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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호걸!"



러시아 스킨헤드의 선조처럼 존-나 쎄보이지만, 사실 마음만은 여렸던 블라디미르 마야꼬프스키는 소비에트의 역사에서도 꽤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러시아 상징주의 이후 러시아 문학의 왕좌를 차지하려는 2대 계파 중 하나의 보스이기도 하였으므로 오늘은 레닌이 매료되고, 스탈린이 반한 시인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싫다고? 그런 녀석의 취향엔 따귀를 갈겨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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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종말을 눈앞에 둔 제정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마야꼬프스키는 태어났다.


공교롭게도 그가 태어난 곳은 조지아의 인간백정과 같은, 조지아 부근이였다. 물론 당시엔 러시아 땅이었지만.


마야꼬프스키는 스스로도 나중에 말했지만, 꽤나 복잡한 문화적 배경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러시아 관리였지만 코사크 계열의 러시아인이였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계 러시아인이였다. 거기에 조지아 부근에서 자라났으므로 자연스럽게 마야코프스끼는 조지아어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러시아어는 말할 것도 없다.


코사크 / 우크라이나 / 조지아 거기에 러시아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오늘날엔 시인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어릴 적부터 그는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 실제로 이후 학교도 미술 집중 교육을 받기 시작했는데, 미술도 미술이었지만, 사실 마야코프스키는 14살 무렵부터 맑스 등에 심취하며 볼쉐비키의 혁명활동에 직접 참전한다.


대학도 가기 전에 선전물을 배포하는 등의 혁명 행위로 3번 잡히고, 끝끝내 감옥까지 간다.


그야말로 소비에트에서 원하는 최적의 인재상이었다. 실제로 이 사실로 선전에 이용되기도 하고.




감방을 나온 마야코프스키는 일단은 1911년, 모스크바 미술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거기서 다비드 블뤼크를 만난다. 


블뤼크가 누구냐? 러시아 미래주의를 이끈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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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블뤼크는 마야코프스키에게서 시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에게 시인의 길을 걸을 것을 독려한다.


그리고 이듬해, 1912년 11월, 마야코프스키는 언젠가도 이야기했던 당시 러시아 문학의 메카였던 <들개 카페 - 카바레 스트레이 독스> 에서 시 낭송을 하며 본격적인 문단 데뷔를 한다. 와! 문호 스트레이 독스!! 



그리고 바로 다음달, 12월, 블뤼크는 마야코프스키, 벨리미르 흘레브니코프 등 4명의 젊은 미래의 작가들을 모아놓곤, <러시아 미래주의>의 시작을 선포한다.



바로 그 유명한 러시아 미래주의 선언문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를 발표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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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슈킨,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기타 등등을 모조리 현대의 증기선 밖으로 내던져라!>

-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 中



과거와 박물관을 모조리 박살내고, 자동차와 기계, 그리고 미래를 지향하려는 마리네티의 이탈리아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아, 러시아의 젊은이들 또한 러시아 문학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푸슈킨을 불태울 것을 외쳤다.


이들의 중점적인 공격 대상은 역시 당시 러시아 문단을 지배하던 러시아 상징주의였다. 


상징주의 이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아크메이즘>과 더불어, <러시아 미래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선언문만 남긴 이탈리아 파스타 찐따들과 달리, 러시아 미래주의자들은 당시 러시아를 휩쓸던 이른바 '러시아 아방가르드'라 불리는 시류에 합류하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실질적인 러시아 미래주의적 작품들을 대량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우선 구별되었다.


거기에 모든 과거를 쳐부수라는 마리네티의 외침을 이들은 누구보다도 잘 따랐다.


러시아를 방문하여 후배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마리네티에게 조까를 외치며, 이미 '과거'가 된 마리네티의 이탈리아 찐따들조차 부정하던 것이 바로 러시아 스킨헤드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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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엔 벨리미르 흐벨브니코프처럼, 기존의 언어조차 부셔야할 죄악으로 여기며, 순수한 음으로 구성된, 의미를 박살낸 인공언어, 자움 ZAUM 같은 걸 이용하는 걸 외친 이들도 있었지만, 마야코프스키의 관심사는 조금 달랐다.



물론 마야코프스키 또한 기존의 러시아 시와 달리, 새로운 시어를 쓰거나 행간을 실험적으로 배치하는 등 그 형식을 개선하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을 소재로, 그리고 혁명에 열렬하게 동참하기 시작했다.




<나는 시인이다. 그리그 그 때문에 나는 흥미를 끈다. 이점에 관해 써보도록 하자,>

-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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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마야코프스키는 자신이 가진 모든 재능을 혁명에, 과거를 부수고 미래를 만드려는 일에 소모하기 시작한다.


그의 미술적 재능으로 그려진 볼쉐비키와 소련의 프로파간다 포스터들은 오늘날까지도 유명하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래주의적인 시들을 계속 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내 영혼에 새치라곤 한 올도 없다.

노인다운 부드러움도 없다.

내 목소리는 세계를 제패하고

나, 약년 22세의

잘생긴 나는 뚜벅뚜벅 걸어간다,>

- 바지를 입은 구름



그의 관심사이자 소재는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이었다.

<마야코프스키 - 비극> 같은, 오늘날 부조리극처럼 볼 수도 있을 자신을 소재로 한 희곡을 쓰기도 하였으며, 마야코프스키에게 있어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수난과도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혁명이 일어나고, 소련이 만들어졌을 때, 그는 환호했다.


소련에서도 그는 상당한 지위를 가질 수 있었다. 일단 그는 혁명에 열렬하게 참여한 이였으며 그의 프로파간다들은 당의 입장에서도 쓸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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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레닌은 마야코프스키의 포스터들은 조금 인정했지만, 그의 문학은 싫어했다. 아니, 이해를 못했다.


그의 취향은 다분히 고리타분했고, 마야코프스키의 낭독을 듣던 도중 버티지 못하고 나가기도 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실 마야코프스키는 소비에트 영화 대본도 쓰고, 레닌이 죽고 나선 <레닌>의 프로파간다 서사시를 발표하는 등 소련을 위한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사실상 그는 소비에트의 계관시인이자 대표 작가가 되었다.


파스테르나크 같은 후배로부터 추앙을 받기도 하였다. 소련 문단의 중심인사였으므로 수많은 교류도 있었다.


<시간은

끝없이 긴

물체,

한때 존재했던 구전시의 시간은

지나갔다.

구전시도

영웅시도

서사시도 다 없어졌다.

불타는 입술을

강물로 축여라.

강의 이름은

'사실.' >

- 좋아!



하지만 마야코프스키는 당의 스피커로 있기에는 태생적으로 반골이었다. 애당초 14살 때부터 혁명활동하던 열렬 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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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치하에서도 겉으로 보기에 마야코프스키는 영원할 것 같았지만, 사실 본인부터가 어느 정도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적이든, 아니든, 사실 그의 위치는 점점 애매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소련의 당과 소련적 작가 입장에서 마야코프스키는 리얼하지 못하였으며, 마야코프스키의 적들이 봐도, 프로파간다 쓰기에 몰입하는 마야코프스키는 초기의 천재성을 잃은 듯 보였다.


이런 점은 사실 마야코프스키의 시적 재능을 보여주는 점일지도 모른다. 번역의 한계로 그의 언어 사용이나 시적 언어를 느끼기 힘들지만, 아무튼 프로파간다적인 그를 비판하는 시인들조차 그의 초기 시의 재능 자체는 꽤나 인정하는 듯하다. 파스테르나크 본인 또한 마야코프스키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였다.


이런 가운데 마야코프스키 본인도 점점 소련이 생각보다 혁명적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며 당과 점점 충돌하는 작품들을 쓰기 시작한다.


작가협회는 점점 그에게 비판적이 되어갔고, 그의 풍자적인 희곡들을 매섭게 공격하였다. 이대로 마야코프스키에게도 두려운 미래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1930년 4월 12일, 갑자기 마야코프스키 본인이 스스로를 총으로 쏘지만 않았더라면. 유언장으로 미완성의 시를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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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작스러운 이 소비에트의 계관 시인의 죽음에 모두가 당황하였다. 그의 의문 투성이 자살에 사람들은 슬퍼하였고, 장레식엔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물론 사건 직후 관련 인물들이 외국으로 갑작스럽게 출국되었다든가, 그의 유언장이 사실 자살 이틀 전에 이미 쓰였고, 그를 쏜 총알과 그가 들고 있던 총의 규격이 다르다든지, 여러 의문점들이 있지만,


스탈린 동무께선 친히 마야코프스키 동무를 영원한 소비에트의 시인으로 추앙하며, 그의 혁명투사적인 면모만을 강조하고, 생의 일부까지 날조하면서


당을 위한 영웅으로 기억하게 했다. 

그리고 미래주의의 영웅의 죽음 이후,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미래주의자들은 하나둘 숙청되기 시작하고, 끝끝내 대숙청으로 소비에트의 작가 절반이 사라진다


마야코프스키의 죽음 이후, 다시 러시아 미래주의와 아방가르드를 부흥하려는 최후의 시도였던 <오베리우>나 아크메이즘을 이끌던 만델스탐 등은 모두 스탈린 동무께서 숙청하며 싸우지 않게 화해시켜주었다.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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