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
"그래, 우리에게 있어 예술은 [살인]이다."
오늘은 파운드 패밀리의 문제아 중 하나, 그리고 영국 최초의 전위미술 운동을 이끈 화가이자 작가, 그리고 가장 독했던 모더니스트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안타깝게도 그의 작품은 한국에 번역된 적이 내가 알기론 아직 없다.
"나는 [적]이다--"
많은 영미 모더니스트들이 그러하듯, 1882년에 태어난 윈덤(윈담) 루이스 또한 영국 본토가 아닌, 그 당시 변방이었던 캐나다 출신이었다.
아버지가 미국인, 어머니가 영국인이었는데, 어머니의 이혼으로 인하여 어머니를 따라 영국으로 갔고, 거기서 미술 등을 전공하며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는 1900년대 초에 파리 등지를 떠돌며 본토의 예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영국으로 돌아와선 캠든 그룹 운동 등 당시 영국 인상파 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지만,
그의 진가가 발휘되는 것은 곧 [큐비즘]과 [미래주의]였다.
실제로 출판까지 이어지지 못하였지만, 그의 기하학적인 화풍으로 그려진 셰익스피어의 <아테네의 티몬> 삽화 모음집은 곧 그의 명성을 알리기 시작하였고,
윈덤 루이스는 일단은 당시 영국 예술의 두 파벌 중 하나인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들과도 친분을 나눌 수 있게 된다. 곧바로 헤어지지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곧 그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 강림."
그는 에즈라 파운드와 만나게 되었고, 이전부터 글도 조금씩 썼지만, 파운드의 권유로 글에도 열심히 참여를 하고, 미술도 열심히 참여한다.
그렇게 에즈라 파운드와 윈덤 루이스, 그리고 파운드와 루이스가 친목질로 끌어모인 전위적이고 젊은 영국의 예술가 집단들이 탄생한다.
이들을 일명 보티시즘-'소용돌이파'라고 불린다.
루이스와 파운드를 중심으로, 미술적인 측면에선 영국에서 시작된 최초의 현대적 미술 운동이었다.
하지만 미술만 다루진 않았다. 파운드의 친구였던 고디에브루즈카 같은 조각가도 있었고, 파운드의 적극적인 응원으로 루이스는 희곡, 평론과 소설들을 쓰기 시작한다.
그 결과, 1918년 그의 첫번째 장편 소설 <타르>가 출간된다. 영미 모더니즘에선 나름 중요한 소설로 취급되어 옥스퍼드 클래식에서도 수록되어있다.
무엇보다 흔히 조이스 같은 모더니스트들이 내면에 집착할 때, 루이스는 화가였던 탓인지, 밖, 이미지에 집착한다.
루이스는 물론 변태 같은 파운드의 마음에 들었으므로 그 또한 실험적인 글을 쓰는 작가였지만, 무엇보다 주목할만한 점은 그의 [독기]였다.
아아 ---- 그래, 예술은 루이스에게 [살인]이었다.
쉴새없이 상대를 풍자하고 비웃고, 자신도 비웃고 모든 걸 비웃는 지독함. 오늘날엔 허용되지 않을 그런 독기가 무엇보다 루이스의 특징이었다.
물론 그러는 사이 1차 대전 동안에도 열심히 그림도 그린다. 그는 정부 공식 지정 화가 중 하나였다. 위는 전쟁을 묘사한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그의 소용돌이파나 다른 운동들은 파운드 편에서도 설명했지만, 1차 대전 때 상당수가 전장에서 죽어버리면서 사실상 와해된다.
물론 윈덤 루이스는 개의치 않고 계속 작품활동을 한다. 그리고 그의 [살인]도 계속된다.
1927년 간행한 그의 대표적인 평론-산문집 <시간과 서구 인간> 같은 책에서 조이스나 거트루드 스타인, 에즈라 파운드 등을 논하거나 베르그송을 비판하는 등 여전히 독기있는 행보를 보이는 듯했지만, 사실 이건 기를 모으는 것에 불과했다.
1930년, 그의 최대작인 <신의 원숭이들(유인원들)>이 간행된다.
파운드는 집필 때부터 아이고 우리 루이스 잘한다~ 며 열심히 독려했고, 이를 <율리시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더불어 3대 걸작 소설이라고 칭할 정도로 환영했다. 어느 정도 친목질도 있으니까 알아서 걸러듣자.
물론 파운드만의 평은 아니었다. 자신의 여러 친목팸에게 이 원고를 두루두루 읽혔고 괜찮은 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예이츠의 평이 의미심장한다.
"이상한데. 이건 꼭 우리 아일랜드의....스위프트가 생각나는데? 감당할 수 있겠어?"
스위프트의 직계 후계였던 윈덤 루이스는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풍자하려고 했을까?
아아 --- [전부]다........... 당시 영국 모든 예술가와 집단들.
그리고 그 중심엔 영국 예술계를 이끌던 2대 집단 중 하나인 시트웰 일가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시트웰 삼남매는 부유한 귀족들로, 당시 많은 영국 예술가들의 발굴자이자 후원자였으며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출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일종의 살롱의 주인이자 중심인물들이었다. 나중에 그 중심인 시인 이디스 시트웰도 언젠가는 다룰 지 모르지만.
당장 올더스 헉슬리의 경우도, 이 시트웰 일가가 주간했던 앤솔로지에서 데뷔했다.
할 말은 한다, 루이스콜라!
윈덤 루이스는 이들을 풍자하고 이들의 후원 파티를 대놓고 조롱하고 도발한다.
책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250쪽 분량의 거대한 한 챕터를 이들이 주선하는 파티 장면 풍자로 채워넣을 정도로.
참고로 이러한 시트웰 일가와 대립되는 또 다른 집단이 바로 <블룸즈버리 그룹>이었는데,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루이스는 잠깐 이들과 친분을 쌓다가 파토내었다.
당연히 블룸즈버리 그룹도 여기서 같이 까인다.
아니, 그냥 영국 당대 모든 문학이 까이고 조롱된다. 루이스 자신까지도.
물론 이러한 광역도발이 영국에서 그의 위치에 좋은 영향을 끼치진 못한다. 하지만 루이스의 신경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친구 따라 강남가듯, 파운드 따라 루이스 또한 그새끼에게 가고 말았다.
1930년대 초반, 베를린을 방문한 윈덤 루이스는 히틀러 예찬에 빠진다.
물론 영국에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당장 영국 내부 나치 지부도 2차 대전 전까진 있었으니까.
사실 루이스가 이러한 지지를 할 조짐은 예전부터 있었다. 그의 글이 오늘날엔 문제가 되므로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란 점은 그의 스타일도 있었지만, 그의 유대인 혐오 및 여러 소수자들에 대한 독한 풍자에도 있었다.
그렇다면 루이스의 운명은, 친구 따라 같이 망하는 것일까?
다행인 점은 일단 루이스가 독고다이형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홀로 있는 늙은 화산'이라는 평이 있는 만큼, 루이스는 애당초 모두에게 독설을 퍼부었으므로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두번째론, 다시 독일을 재방문한 후, 유대인 차별을 목격한 루이스는 놀랍게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 다시 히틀러 비판으로 돌아섰다. 심지어 자신이 싫어하던 유대인을 옹호하는 팜플랫도 따로 쓸 정도로.
물론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히틀러 찬양한 것만 기억하지, 그 후는 사실 잘 기억 못한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윈덤 루이스는 친구들에게 초상화도 그려주고 계속 글도 쓰며 정신병원에 감금된 친구와 달리, 평온하게 그대로 물타듯 1957년 삶을 마감한다.
그의 위치는 상당히 미묘하다. 파시즘 가담했다가 비판도 했지만, 그렇다고 다크사이드를 완전히 버렸다기엔 여전히 반유대주의나 독함이 문제되고,
완전히 묻힌 작가라고 보기엔 최근까지 그의 작품집이 나왔었고, 연구집도 꾸준히 나왔으며 현재도 대표작은 옥스퍼드 클래식 같은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일단은 옥스퍼드 출판부에서 약 40권으로 이루어진 그의 전집 출간을 위하여 연구자들을 갈아넣고 있으니 언젠가는 국내에도 대표작 한두권 정도는 소개되지 않을까?
"이제 그만. 대충 알았다, [나]의 레벨."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 위대한 피츠제럴드 (1), (2)
- 토끼공듀의 삶
인생 좆대로 살다가 아름답게 죽은 모습이 참 마음에드는놈이군
얘는 모더니스트 치고 평탄하게 살다 죽었네
트렌드를 반영하는 영양가 넘치는 정보글..... 충성충성
아씨 존나 마음에 드는데 번역본이 없네...
매력있는데?
아주 감칠나게 읽었더이다 - dc App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