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영국 드레트노트 전함에 난데없이 에티오피아 왕자와 사절단이 방문하였다. 왕정국가인 영국으로선 예를 갖추고 이들을 맞이해야했다.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지만, 접대가 좋았던지, 에피오피아 왕자와 흑인 사절단은 '붕가붕가!'를 외치며 영국 해군에게 감사를 표했다.
물론 영국 해군은 사기를 먹었다. 알고 보니 이 흑인 사절단은 전부 백인들이 분장한 것이었고, 영국 해군은 대대적인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일명 <드레드노트 사건>으로 불리는 스캔들이었다.
이 우스꽝스러운 사건을 왜 굳이 모더니즘 이야기하는데 꺼내냐고?
우선 저 사절단 사진에서 오른쪽끝에서부터 두번째, 가장 키가 작은 흑인 분장을 한 사람이 바로 버지니아 울프다.
모더니즘적으로 사실 이 드레드노트 사건이 중요한 것엔, 그 배후에 있었다.
영국 국민들은 이 희대의 웃긴 소동을 벌인 이들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그리고 곧 사람들은 이 일을 벌인 중심이 되는 단체가 '블룸즈버리 그룹'으로 불리는 젊은 지식인들이란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이들이 모든 걸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블룸즈버리 그룹'에 속한다는 젊은이들이 대거 참여한 것은 사실이었다.
영국 사회에 <블룸즈버리 그룹>이란 이름이 처음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영국산 모더니즘을 이끌 그룹의 화려한 데뷔였다.
<블룸즈버리 그룹>의 그 시작과 뿌리를 찾으려면 우선 한 중2병 집단을 파혜쳐야한다.
캠브리지 대학은 영국의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이자 귀족들 양성소였고, 오랜 기간 남자만 입학을 허용하였다.
고추밭이다보니 또라이 같은 짓도 많이 했는데, 여러 괴상하고 역사만 깊은 클럽들이 오늘날까지도 내려오고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지식 동아리가 바로 1820년에 설립된 <사도회>였다. 오늘날까지도 존재하고, 수많은 영국 캠브리지 출신 유명인 및 학자들이 소속된 전설적인 너드 동아리다.
1900년대 초, 이 <사도회>의 멤버였던 토비 스티븐은 자신과 뜻이 맞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여동생들을 소개시켜준다.
킹스칼리지 런던에 다니던 토비의 여동생들은 토비 못지 않게 뛰어났고, 자연스럽게 친목질이 시작된다.
자신의 아아----사도 친구들과 함께 목요일마다 주기적인 모임을 가지면, 자신의 여동생들 역시 런던에서 주기적인 모임을 가졌고,
캠브리지 친구들이 런던을 방문할 때마다 역시 또 다른 비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다.
애당초 전부 상류층과 지식인 출신의 범생이들 밖에 없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영국귀족스타일로 문화와 정치, 예술 등을 논하게 된다.
그러던 도중, 토비는 1906년, 병으로 요절하고 만다.
토비의 죽음은 오히려 이러한 모임의 유대감을 더욱 강화시켜주었다.
마침내 <모임>이 탄생하게 된다.
사실 토비와 여동생들의 아버지였던 학자 레슬리 스티븐은 1905년, 그러니까 1년 전에 세상을 떠난 상태였고,
그 직후 스티븐 일가는 런던 블룸즈버리 부근으로 이사를 했었다.
"하와와 버지니아짱, 토비도 추모할 겸 앞으로 우리 집 근처에서 정기적인 모임 가지는고야요. 안 나오면 나를 두려워하게 될고야요. 존말할 때 모여라."
버지니아 스티븐의 주도 하에 그들의 비정기적이었던 모임, 즉 캠브리지 사도회에서 탄생한 남학생들간의 친목모임과 런던 킹스칼리지에서 탄생한 스티븐의 동생들의 모임은 합쳐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집결하는 장소가 있던 곳의 이름을 따라 <블룸즈버리 그룹>이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처음에 소개했던 <드레드노트 사건>을 준비하는데 상당수가 가담하면서 대중들에게도 널리 인식되게 된다.
기본적으로 상류층 출신의 지식인들이었던 만큼, 이들은 어떤 의미에선 귀족정스러웠다.
사상적으로 좌파이자 진보였으며 자연스레 반전운동이나 성해방 운동 같은 의제를 논하기도 하였다. 정기적인 모임을 통하여, 그리고 때론 서로 간의 '유대'를 통하여 강화하기 시작하였고, 곧 이 거대한 힘을 가진 젊은 상류 지식인 집단은 영국 사교와 문화의 중심 중 하나로 떠오르게 된다.
앞서 말했던 대로 2,30년대 영국 문화계를 사실상 시트웰 일가와 후원자 집단과 양분하게 된다.
대체 누가 있기에 그렇게까지 영향력을 끼치냐고?
사실 블룸즈버리 그룹의 범위를 특정하기는 조금 애매하다. 거쳐간 이들도 많고, 또 직접 모임을 참여하진 않았더라도 서로 다리를 거치며 교류를 한 이들도 많으니까.
그리고 이런 이들이 대개 영국을 이끄는 예술가들이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블룸즈버리 그룹>을 이루던 핵심 코어 인물은 10명 정도로 본다.
당연히 이 모임을 중심으로 이끌었던 핵심인 버지니아 스티븐, 우리에게는 목마와 함께 떠나버린 버지니아 울프가 있었다.
그리고 버지니아의 언니이자 화가 겸 디자인 역사에서 중요한 오메가 워크샵 (디자인 운동)을 이끌었던 예술가 바네사 스티븐이 있었다.
참고로 바네사 스티븐은 역시 블룸즈버리 그룹 멤버였던 클라이브 벨과 결혼하여 바네사 벨로 오늘날에 유명하다.
버지니아 울프 책의 표지들을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늘날 경제학자로 유명한 케인즈 또한 이 블룸즈버리 그룹의 핵심멤버였다.
왜 뜬금없이 경제학자냐고? 캠-브-리-지-엘리트해!
원래 문화예술정치 아무튼 다 좋아하고 파기도 했다. 캠브리지 사도회 출신이기도 하고.
애당초 여기 남자 멤버들은 거의 99프로 캠브리지 사도회 출신이다...크크큭..
바네사 벨의 남편이자 당대 유명 미술 평론가였던 클라이브 벨. 역시 캠브리지 사도회 출신이다.
버지니아 울프와 더불어 영국산 모더니즘을 이끌던 E.M. 포스터 역시 이 블룸즈버리 그룹의 핵심 소설가 중 하나다.
나중에 따로 다루겠다.
자일스 '리튼 스트레에치'
생소할 지 모르지만, 오늘날 영미 쪽 전기/평전 문학 글쓰기의 시초 같은 인물이다. 빅토리아 시대 여러 인물의 전기들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화가였던 로저 프라이
버지니아 울프의 남편이자 그녀와 함께 호가스 출판사를 이끌었던 레너드 울프.
그 외 역시 화가였던 던컨 그랜트와 당시 저명한 평론가였던 데즈먼드 맥카시, 이렇게 코어 사도들 10명과 함께
<블룸즈버리 그룹>은 영국 예술과 문화, 그리고 모더니즘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러셀 등과도 교류하고, 캐서린 맨스필드나 T.S. 엘리엇 같은 여러 당대의 작가들, 화가들이 앞서 말했던 대로 어떻게든 이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들과 교류를 한다.
무엇보다 레너드 울프,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바네사 벨이 참여하는 오늘날도 전설적인 <호가스 출판사>를 통하여 모더니즘 출판의 중심이 되기도 하였고.
그 시작은 친목 단체에 가까웠지만, 이들이 단순한 친목 단체는 아니었다.
같은 취향과 사상을 공유하면서 귀족적인 지식인들로서, 반전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또 같은 사상을 펼치며 파시즘 등 전체주의와 맞서기도 한다.
인원들 대다수가 양성애자라서 이런 성적 해방 운동과도 오늘날 어느 정도 연관되기도 한다.
물론 영국적인 반유대주의적인 취향도 좀 공유했다. 아무래도 출신 자체가 상류 지식인 계층이다보니 다분히 엘리트주의적이기도 하였고.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들은 대개 2,3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사실 그만큼 일종의 '적폐'처럼 취급되며 윈덤 루이스 같은 이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꼬우면....아시죠?
새로운 멤버들, 대개 바네사 벨의 자녀들이 다시 가입하기도 하지만, 사실 2,30년대를 지나면서 제각기 할 일도 바쁘기도 하였고, 무엇보다 이 그룹을 주도하던 버지니아 울프가 1941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실질적으로 <블룸즈버리 그룹> 또한 약 2,30년간의 기나긴 모임의 막을 내리게 된다.
물론 너무 걱정하진 말자.
당장 캠브리지 동료(Companion) 문학 시리즈에서 굳이 블룸즈버리 그룹을 따로 다루는 논문집을 내놓을 정도로, 이 <블룸즈버리 그룹>은 오늘날까지도 영국의 자존심을 지키던, 가장 영국적이고 영국적인 모더니스트들로 자리 잡아, 모더니즘을 사랑하는 우리들을 너무나도 즐겁게 해주고 있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와 E.M. 포스터는 단독으로 당연히 다루므로 그 전까지 이들을 즐겁게 읽자.
번역본도 많다.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 위대한 피츠제럴드 (1), (2)
- 토끼공듀의 삶
진짜 이런 개노잼 모더니즘이야기를 재밌게 쓰는 사람이 독갤에 있다는 거도 영광이다 - dc App
버지니아 울프는 오스카 와일드 닮은듯
글좋네요 근데 디시에서 보기 개불편한데 따로 블로그같은데라도 올릴 생각은 없으심?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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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