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 문단에 소속된 사람도 아니고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문단에서도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평범한 독자고, 몇몇 좋아하는 시인들과 소설가들 때문에 애정은 유지하고 있지만 소위 문단의 개저씨 꼰대들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감정이 없다. 이젠 웃음거리가 된 어휘지만 적폐라고 한다면 그런 아저씨들이 진짜 적폐지. 독재정권 시절 문학이 아직 인기 있는 취미이자 정치적 도구였던 것을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사설이 길었는데 어쨌거나 나는 문단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인문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문단 내부에서의 시와 정치 논쟁에 대해 꽤 관심을 갖게 됐다. 사실 문단에서의 논쟁은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복잡하다면 복잡한 것 같은데, 간단하게 정리하려면 간단하게 정리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일단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에서 리얼리즘 비평가들과 소설가들이 문단을 떠났다고 말한 게 크게 화두가 됐다. 문단의 꼰대들은 \'내가 아는 비평가들 소설가들은 문단 안 떠났는데\' 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구차한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고진이 아니더라도 사실 누구나 문단문학이 더는 독재정권 시절처럼 거시적인 의미에서의 정치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이후에 진은영 시인이 발표한 \'시와 정치\'가 화두를 재점화 했는데, 진은영 시인은 시(사실상 근대문학)가 정치와 무관할 수 없으며 정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치안과 정치를 구분하는 랑시에르 식의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이라 했단 의미인데, 너무 러프한 요약이라 좀 죄송스럽다.) 그런데 이때 시의 정치성이라고 하는 화두가 그 이전과는 좀 다른 의미에서 쓰였다는 것은 확실했다. 종래의 문단에서 진행되었던 시와 리얼리즘 논쟁에서 정치는 좀 더 거시적인 의미의 정치였는데, 랑시에르식의 정치는 그런 거시적 정치를 치안으로 규정하고 그 정치를 해체하는 것을 정치로 보는 관점이니까. 말하자면 진은영 시인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명제가 제시된 이후에 그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면서도 정치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타협안을 택한 것 같다.
이 논쟁은 문단 내부에서 꽤 오래 지속됐다. 이전 세대의 사람들은 리얼리즘론의 입장을 고수하는 편이었고, 이후 세대의 젊은 평론가들은 그걸 깨부수기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삶의 진실성이나 진정성이나 몰입 같은 기존 문단의 표준적인 미학이 시험대에 올랐고, 문학의 정치성이 문제가 되었다. 이때 오혜진 선생님이 쓴 \'K문학 종언론\'은 기존 문단의 장편대망론, 시장기생주의, 예술상에 집착하는 스노비즘, 약자들에 대한 폭력 등을 문제시하면서 등장했다. 이것도 이것대로 많은 논란을 낳았고 오혜진 선생님은 이후에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을 써서 문학에 대한 일종의 취미론적인 견해를 제시했다(오혜진 선생님이 용어를 명확하게 밝히고 쓰는 편이 아니라 \'취향\'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는데, 대략적으로 취미론을 바탕으로 하는 개념이라 하기엔 무리가 없을 거 같다.)
아무튼 문단 내부에서의 논쟁을 죽 따라가보면 문단이 결코 하나의 의견만을 대변하는 집단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웹소설 작가들 측에서 지적하는 문단 늙은이들의 계몽주의적 엘리티시즘 같은 것은 오히려 문단 내부에서 더 가열찬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이런 논쟁 속에서 웹소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도 문제가 됐다.
앞서 언급한 오혜진 선생님 같은 경우는 웹소설/웹툰이란 장르의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것 같다. 선생님은 젊은 사람들의 취향을 적극 반영하는 작품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예시로 들었던 작품은 \'미지의 세계(근데 이건 이것대로 작가랑 작품 둘 다 논란이 많은 작품이라...)\'인데 내 생각엔 \'전지적 독자 시점\'처럼 남성향 웹소설 쪽에도 이런 쪽으로 호평할만한 작품들이 더러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문단이 일방적으로 웹소설 시장을 경멸한다고 하면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주지하다시피 문단에는 여러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있으니까.
경멸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웹소설 쪽에서 문단문학에 보여준 반감도 만만치 않았다. 사실 문단의 늙은이들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웹소설 독자들이나 작가들 중에는 막연하게 문단 사람들이면 모두 웹소설을 경멸할 거라는 인상이 퍼져 있는 것 같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이건 오해고, 사실 터무니없는 오해다. 문단의 젊은 사람치고 아직도 순수문학주의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람은 문단 늙은이들 말 잘 듣는 모범생들 말고는 없을 거라고 본다.
오히려 그들의 관점은 반대에 가깝다. 현재의 문단문학처럼 시장 기생적인 문학이 되지 않으려면 독자들의 취향을 최대한 잘 반영해야 한다는 게 문단 사람들의 생각이다. 대중적 취향이라는 게 대중적 취향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되긴 어렵겠지만, 어쨌거나 웹소설이 예술장이 아닌 시장의 논리를 따르는 이상 시장의 방법론을 따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문단 출신의 사람으로 웹소설 시장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타협을 거쳤다고 생각한다.
가끔 웹소설 측에서 문단문학을 이해해야 한다는 듯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런 입장은 사실 문단 꼰대들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서도 언급한 진정성이나 몰입 같은 수사들이 \'왜 표준이 되었는가\' 하는 그 자체가 문제시되는 시대에, 문단문학을 참고하고 수준 높은 글을 써야 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리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예술과 상품의 종합이라는 점에서 웹소설은 태생적으로 완벽한 키치다. 키치에게는 키치의 방법이 있다. 대리석으로 아파트를 짓기는 어렵고 콘크리트로 대성당을 짓는 것도 어렵다. 누군가 탁월한 사람이 문단 사람들의 마음에 들면서도 대중적 취향에도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을 쓸 수는 있겠지만, 문단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은 어리석다. 정리하자면 내 생각은 이렇다. 문단은 문단이고 웹소설은 웹소설이다. 문단 작가들이 웹소설을 이해하려 노력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만 강요해서 좋을 것은 어디에도 없다.
몰아서 쓴 글이라 문장도 그렇고 구성도 그렇고 읽기 힘들 거 같긴 한데...
음
아무튼 그렇다.
좀 공들여서 쓸 걸 ㅎ...
사설이 길었는데 어쨌거나 나는 문단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인문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문단 내부에서의 시와 정치 논쟁에 대해 꽤 관심을 갖게 됐다. 사실 문단에서의 논쟁은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복잡하다면 복잡한 것 같은데, 간단하게 정리하려면 간단하게 정리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일단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에서 리얼리즘 비평가들과 소설가들이 문단을 떠났다고 말한 게 크게 화두가 됐다. 문단의 꼰대들은 \'내가 아는 비평가들 소설가들은 문단 안 떠났는데\' 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구차한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고진이 아니더라도 사실 누구나 문단문학이 더는 독재정권 시절처럼 거시적인 의미에서의 정치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이후에 진은영 시인이 발표한 \'시와 정치\'가 화두를 재점화 했는데, 진은영 시인은 시(사실상 근대문학)가 정치와 무관할 수 없으며 정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치안과 정치를 구분하는 랑시에르 식의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이라 했단 의미인데, 너무 러프한 요약이라 좀 죄송스럽다.) 그런데 이때 시의 정치성이라고 하는 화두가 그 이전과는 좀 다른 의미에서 쓰였다는 것은 확실했다. 종래의 문단에서 진행되었던 시와 리얼리즘 논쟁에서 정치는 좀 더 거시적인 의미의 정치였는데, 랑시에르식의 정치는 그런 거시적 정치를 치안으로 규정하고 그 정치를 해체하는 것을 정치로 보는 관점이니까. 말하자면 진은영 시인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명제가 제시된 이후에 그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면서도 정치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타협안을 택한 것 같다.
이 논쟁은 문단 내부에서 꽤 오래 지속됐다. 이전 세대의 사람들은 리얼리즘론의 입장을 고수하는 편이었고, 이후 세대의 젊은 평론가들은 그걸 깨부수기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삶의 진실성이나 진정성이나 몰입 같은 기존 문단의 표준적인 미학이 시험대에 올랐고, 문학의 정치성이 문제가 되었다. 이때 오혜진 선생님이 쓴 \'K문학 종언론\'은 기존 문단의 장편대망론, 시장기생주의, 예술상에 집착하는 스노비즘, 약자들에 대한 폭력 등을 문제시하면서 등장했다. 이것도 이것대로 많은 논란을 낳았고 오혜진 선생님은 이후에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을 써서 문학에 대한 일종의 취미론적인 견해를 제시했다(오혜진 선생님이 용어를 명확하게 밝히고 쓰는 편이 아니라 \'취향\'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는데, 대략적으로 취미론을 바탕으로 하는 개념이라 하기엔 무리가 없을 거 같다.)
아무튼 문단 내부에서의 논쟁을 죽 따라가보면 문단이 결코 하나의 의견만을 대변하는 집단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웹소설 작가들 측에서 지적하는 문단 늙은이들의 계몽주의적 엘리티시즘 같은 것은 오히려 문단 내부에서 더 가열찬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이런 논쟁 속에서 웹소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도 문제가 됐다.
앞서 언급한 오혜진 선생님 같은 경우는 웹소설/웹툰이란 장르의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것 같다. 선생님은 젊은 사람들의 취향을 적극 반영하는 작품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예시로 들었던 작품은 \'미지의 세계(근데 이건 이것대로 작가랑 작품 둘 다 논란이 많은 작품이라...)\'인데 내 생각엔 \'전지적 독자 시점\'처럼 남성향 웹소설 쪽에도 이런 쪽으로 호평할만한 작품들이 더러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문단이 일방적으로 웹소설 시장을 경멸한다고 하면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주지하다시피 문단에는 여러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있으니까.
경멸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웹소설 쪽에서 문단문학에 보여준 반감도 만만치 않았다. 사실 문단의 늙은이들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웹소설 독자들이나 작가들 중에는 막연하게 문단 사람들이면 모두 웹소설을 경멸할 거라는 인상이 퍼져 있는 것 같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이건 오해고, 사실 터무니없는 오해다. 문단의 젊은 사람치고 아직도 순수문학주의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람은 문단 늙은이들 말 잘 듣는 모범생들 말고는 없을 거라고 본다.
오히려 그들의 관점은 반대에 가깝다. 현재의 문단문학처럼 시장 기생적인 문학이 되지 않으려면 독자들의 취향을 최대한 잘 반영해야 한다는 게 문단 사람들의 생각이다. 대중적 취향이라는 게 대중적 취향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되긴 어렵겠지만, 어쨌거나 웹소설이 예술장이 아닌 시장의 논리를 따르는 이상 시장의 방법론을 따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문단 출신의 사람으로 웹소설 시장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타협을 거쳤다고 생각한다.
가끔 웹소설 측에서 문단문학을 이해해야 한다는 듯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런 입장은 사실 문단 꼰대들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서도 언급한 진정성이나 몰입 같은 수사들이 \'왜 표준이 되었는가\' 하는 그 자체가 문제시되는 시대에, 문단문학을 참고하고 수준 높은 글을 써야 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리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예술과 상품의 종합이라는 점에서 웹소설은 태생적으로 완벽한 키치다. 키치에게는 키치의 방법이 있다. 대리석으로 아파트를 짓기는 어렵고 콘크리트로 대성당을 짓는 것도 어렵다. 누군가 탁월한 사람이 문단 사람들의 마음에 들면서도 대중적 취향에도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을 쓸 수는 있겠지만, 문단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은 어리석다. 정리하자면 내 생각은 이렇다. 문단은 문단이고 웹소설은 웹소설이다. 문단 작가들이 웹소설을 이해하려 노력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만 강요해서 좋을 것은 어디에도 없다.
몰아서 쓴 글이라 문장도 그렇고 구성도 그렇고 읽기 힘들 거 같긴 한데...
음
아무튼 그렇다.
좀 공들여서 쓸 걸 ㅎ...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사실 문화사회학자들이 늘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취향과 다른 취향에 대한 경멸은 극히 일반적인 거라....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듯
리얼리즘(뒈진 시체됨) 흑흑 현진건선생님 관에서 오열
정확히는 현실을 담지못하면 일단 까고본다는게 짜증남 환상소설도 좋아하는데 조금만 비현실적으로가면 감점질임
아니 시발 님 진짜 전독시 빨만하다고 생각햇엇음???
웹소설로 보면 빨만하다고 생각하는데 뭐가 문제가...
제가 전독시 존나 안 좋아한다고 전에도 얘기햇엇고 이게 상업적 성공 측면으로 이야기한다면 호평할 만하지만 최소한 이 맥락에서 인용될 만한 글은 아니라고 보는데
전지적 독자 시점
젊은 사람들 취향 정확하게 캐치해서 먹어줬다는 점에서 호평하는 것... 난 재미 없게 봤지
그거는 들어는봤는데 평이 꽤 갈리네...
망겜성처럼 최소한 생각할 만한 상황을 던져준다 하는 히트작을 예시로 들었어야 하는 게 아닌지
솔직히 그냥 젊은이들 이런 거 좋아하지요 하는 먼 사람의 아무렇게나 집어올린 예시로밖에 안 보임
이견의 여지가 있을 수는 있는데 오혜진 선생님이 말한 취향, 특히 젊은 여성들의 취향까지 포괄해야 한다고 말했던 걸 훌륭하게 이행했다 생각해서:..0
생각할 만한 상황을 던져주는 것도 문단문학의 기준 아냐? 키치, 웹소에겐 필요 없는 요소 같은데
딴소린데 내가 만약 문단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내 글빨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명으로 웹소 하나 연재하고 있을 것 같음. 내 무공이 무림을 벗어나 이세계로 떨어져도 통할까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 같은 거.. 문정후가 웹툰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해 내는 걸 보면서 느낀 게 많음. 좌백 이재일 같은 무협계 (이제는) 고인물들도 웹소에 잘 적응했고. 결국은 작품이 좋냐 나쁘냐의 문제지, 어디로 분류되느냐는 독자로선 별 관심 없는데, 분류 자체에 자부심을 가져 버리면 곤란한 것이야..
웹소설이 왜 키치임 키치는 통속이 고급을 가장하는게 키치인데. 누구보다도 자기들 방향성 잘 아는얘들임. 먹고살려고 딱 상업적 플롯 안에서 대딸해주려는데 명예욕은 또 있어서 브래드버리 젤라즈니 소리 듣고싶은 작가새끼가 있다? 오우쉣ㅋㅋ
키치가 좀 부정적인 함의로 쓰이는 단어인 건 아는데 난 상품과 예술을 종합한 것이란 의미로 키치를 쓴 거라... 사실 토털 키치 이야기 나오는 것처럼 이 시대엔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어쨌든 부정적으로 쓴 단어는 아님