동을 통해 결실을 거두는 근면한 농노와 지주를 보여주며 사회의 부조리를 극복해보려는 시도를 조명한다. 2권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여러모로 죽은 혼이라는 제목이 가진 중의성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원제에 있는 러시아어 души(dushi)는 영혼을 뜻하기도 한편으로는 제정 러시아 때 농노를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그래서 본작은 죽은 농노를 거래하러 다니는 치치코프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물욕과 허영에 사로잡혀서 죽어버린 거나 다름없는 치치코프와 지주들의 영혼을 담아낸 이야기이기도 하다. 교묘한 제목의 중의성을 활용이라도 하듯 2권에서는 치치코프가 죽은 농노에 연연해하기 보다는 혼이 죽지 않도록 노력하는 서사를 담아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정말 아쉽게도 말년에 슬럼프에 빠진 고골이 2권을 미처 끝내지 못한채 실의해 빠져 병사해 버리는 바람에 온전한 이야기가 아니라 편린으로만 2권을 접할 수 밖에 없게 되어 너무나도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한 제 개인적인 감상을 보태자면, 본작이 미완성작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작가의 전작격인 페테르부르크 이야기에서 보였던 작품 세계가 한층 더 스케일이 커지고 깊이감이 더해졌고, 번역을 거쳤음에도 작가의 현란한 문장에 푹빠져 들며 읽었던 것 같다. 작가가 작품관이 집대성된 작품을 꼽을 때, 도스토옙스키에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있다면 고골에게는 죽은 혼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책은 걸작으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듯 하다. 여러모로 이 책을 통해 고골을 향한 애착을 더 키우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모조리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읽다보면 피로감이 들 정도로 너무 자세한 풍경 묘사에 문장 호흡도 길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하거나 고골의 입문작으로 꼽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그래도 고골의 단편집을 읽고 마음에 들었거나 러시아 문학을 깊게 향유하고 싶다면 이 책의 일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2. 야만인을 기다리며 (Waiting for the Barbarians)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태생의 소설가이자,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얻은 이후에도  3-4년 주기로 소설을 출간하며 고령인 현재까지 활발히 집필에 몰두하는 작가인 J. M. 쿳시(J. M. Coetzee, 1940 - )의 초기 대표작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영어 원서로 읽어봤다. 내가 쿳시를 처음으로 접한 작품은 그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추락(Disgrace)으로 재작년에 원서로 읽어봤었다. 절제된 어휘를 구사하면서도 리듬감 있고 묵직한 문장을 구사하는데다 서사까지 흥미진진했던 작품이었던터라 쿳시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작년에는 작가에게 첫번째 부커상을 안겨준 작품인 마이클 K의 삶과 시대(Life & Times of Michael K)를 읽어봤더니 추락보다는 이야기가 조금 지루했지만 작품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되어서 쿳시라는 작가가 내 취향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다른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책과 철의 시대(Age of Iron)을 작년에 구매해뒀지만 다른 책을 읽느라 꽤 오랫동안 책장에 꽂아뒀다. 그래도 내가 나름 쿳시를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것 치고 작가의 책을 많이 안 읽어본 게 내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는데, 그 짐을 좀 덜고자 두 책 중에 상대적으로 더 짧은 이 책을 이번 기회에 한 번 읽어봤다.

이 책은 한 가상의 제국의 국경에 자리한 변방 마을을 30년간 다스리고 있던 치안판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가 관할하던 마을은 옥살이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벌금 부과나 강제노역 정도로만 치안이 유지될 정도로 평안한 곳이었다. 그러나 국경 근처에서 야만인들이 군세를 모아서 제국을 침략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제국 수도에서 악명높은 보안청 제3국 소속 경관들이 주인공의 마을을 방문하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들은 야만인의 침략을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마을 근처에서 유랑생활을 하는 유목민이나 어획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부족민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가두고, 이내 이들에게 야만인의 동향을 파악하겠다며 끔찍한 고문을 가한다. 치안판사는 본인의 임지에서 비참한 광경을 목도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한 채 상황을 외면하기만 한다. 보안청 제3국 인원이 잔혹하기 그지 없는 취조를 마치고 수도로 복귀한 후 주인공은 마을 안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눈이 멀고 양 발목이 부러져 제대로 걷지 못한 채 구걸을 하고 있던 유목민 소녀에게 연민 내지는 욕정을 느끼며 그녀를 거두게 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간다. 작중 주인공이 속한 국가의 체제가 직접적으로 제국으로 명시되어 있는데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이 책에는 문명화라는 구실로 자기보다 약한 민족을 야만인으로 간주하여 정복하고 착취를 자행했던 제국주의를 향한 비판이 담겨 있다. 또 현실의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거느린 서구 국가들이 휘두르는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빈약한 논리에 기반한 사상이었다는 걸 반영하듯이, 작품 내에서 제국의 적으로 간주하는 야만인을 규정하는 기준도 상당히 모호하고 심지어는 야만인이 실존하는지 조차 상당히 불투명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경 마을에서 30년간 치안판사로 봉직한 주인공조차도 제국을 위협하는 야만인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내내 강하게 불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만인에 대한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가서 제국 도처에 공포감을 심어주었고, 보안청 제3국도 공포를 바탕으로 아무런 제재도 없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다. 공공의 적을 규정하여 공안 정국을 조성하고, 여기서 나오는 공포로 영속해나가는 국가의 모습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본작은 비단 제국주의 뿐만 아니라 타 국가와의 전쟁을 통해 권력자들의 공고히 해왔던 현실의 권위주의 국가를 향해서도 우화적이면서도 직설적인 비판을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주인공인 치안판사가 처한 독특한 상황이다. 본작 주인공의 면면을 찬찬히 뜯어 보면, 쿳시가 뒷날 출간하는 마이클 K의 삶과 시대의 주인공 마이클 K와 추락의 주인공 데이비드 루리와 비교했을 때 여러모로 복합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 마이클 K는 실체가 불분명한 국가의 폭력에 철저히 희생당하는 피해자의 입장에 서있는 인물이고, 데이비드 루리는 한 때 명백히 가해자의 입장에 서있었지만 예기치 않는 불운으로 인해 피해자의 입장으로 전락한 인물이다. 그러나 본작에 등장하는 치안판사는 일방적인 가해자라고 보기도 어렵고 피해자로 보기도 어려운 모순적인 입장에 놓여 있다. 그는 분명 제국에 봉직하는 인물이었지만 제국 도처를 유령처럼 떠도는 야만인의 대대적인 침략에 관한 소문에는 뜬구름 잡는 소리로 치부하였다. 하지만 전술하였듯이 주인공은 침략 전쟁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국경 근처의 부족민에게 잔학행위를 일삼는 보안청 제3국에게 변변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상황을 회피하려고만 한다. 주인공이 지닌 양가적인 성격은 공적인 위치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개인적인 품성에서도 엿보여진다. 그는 제국이 야만인을 대하는 방식에 회의감을 품고 고문당하는 부족민들에게 연민을 품으면서도, 내심 이들이 나중에 마을로 몰려와 구걸이나 더 안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이들을 은근 얕잡아 본다. 또한 그는 직무에는 나름 열심히 임하는 편이지만, 고령의 나이임에도 성욕이 왕성해 기회가 되면 성 매수를 하는 등 사생활이 난잡하다. 주인공의 모순적인 면모는 제3국이 마을을 휩쓸고 간 뒤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며 마을에서 구걸하는 유목민 소녀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고문의 피해자인 소녀의 처지를 동정하며 그녀를 깨끗이 씻겨주고 거두어 부엌에 일자리를 얻어주지만, 몸을 씻겨준다면서 그녀를 알몸으로 둔 채 기름을 발라주면서 더듬기도 하는 행적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본인도 소녀에게 품은 감정이 동정심인지 욕정인지 헷갈려한다. 주인공이 지닌 복합적인 성격에는 아무래도 작가 본인의 그림자가 조금 투영되어 있는 것 같다. 작가의 조국이었던 남아공에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던 악명 높은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시행되는 데는 남아공 백인 중에서도 주류였던 네덜란드계 백인인 아프리카너들의 영향이 있었다. 쿳시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하에서는 특권층이라고 볼 수 있던 아프리카너였었지만 아파르트헤이트에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작품을 통해 우회적으로 비판하였다. 다만 작가 본인이 넬슨 만델라나 브람 피스헤르 같이 아파르트헤이트에 행동으로 투쟁하지는 못하였고 반쯤은 망명 작가의 길을 걷기도 하였다. 여러모로 작품의 주인공에서 작가 본인의 고뇌와 부끄러움이 묻어 나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내 개인적인 감상을 보태자면, 본작에도 쿳시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어서 만족스럽게 읽었다. 간단하면서도 선 굵고 운율있는 문장 덕분에 작품 내 분위기가 고스란히 제 머리 속에 구현되는 것 같아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서사도 훨씬 긴장감 있게 전개되서 작년에 읽었던 마이클 K의 삶과 시대 보다 훨씬 더 재밌게 읽었다. 물론 쿳시의 작품들이 그렇듯이 잔혹하고 폭력적인 소재를 주로 다루고 스토리 전개도 충격적인 편이다 보니 이 책을 선뜻 추천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영문학 거장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인 만큼 작품의 완성도가 훌륭하고 분량도 짧은 편이라 충분히 도전해볼만 하다. 작가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추락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어 추락을 인상깊게 읽은 독자가 다음 작품으로 이 책을 골라도 좋고, 반대로 이 책으로 쿳시의 작품을 입문한 다음에 추락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3. 혁명시대의 연애 (革命时期的爱情)

중국 베이징 태생의 소설가이자 엄혹한 전체주의 하의 중국 체제에서 반항아이면서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불리며 현대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가 왕샤오보(王小波, 1952 - 1997)의 대표소설선집인 혁명시대의 연애를 읽어봤다. 왕샤오보는 중국을 넘어서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서 그의 작품은 여러 언어로 번역된 바가 있었다. 다만 한국에서는 중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제법 생소한 작가의 책을 찾아 읽어보게 된 데에는 사소하면서도 특이한 계기가 있었다. 해외에서 체류하고 있는 저는 자유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사러가는 건 아니더라도 대형서점에 들러 책 구경을 하는 걸 좋아한다. 그렇게 매대에 진열된 서적을 훑어보다가 제 눈길을 사로잡은 책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왕샤오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중편소설 황금시대(黄金时代)의 영역본이었다. 펭귄 모던 클래식 시리즈 중 하나로 수록된 그 책의 표지에는 시골 논밭을 배경으로 예쁘장한 소녀가 보스턴 백을 든 채로 서있는 모습이 사회주의 리얼리즘 회화풍으로 그려져 있었다. 책은 분명 내용으로 판단을 하는 게 옳겠지만 화사한 표지를 보니 한 번 그 책이 무슨 내용의 책인지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휴가 차 한국에 잠시 귀국했을 때 여느 한가할 때와 마찬가지로 책 구경을 하러 집에서 중고서점에 들렀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도 내 머릿속에 알음알음 남아있던 황금시대가 국역본으로 수록된 이 책을 중고서점에서 발견하였다. 필연같은 우연이라는 느낌이 들어 이 책을 냉큼 사와서 이번 기회에 읽어봤다.

먼저 이 책에 수록된 중편소설인 황금시대는 197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중국에서 벽지로 여겨졌던 윈난성 생산대대에서 목축작업에 배정되어 고되게 일하고 있던 청년인 왕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그는 일이 너무 고된 나머지 허리가 너무 아파서 진통주사를 맞고자 지역 보건소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거기서 공의로 배정된 어여쁜 여의사인 천친양으로부터 뜬금없는 청을 하나 받는다. 자기는 바람을 일삼는 문란한 여자가 아닌데도 세간에는 그렇게 소문이 났는데 제발 이게 아니라고 지역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해명을 해달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왕얼은 어차피 그렇게 소문이 나버린 이상 동네 사람들에게는 쭉 문란한 여성으로 각인될 터이니 차라리 문란한 여성이라고 인정을 해버리라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는다. 그렇게 천칭양에게 짖궂게 굴었던 왕얼은 다른 한편으로 육체적으로 황금시대에 이른 21살의 육체에서 끓어오르는 성욕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래서 안면을 튼 천칭양에게 친구로서 영원한 우정을 이어나가고 싶다고 대뜸 천명하고는 우정의 이름으로 성애를 나눠보는 게 어떻냐는 발칙한 제안을 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본작은 지독하도록 성애에 천착한 작품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지금보다도 훨씬 보수적이고 경직된 90년대 중화권에서 어떻게 이 책이 출간될 수 있었는지 놀라울 정도다. 다소 발칙하고 외설적인 주제로 서사가 전개되는 반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문화대혁명이 한창인 70년대 초여서 분위기는 상당히 경직되면서 누구나 사상범으로 몰려 자아비판을 강요받거나 손해를 입고, 심하게는 목숨을 잃을 정도로 살벌한 편이었다. 주인공 일행 또한 염문이 났단 이유만으로 규탄대회에 끌려가 자아비판을 하고 끝도 없이 계속 반성문 작성을 하게 된다. 또한 어디서 기원한지도 모르겠는 뜬소문과 사회적 낙인으로 한 개인의 평판과 실존이 황당하리만치 쉽게 규정되고 부정되는 사회 부조리도 작품 속에 담겨 있다. 작가는 중국 사회에 반기라도 들듯이 가장 발칙하면서도 사람의 삶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요소인 성애를 내세워 중국은 물론 모든 인간 공동체에 내재된 부조리를 거침없이 조롱한다.

두번째로 이 책에 수록된 장편소설인 혁명시대의 연애는 문화대혁명이 벌어지던 당시 중국의 사회상을 보다 더 깊이 탐구하는 작품이다. 본작은 황금시대의 주인공과는 동명이인이면서 비관주의자를 자처하는 남성인 왕얼의 인생사를 다루고 있는 이야기이다. 시간적 배경은 크게 4가지로 나뉘는데, 굴뚝에서 피어나는 매연과 만나 보랏빛을 띈 하늘을 보며 영감을 얻어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꿨던 왕얼의 소년 시절, 문화대혁명이 발발해 봉기한 홍위병들에게 집이 점거당하자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투석기 같은 기발한 무기를 만들어내며 환희에 젖었던 왕얼의 청소년 시절, 국영 두부공장에 취직해 노동자로 일하다가 춘화를 그렸다는 의혹에 휩싸여 후진청년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바람에 지역 공산당 공청단 서기였던 X하이잉이라는 여당원에게 매일 보조교육을 받다가 이상야릇한 감정에 빠져드는 왕얼의 청년 시절, 그리고 대학에 합격하고, 대학 동창과 결혼에 골인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끝에 어엿한 지식인이 되서 중국에 귀국한 왕얼의 중년 시절로 나뉜다. 본작의 화자는 다름아닌 왕얼이지만 시점은 상황에 따라 1인칭 시점이 되기도 하고 3인칭 시점이 되기도 한다. 본작의 플롯도 앞서 말한 네가지 시간대를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연대기적 구성을 따르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간헐적으로 오가는 비선형적인 구성을 띄고 있다. 작품의 화자도 띄엄띄엄 과거를 회상하면서 자신이 느꼈던 바를 가감없이 드러내기도 하고 자신이 겪었던 일을 프로이트, 헤겔 등의 철학가의 사상에 우스꽝스럽게 빗대면서 부조리로 가득찼던 중국의 사회상을 묘사한다. 그래서 본작을 읽으면서 소설이라기 보다는 왕얼이라는 인물의 에세이를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 작가도 문화대혁명에 휩쓸려 세상 풍파를 겪기도 하고 미국으로 유학하여 석사 학위 취득 후 미국과 유럽을 편력하기도 해서 어느 정도 자전적인 성격도 있어서 더욱 그런 인상이 들었다. 이렇듯 본작은 문화대혁명이라는 한 시대에 큰 상흔을 남긴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철저히 개인적인 관점에서만 시대를 조명하고 있다. 내가 이전에 읽었던 소설 중에 비슷한 시기를 다뤘던 작품인 모옌(莫言, 1955 - )의 개구리가 있었는데, 그 책에서는 본작과 반대로 문화대혁명이 벌어지던 시기의 사회상을 군상극을 통해 거시적으로 조망했었다. 이 점을 염두해 두고 두 작품을 비교해보니 꽤나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보태자면, 모옌의 작품을 이후로 처음으로 읽어보는 현대 중문학 작품이었는데, 모옌 만큼의 깊이는 아니었어도 작가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 덕에 꽤나 재밌게 읽었다. 왕샤오보를 중국의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 - 1941)나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 - 1924)에 빗대는 별명도 있어서 너무 과장된 별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저속한 어휘를 사용하면서도 현실을 대담하게 그려내는 점에서 조이스가 연상되었고, 부조리한 현실을 예리하게 통찰해 낸다는 점에서 카프카가 연상되어서 제법 어울리는 별명인 것 같았다. 그래도 왕샤오보의 작품이 성애가 핵심적인 소재로 등장하고, 공산주의 체제에서 겪는 부조리를 개인적인 시선에서 다루는데다 에세이가 연상되는 플롯을 갖췄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왕샤오보는 조이스나 카프카 보다는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 - 2023)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쿤데라 작품을 재밌게 읽으신 사람이 있다면 이 책도 기회가 되면 한 번 정도 읽어보는 것을 권장한다.

4. 작별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광주 태생의 소설가, 시인이자 2024년에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은 작가 한강(1970 - )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어봤다. 내가 처음으로 접한 한강의 작품은 소년이 온다였다.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참극과 광주 시민들이 간직하고 있는 상흔을 스산하면서도 아름다움 필치로 풀어낸 작품이어서 제 뇌리에 강렬히 남았고, 자연스레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두번째로 읽어본 그녀의 작품인 채식주의자는 폭력에 관한 섬뜩한 우화를 보는 것 같았고, 그 다음으로 읽었던 희랍어 시간은 조금 난해한 면이 있었지만 앞서 읽어본 두 작품과는 약간 결이 다르게 서정적인 작품이었다. 각자만의 개성이 있었던 소설 3편 모두 제 취향에 잘 맞았던 터라 한강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싶어져 다음 작품을 어떤 걸로 읽어볼까 고민하던 와중에 이 책이 제 눈에 띄었다. 이 책이 소년이 온다와 마찬가지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다뤘다는 점과 최근 본작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는 점도 제 흥미가 동한 요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건 본작에 대한 작가 본인의 자평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 작가는 언론과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어보고자 하는 독자에게 입문작으로 어떤 책을 권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 책을 입문작으로 권했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작가 본인이 이 책을 콕 집어 입문작으로 권했다는 점에서 본작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져서, 이번에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이모를 통해 이 책을 구해서 한 번 읽어봤다.

이 책은 K시에서 벌어졌던 학살을 소재로 소설을 출간한 이후 슬럼프에 빠져 대인관계를 모두 끊어내고 은둔생활을 하는 소설가 경하가 겪는 일을 다루고 있다. 여느 때와 같이 실의에 빠진 채 연명하던 그녀는 2014년 겨울 갑작스레 오랜 친구였던 인선으로부터 신분증을 지참하여 서울의 한 병원으로 와달라는 문자를 받는다. 한때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활발히 활동하다 돌연 그 일을 그만두고 제주도로 낙향하여 노모를 간병하면서 목수일로 전직했다던 친구한테서 돌연 서울의 병원으로 와달라는 문자가 날아들어 무척이나 이상했던 경하는 걱정을 안고 발걸음을 옮긴다. 병원에 찾아가니 인선은 목공 작업을 하던 중 그라인더에 오른쪽 검지와 중지가 절단되는 부상을 입어서 급하게 제주에서 서울까지 올라왔던 것이었다. 거기에다 인선은 그녀의 친구에게 좀 더 이상한 청을 하나 덧붙이는데 사고를 당한 후 경황이 없었던 나머지 집에서 키우는 앵무새에게 밥과 물을 먹이지 못해 아사할 위기에 처했다며 가장 빠른 비행기편으로 제주도에 가서 그녀의 집에 들러달라고 하였다. 상당히 서글서글하고 무리한 요청은 잘 하지 않던 친구에게서 기이한 청을 받은 경하는 당황스러웠지만 친구의 말대로 그날 저녁 제주도로 향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제주도에 도착하자 마자 폭설로 온 섬이 눈밭이 된 상황에서 인선은 힘겹게 친구의 집으로 가는 중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본작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곳에 자리한 비극인 제주 4.3 사건을 관찰자의 1인칭 시점에서 간접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 파헤치는 작품이다. 군상극의 형태를 띈 채 역사의 비극을 보다 직접적으로 다뤘던 작가의 전작 소년이 온다와는 대조를 이룬다. 본작의 내러티브도 모호하면서도 은유적인 편입니다. 경하가 제주도에 있는 인선의 집으로 향하면서 펑펑 내리는 눈과 쓸쓸하게 부는 바람, 사람이 팔처럼 가지가 뻗어 있고 사람의 허리처럼 굽어 있는 나무에 관한 묘사가 여러번 나오는데, 경하와 인선의 대화를 통해 회상되는 1948년의 제주에서 참극이 벌어졌던 당시의 자연풍광과 상황과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책을 읽어가다보면 마치 제주도 땅에 지박령이라도 깃든 것 마냥 그날의 제주 사람들의 원망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 외에도 4.3 사건 유족들이 제주어를 구사하면서 증언하는 내용과 그날의 비극을 보도한 언론 기사 내용도 작중 드문드문 등장하기도 해서 엄연한 현실이었지만 비현실적인 것 같은 4.3 사건의 비극을 다각적으로 조망한다. 또 경하가 인선의 집에 들어가면서 겪는 일도 현실이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을만한 현상으로 가득하다 보니 비현실적이라고 할 만치 끔찍했던 4.3 사건의 참상이 감각적으로 전달되는 듯 했다. 언젠가 이 책에 지닌 환상성과 지역색이 뚜렷한 한 지방에서 벌어졌던 비극에 천착하여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점에서 후안 룰포(Juan Rulfo, 1917 - 1986)의 페드로 파라모(Pedro Páramo)가 연상된다는 감상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나도 그 책을 읽어본 입장에서 꽤나 일리가 있는 의견인 것 같다.

이 책이 작가가 발표한 장편소설 중 가장 최근작이어서 그런지 본작에서는 작가가 그간 다른 대표작에서 보였던 특징이 한 데 모여 있다. 끔찍한 역사적 비극을 주요 소재로 하고 작품 분위기 내에서 알음알음 마술적 사실주의(Magic realism)적인 색채가 돋보인다는 점에서는 역시 소년이 온다의 영향이 보였다. 작중 경하가 간난신고 끝에 선보인 작품이 K시에서 벌어진 학살을 다룬 소설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자전적인 성격도 있는 편이다. 또한 섬뜩하기 짝이 없는 경험을 새와 나무를 비롯한 자연에 빗댄다는 점에서 채식주의자의 영향도 꽤나 짙게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깔끔하게 정제된 어휘와 문장으로 서정적이고 생동감 있는 이미지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는 역시 희랍어 시간이 많이 연상됐다. 그간 한강이 구사해 왔던 문학기법들이 이 책에서 화합을 이루면서 이 책은 단순히 역사의 참상을 고발하는 책에 그치지 않고 한 편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써 환히 빛난다. 한강이 작가로서 활동하면서 쌓아왔던 경험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어서 가히 작가의 대표작으로 손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감상을 보태자면, 작품 자체가 훌륭했던 것도 있지만 작품 속에서 일어났던 일이 마냥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가슴 속에 뭉클하게 남은 작품이었다. 사담이지만 아무래도 내 외할머니께서 4.3 사건과 연관성이 있는 여순 사건의 영향으로 이뤄졌던 예비검속으로 양친과 동생을 잃으신 가슴아픈 기억이 있으시다보니, 작중 인선네 가족의 상황과 외할머니의 상황을 겹쳐보며 눈시울을 여러번 붉혔다. 작품 이야기로 돌아가면 상술하였듯이 작가의 문학적 기법이 아름답게 집대성된 작품이기도 하고, 한강 작품에서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인 그로테스크한 묘사와 분위기가 본작에서는 상당히 절제된 편이라서 읽는데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물론 전술한 간접적인 스토리텔링 떄문에 작품이 조금 난해한 감이 없지않아 있긴 하지만 본작이 탄탄한 서사보다는 비극적이었던 그날의 감각을 재현해내든데 치중한 작품인 만큼 감상에 크게 걸림돌이가 되지 않는 편이다. 여러모로 한강 입문작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기에 한강의 작품에 관심이 생긴 독자분들에게 일독을 적극 추천한다.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