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고딩때 어려운 책이나 두꺼운 책은 살면서 한 번도 읽어본 적 없었음

그야 당연하기도 한게, 고리타분한 순문학은 그 나이대 학생에게 있어서 억지로 풀어야 하는 시험문제의 지문에 나오는 것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자극적인 애니나 게임이 한창 재밌을 시기였기 때문

그러다 우연히 지적 허영심을 채우고 싶은 어린 마음에 죄와벌을 샀다가 푹 빠져들게 되었었음

지적 허영심도 만족할만큼 채워졌지만 그보다 더 전율이 일었던 것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발견임

그간 내가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것이며 낡은 것이라고 등한시했던 작품에, 선생님이 알려주지 않는, 애니나 게임에선 나오지 않는, 친구들은 모르는 삶을 꿰뚫는 지혜나 사색의 재료가 이렇게도 많았구나 싶어서 벼락이라도 맞은 듯 상쾌한 충격을 느꼈였음.

아마 내적으로 성숙해진다는 느낌을 죄와벌을 읽으며 처음 체감한 것 같음.

그런 죄와벌은 낡은 것은 작품이 아닌 내 편견이었구나와 같은 반전을, 그리고 내 세상의 지평을 넓혀주는 경험을 선물해줬음.

결국엔 두꺼운 책, 순문학 한 권 채 읽어보지 못했던 내가 그 두꺼운 죄와벌을 전부 읽어버렸다

심지어 그때가 고3때였는데 수능 시험장까지 들고 갔었음

스마트폰을 손에 쥘 시간에 죄와벌을 들었고

힘든 상황에 놓인 친구를 위로할 때 죄와벌에서 본 구절을 인용하여 위로를 했고

그전까지는 생각없이 단순 카타르시스를 느끼려 보던 비질란테라는 웹툰을 보다 깊고 철학적인 의미를 짚으며 사색하면서 보게 되었음

죄와벌은 무지렁이 같았던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하나의 열쇠가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