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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냐 소설이냐
  
개인적으로 대개의 경우 문예 영화는 원작소설이 더 좋았습니다.
본래 소설을 워낙 좋아하고 영화는 기회가 되면 보고 아님 말고 이런 식이어서...
그런데 닥터 지바고의 경우 솔직히 둘 다 좋았고, 어느쪽이 더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 닥터 지바고 영화는 70mm 화면으로 봐야 진짜 제대로 알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이죠
저는 닥터 지바고 원작 소설을 일찌감치 다 읽은 후 영화를 보았는데,
이제는 거의 사라진 70mm 대형화면으로 보았습니다.
대한극장이 구관을 허물고 신축하기 직전에 70mm 영화를 몇 편 상영할 때,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닥터 지바고를 70mm 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스크린으로 볼 수 있었죠.
닥터 지바고는 70mm 대형화면으로 봐야 참 맛이 전해지는 영화였습니다.
본래 데이비드 린 감독은 콰이강의 다리, 아라비아의 로렌스, 간디 등 서사에 능한 감독이고,
특히 그 서사의 방법이 '광활한 대지'와 '음악'을 70mm 압도적인 화면으로 선사하면서 관객에게 울림을 주는 방식입니다.
닥터 지바고 영화는 70mm 화면으로 봐야 눈부신 설경과 주인공의 방황이 어우려져 감흥이 살아나고,
주인공이 내연녀 라라와 딸을 데리고 혁명 이전에 살던 별장으로 갈 때의 눈보라가 라라의 테마와 어우러져야...
고단한 혁명에서의 와중에 따뜻한 휴식의 한 때를 갖는 그 명랑함이 와 닿습니다.
나중에 TV화면을 통해 DVD로 다시 보았는데, 70mm로 볼 때의 그 울림이 10%도 없더군요.
    
닥터 지바고 소설은 실은 나약하고 무책임한 지식인이 혁명의 와중에 방황하는 이야기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영화에 비해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의 동기와 이유가 훨씬 더 세밀하게 그려지고, 그래서 내용 전개가 명확하게 이해됩니다.
영화판은 화면과 음악의 아름다움으로 정서적인 감흥이 더 크지만, 이야기 전개를 다 따라가기 어려운 면이 있죠.
소설은 주인공의 무책임한 성향과 가족보다는 내연녀를 더 그리워하는 애욕에 더 연연하는 면이 잘 드러나고,
폭력적인 혁명가인 라라의 남편이 어떤 생각을 가진 인물인지도 소설을 읽어야 이해가 가능합니다.
또한 순수하고 희생적인 '성녀의 이미지'와 남자 셋과 각각 관계를 맺는 '요부의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 여주인공 라라의 인물됨도 소설에서 더 잘 드러납니다.
라라는 미성년자인 학생시절부터 요즘식으로 말하면 원조교제를 벌이고,
이후 과거를 청산하고 자신을 보듬어주는 남편과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려 했지만...
그 남편이 과거 처녀시절부터 자본가와 부정을 저지른 아내에 대한 트라우마로 극렬 혁명가가 되어 집을 나가자,
남편을 찾겠다고 나섰다가 의사인 주인공을 만나 결국 주인공과 바람을 피웁니다.
세 남자 모두 끝까지 라라를 잊지 못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감은 전혀 없이 라라를 원합니다.
성녀와 요부의 결합형인 라라를 둘러싼 4각 연애 막장극이 소설의 메인 줄거리인데,
소설을 읽어야 작가가 라라에게 부여한 "작가가 희망하는 여성상에 대한 판타지"가 이해됩니다.
  
2. 번역본에 대한 생각
  
닥터 지바고는 1990 년에 러시아어 직역 완역본이 박형규 번역으로 한국에 처음 나왔습니다.
실은 닥터 지바고는 1988년이 되어서야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정책 덕분에 러시아(소련)에서 처음 간행되었고,
그 이전에는 러시아어 판본이 제대로 출간조차 안된 상황이었습니다.
영화가 빅 히트를 치고 전세계에 번역되어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작품이었지만,
정작 작가의 모국에서 모국어로 출간되지 못하고 수 십 년이 흐르다가...
198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겨우 러시아어 판본이 정식으로 간행된 것이죠.
따라서 1990 년 이전의 닥터 지바고 번역본은 사실상 모두 중역인 셈이고,
1990 년 박형규 교수가 완역하여 열린책들에서 간행한 번역본은 뜻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수 십 년 동안 러시아어로 책이 출간되지 못하다가 비로서 해금된 책이 하나 더 있는데,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였습니다 - 이 작품 역시 박형규 교수가 나서서 러시아어 원전으로 완역한 한국어 초역본을 냈었죠.
게다가... 박형규 교수 김학수 교수는 모두 고대 노문학과에 있으면서 열린책들 오너가 석사과정을 밟을 때 가르친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열린책들에서 나온 닥터 지바고 박형규 교수 번역본이 절판되더니,
문학동네로 출판사를 옮겨서 다시 재출간되더군요.
저는 출판사와 번역자 사이에서 불편한 관계가 발생하였고, 그래서 닥터 지바고 완역본이 출판사를 옮겨 재출간 되었다고 여깁니다.
그 계기는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었다고 생각하고 있구요.
본래 1980년대 열린책들은 솔제니친 전집을 김학수 교수 책임으로 추진하고,
더불어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은 박형규 교수 책임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을 여러차례 밝히면서 광고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1999년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나올 때 박형규 교수는 완전히 배재되어 완간되었죠.
톨스토이에 더 관심과 애정이 많았던 박형규 교수와 열린책들 간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당연히 상존했고,
그 과정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에 대해 박형규 교수를 배재하고 열린책들이 독단적으로 번역을 추진하여 완간하자,
그 결과 닥터 지바고가 출판사를 옮기는 일이 벌어졌다고 해석되더군요.
  
실질적으로 닥터 지바고는 러시아어 원전이 1980년대에 겨우 출간 되었기 때문에 예전에 나온 다른 번역본이 중역이 의심될 수 밖에 없는 여건에서,
박형규 교수 번역본이 가장 확실한 뜻깊은 번역본인 것도 맞습니다.
저도 참 잘 읽었구요.
다만...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박형규 교수 번역본도 재출간 되었지만 (저도 문예출판사 재간본에 작품해설을 써서 수록했지만),
후학들이 더 좋은 번역에 도전하여 다양한 색깔의 번역본을 잇달아 출간했습니다.
닥터 지바고 역시 최근에 경쟁적으로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고 있는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