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째서 지금껏 사람의 죽음이 엄숙한 것이라고 생각해 온 것일까요. 사람의 죽음을 서비스로 다루는 장례식장의 '광고'가 이상하다고 여겼던 까닭은 무엇입니까.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소식'이라는 단어는 희극 명사인가요. 비극에 '희'를 넣는 사람이라니, 저는 작가의 자격이 없나 봅니다.)을 아버지께 듣고 장례식장에 처음으로 가 보았습니다. 죽음을 연예인의 자살로 접해서인지,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계신 분이어서인지 할머니의 죽음이 놀랍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아, 유독 날카로운 고모의 목소리, 슬픔 없는 상주, 식당에서 대화하며 술 마시는 조문객, 웃고 있는 목사, 사흘 간의 의식, 저는 무엇 때문에 수학 여행을 가지 못한 겁니까. '타산과 체면으로 영위되는 인간 사회의 허위성'이라는 구절이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입관 의식에서만은 슬픔의 통곡 소리가 누가 큰지 경쟁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멋진 신세계'에서 아이들은 사회화 과정의 일환으로 노화로 사망한 사람들이 있는 병원을 방문합니다. 사람 간의 관계가 허물어진 신세계에서 누군가의 죽음은 존엄하지 않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묻습니다, 죽음이 숙연하지 않은 부산스러운 장례식이 필요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너무 과몰입 하신거 같아요
컨셉 ㅎ
뭔가 재밌어요 - dc App
다자이 오사무 서평 쓰시면 잘쓰실듯ㅎ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