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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한 시대의 황혼을 목격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세계는 점점 자유에 염증을 내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의 부상, 유럽 정치판을 휩쓰는 중인 포퓰리즘 운동, 결정적으로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까지,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상들을 단지 자유주의의 부작용이나 폐혜 정도로 일축시키기엔 그 변화와 속도가 심상치 않다. 세계는 점점 축소되고 있다. 이제 개방성, 다양성, 보편성 같은 듣기 좋은 개념들로 설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서 우리는 현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주요 이념, 자유주의의 본질과 모순을 직시해야만 한다.

패트릭 J. 드닌의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는 자유주의가 처한 곤경과 모순을 다각도로 파헤친다. 책의 내용을 따라가보면 정치, 경제, 기술, 교육까지 모든 분야에서 자유주의의 실패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선거의 무의미함과 정치의 양극화,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과 계급 갈등, 전방위적으로 나타나는 기술의 지배, 교육의 실패와 공동체의 해체까지, 자유주의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기존의 약속을 배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자유주의의 실패의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유주의의 본질, 그 자체에 내재해있다. 개인을 지배와 압력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명분 하에 자유주의의 선각자들은 개인이 속해 있는 공동체를 파괴하고 해체시켰다. 그 결과 공동체로부터 '해방'된 개인은 이제 자기 앞에 펼쳐진 세상을 오로지 자기 마음대로 헤쳐나갈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 자유란 오직 내면의 욕구 충동에 충실할 자유, 소비를 통해 욕구를 자유롭게 실현할 자유에 지나지 않는다. 공동체로부터 뿌리 뽑힌 개인은 이제 어떠한 규범도 윤리도 갖추지 못한 채 욕망과 유혹이 만연한 세상에 내던져진 것이다.

그 결과 세상은 오직 욕구 충족을 위해 자연은 물론 타인과 공동체를 이용할 생각으로 가득찬 개인들 간의 대립과 투쟁으로 가득차게 되버렸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은 사회 계약의 원인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 계약의 결과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 일어났다. 이 세계에선 개인의 넘쳐흐르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존의 전통과 윤리를 무시해도 될 뿐만 아니라 타인과 자연을 얼마든지 이용하고 착취해도 된다는 사고 방식이 만연해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전쟁상태를 규율하기 위해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개인 간의 갈등을 조율하기 위해 국가는 점점 개인의 삶에 깊숙이 침투하고 감시하기 시작한다. 역설적이게도 개인의 권리가 증대될수록 국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점점 늘어가는 처벌 규정, 골목 마다 설치된 감시 카메라, 개인 간 이해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국가 기관의 권력 증대...개인주의가 퍼져나갈 수록 국가의 역할이 확대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 불신과 이기심이 만연한 사회에서 개인 간의 갈등을 막기 위해선 국가의 역할은 확대 될 수 밖에 없다. 이 기묘한 역설은 우리에게 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는 본질과 모순을 직시하게 만들어 준다. 모두가 자유롭다는 건 곧 모두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드닌은 현대인들에겐 이미 잊혀진지 오래인 서구 고대, 기독교적 가치에 기반한 자유의 관념을 소환한다. 진정한 자유는 내면의 욕구와 충동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고 매달리는 방종과 대비되게, 공동체의 전통과 윤리, 규범을 받아들이고 내면의 충동을 다스려 궁극적으로 욕구와 이기심을 극복하는 극기로서의 자유다. 오늘날 세상에 만연한 방종과 무질서를 극복하기 위해서 소규모의 전통적인 공동체를 되살려 개인의 이기심을 극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욱 파괴적인 결과가 우리에게 찾아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