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전 책이라는 걸 감안해도 역사적 사실관계도 안맞는 것 같고 인과관계에 대한 무리한 자기단정이 있어보이는데 이런건 걸러서 봐야하는게 맞나?
근데 프롬의 이런 비약적 전제가 없으면 논조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고 보이기도 하고
수십년 전 책이라는 걸 감안해도 역사적 사실관계도 안맞는 것 같고 인과관계에 대한 무리한 자기단정이 있어보이는데 이런건 걸러서 봐야하는게 맞나?
근데 프롬의 이런 비약적 전제가 없으면 논조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고 보이기도 하고
일단은 정신분석계열이니
예시를 최소 한두개는 들고와야 대화라도 되지않을까
고귀한 야만인 가설 당연히 전제깔고 있음 고고학적으로 맞지 않음 70년대니까 이해함 농노제 해제 자유를 얻었으나 불안감 유발하여 신경증적인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퍼짐 - 농노제 가장 빠르고 광범위하게 해제된 프랑스는 가톨릭 영국은 국교회가 보편화됨 자유가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단 주 논거가 신경증적 프로테스탄트로 빠진 것이 근거였는데 프로테스탄트가 신경증적
면이 있다는 것이 당대 자유로부터 불안감을 느낀 사람들이 빠져서 그렇다는 건데 결국 순환논법이고 막스베버와 비슷한 면이있는데 막스베버의 사상도 현대에는 많은 비판을 받고 사상의 영향력을 과다하게 본다는 점이 문제임 애초에 당시 유럽 지식인조차도 성경문해력이 낮았고 루터의 만인사제설이나 칼뱅 예정설에 대한 이해도는 극히 낮았을 것임 16세기 사제와 지식인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십계명이 성경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반이 넘었음 이런 사람들이 예정설을 읽고 탐복하여 불안한 마음에 의존하게 됐다는 것도 이상하고 프롬이 프로테스탄트가 신경증이라고 규정한 금욕주의도 중세 가톨릭 사회에서도 많이 발견되는 공통점임
진화에 대해 인간은 고등생물이라 본능은 억누르고 이성을 가지게 됐다는 식의 논조가 있는데 진화에 대해서도 명백히 잘못된 이해를 하고있음 그로인해서 근원적 고립감 등을 얻게되었다는 건데 이또한 근거가 없이 일단 깔고가는 가정임
자유로부터의 도피 말하는거같은데 읽은지 오래되기도 했고 관련된 역사에 지식이 많진 않음. 그치만 너의 문제제기에 역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을 말하자면 1.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신경질적이라는 주장을 그에 빠진 사람들의 불안에만 근거할 때 순환논증이라는 비판이 가능한것인데 강박적 죄책감이나 무력감을 들어 억압적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지 않음? 2. 자유가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설명의 주 논거가 이 부분이 맞음? 나는 마조히즘적 성격에 대한 정신분석이 이걸 뒷받침하는 주요 부분이라고 봤어서 3. 당대 사람들의 낮은 성경문해력이 예정설의 전파와 그런 관련이 있다고 보는게 잘 이해가 안감. 종교개혁 이후 칼뱅주의의 전파 과정에서 널리 퍼진거 아님? 에라스뮈스와 루터 간의 자유의지 논쟁도 유명했는데 왜 그에 대한 이해
도가 극히 낮았을 거라 보는지. 너가 이해도가 낮다 말할 때 그게 정밀한 신학적 지식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거라 낮다 말한거면 그럴 수 있겠지만 주관적으로 어떤 교리를 수용할 때 적극성에 이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아닐텐데. 4. 진화에 대한 부분은 확실히 느슨한 표현임. 맞다 틀리다를 따지기 이전에 내가 알기로 현대 생물학에서는 본능이라는 단어를 매우 드물게 사용하기 때문에 현대 생물학과는 약간 빗겨가 있는 서술임. 하지만 고차원적 인지기능이 발달하게 된게 모든(최소한 외부에서 관찰하기론) 생물체에 공통되는 본능들이 인간에선 덜 직접적으로, 덜 현저하게 나타나게 된 조건이라고 본다면 그게 진화에 대한 틀린 이해인가? 집단적으로 전파되는 문화의 영향력이 큰 부분이고 신중한 진화 연구자라면 이런 느슨한 표현은 안쓰
@ㅇㅇ(183.98) 1. 그 강박적 죄책감이나 무력감에 대한 근거로 드는게 '인간은 본능적으로 존재적 고독을 느껴서'인데 또 그 존재적 고뇌를 느끼는 주 근거로 삼은게 종교개혁과 나치의 사례임 난 이게 순환논증으로 느낀 것이고 2. 자유가 불안감 불러일으킨단 역사적 사례로 든게 종교개혁이고 한 장 전체를 이걸로 설명함
겠지만 최소한 진화생물학을 학부 전공 수준정도 이해하고 있는 내 수준에선 명백히 잘못된 이해라는건 과한 표현으로 보임. 너가 말한 부분 외에 전체적으로 프롬의 논조에 대해서는 물론 현대 기준에서 만족스러울 정도로 엄밀하지 않지만... 거시적 흐름을 서술하는걸 목표로 하는 다른 고전들에서도 종종 목격되는 수준 아닌가?
@ㅇㅇ(183.98) 3. 현대 한국의 개신교도 주류는 칼뱅주의인데 개신교신자들 중에 칼뱅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음 칼뱅주의인지 인지조차 못하고 있음 물론 당시에는 조금 달랐을 수도 있겠지만 16세기 영국 사제와 지식인들로부터 조사했을 때 절반가량이 십계명이 성경 어느구절에 나오는지, 십계명의 전파자가 누구인지도 답을 잘 못했음 이런 사람들이 신학적으로 예정설에 빠저들어
@ㅇㅇ(183.98) 자기불안을 해소하려 들었다는게 납득이 가질 않고 루터와 에라스뮈스의 신학적 논증역시 형이상학적으로 이해할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음 유럽의 기독교 신학은 동아시아 과거제처럼 출세지향적 학문이 아니었음 의외로 신학자 제외 학문적 관심도가 떨어졌음 칼뱅조차도 사람들이 예정설을 이해하지 못하여 탄식하면서 매우 쉬운 수준의 문제를 반복하며 전도함
@ㅇㅇ(183.98) 즉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강박적으로 빠져들었고 예정설을 통해 신학적인 무언가를 바탕으로 내면의 불안함을 타파하려했다기보단 유물론적 접근이 당대에 좀 더 적합해보이고, 칼뱅주의는 이윤을 남기는 것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 교황에 대한 독립을 통해 실리적 목적으로 퍼져나긴 것이지 사람들이 불안함을 타개하기 위해 깊은 신학적 이해를 가지고 퍼져나간게 아님
@ㅇㅇ(183.98) 그리고 중세 길드 상인들이 과연 안정된 존재였는지도 일단 역사적으로 비약이고 이들이 중세 사회 해제 이후 불안감을 느꼈다는 것도 실증적이라기보단 프롬 머릿속에서 나온 사고실험에 의한 결론으로 봐야지
@ㅇㅇ(183.98) 그리고 농노제 해제가 자유를 불러일으켰다면 농노제 해제를 넘어 일찍이 도시화를 겪은 잉글랜드의 해방농노들은 왜 칼뱅주의에 되려 부정적이었는지, 그들은 가톨릭을 고수하려는 성향이 있었고 이들을 프로테스탄트로 만든 것은 엘리자베스가 임의로 바꾼 대타협적인 국교회, 그리고 국교회를 안믿으면 화형시키니까 그런거임 프랑스도 농노제가 일찍이 해소되었으나 농촌사회는
@ㅇㅇ(183.98) 가톨릭을 철저히 고수히려는 성향이 있었고 막스베버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되 가치판단을 달리하여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신경증적으로 본 것인데 애초에 막스베버의 의의는 그렇다쳐도 걸맞지 않은 점이 너무나 많음
@ㅇㅇ(183.98) 느슨한 표현을 떠나서 표현자체가 잘못됨 진화에서 고등생물이라는 표현은 최대한 지양되는 표현이고 설령 그런 표현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을 본능의 억제와 연결지어 표현하는 것은 과한 비약임
@ㅇㅇ(183.98) 사실 다른 고전들에게도 종종 목격되는 수준이기는 한데 많이 언급한 막스베버 등의 경우라고 해도 '19세기 사람이니까 그냥 넘어가자'가 아니라 이건 이러이러해서 공감이 안간다고 말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 70년대 특성을 감안해서 원시공산제를 당연히 전제하는 논조 등은 그런갑다하는데 사실 그 자체도 현대 고고학에는 걸맞지가 않고
@ㅇㅇ(183.98) 문제는 프롬 세계관의 가장 큰 가정 중 하나가 원시공산제(성선설적이고 존재적 삶을 지향하는), 그리고 인간이 끊임없이 존재적 불안을 느낀다는 건데 이 두개를 단정짓거나 너무 무리한 비약을 하며 세계관을 펼쳐나가니 난 좀 거북했던 것임 결국 프롬의 최종논조는 소유냐 존재냐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난 존재적 삶을 지향해야한다는 것은 공감하지만 본능부터 존재적이
@ㅇㅇ(183.98) 고 소유적 양식은 인간이 불안해서 자본주의랑 프로테스탄트적 편집증에 빠져서 그런 것이고 마음먹기에 따라 벗어날 수 있단 식의 단정이 좀 비과학적이라고 느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