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북콘 갈까 고민하는 책(공정하지 안타 - 90년생들이 정말 원하는 것) 발췌 목록임... 인상적이어서 가져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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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P 오늘날 90년대 생들은 후대에 촛불세대로 불릴 세대지만 현재 이들만의 요구를 대변하는 세력도 조직도 지도자도 없다. 온라인 세계에서 개인으로만 존재한다. 따라서 이들의 목소리를 이해하는 데 여러 가지 잡음이 발생한다. 보수화, 혐오, 이기주의 등이 바로 이와 같은 잡음 때문에 발생한 오해들이다. 청년세대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자신들의 ‘진짜 목소리’를 대변하는 스피커를 만드는 것이다
54P 기성세대 중에서 진보 진영을 대표한다는 이들이 ‘기득권 엘리트’ 계층으로서 위선을 드러내게 되면, 당연히 20대는 이들이 주장해온 진보적 의제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청년세대는 진보 진영이 집중해야 할 의제는 따로 있는데 집중해야 할 곳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한국 사회의 주요 권력이 일부 엘리트 손에 휘둘리고 있으며 이런 기득권 아래에서는 진보, 보수의 차이가 없다고 여기게 된다.
79p 구조의 문제를 개인이 초인적 노력으로 극복하거나 해결하라고 이야기하는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을 청년들은 이해할 수 없다. 잘못된 구조를 만든 책임자들이 뻔히 현재의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잘못된 구조를 만든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책임져야 한다. 그와 별개로 나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들인 노력 앞에 떳떳하다.’ 이것이 오늘날 청년들의 사고방식이다.
108p 젊은 세대에서 결혼생활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는 건 이들이 갖고 있는 관념과 현실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20대들은 어린 시절부터 남녀는 동등하고 자신의 삶이 가장 중요하다는 가치관 아래에서 자랐다. 이들 중 대부분은 가부장적 질서에 동의하지 않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남성은 부양의무자’이고 ‘여성은 생계보조자’라는 역할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젊은 여성들도 반발하고, 젊은 남성들도 반발한다.
108P-109P 100미터를 10초 안에 돌파해야 다음 경기에 진출할 수 있는 예선전이 있다고 하자. 선수들은 어깨에 잔뜩 짐을 짊어지고 있다. 국가가 할 일은 그 짐을 덜어주고 공정하게 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해지는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지도, 어깨에 짊어진 짐을 덜어주지도 않은 채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 중 더 힘든 사람은 기록과 무관하게 다음 경기에 진출한다’고 정한다면 함께 뛰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이것이 할당제에 대해 청년세대가 기성사회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126~127p 부양책임자라는 남성의 역할에 대한 불만은 데이트 비용에 대한 불만으로도 이어진다. 젊은 남성들이 찌질하게(?) 데이트 비용을 여성들도 똑같이 내야 한다고 시위를 벌이는 것도 그 자체로 이미 탈가부장적 현상이다. 이를 두고 단순히 데이트할 능력도 없는 남자들이 저런다고 조롱하거나, 요즘 젊은 남자들은 좀생이라고 놀릴 일이 아니다. 이는 가부장적 롤모델을 내면화한 기성세대 남성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기 때문이다.
182P-183P 한 주에 80시간, 100시간을 일해야 하는 청년 노동자에게 자유란 없다. 늘 산업재해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일하다 다쳐도 병원 한 번 갈 수 없는 청년 노동자에게 자유란 없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육아휴직을 낼 수 없는 청년 부부에게 자유란 없다. 그런데 독박육아를 강요하는 남성들의 의식수준을 계몽하는 데만 집중하면, 함께 아이를 키워야 할 청년 부부 사이의 갈등만 키우는 일이 된다. 오늘날 불공정한 사회를 유지하는 특권구조에 영향을 주지도 못하고 다수 청년들의 차이만 부각시켜 그 차이로 서로를 갈라놓는 올바름의 정치는, 공정하지 않을 뿐더러 세상을 털끝 하나 바꿀 수도 없다.
248P 무엇보다 일방적인 금기는 침묵을 낳는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발언 자체를 금지하면 오히려 동성애 혐오에 더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줄 뿐이다. 사람들을 침묵하게 만든다고 해서 사회적 편견이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오히려 이런 침묵을 먹고 자란다.
흥미롭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